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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험기] 경기도콜센터 상담원은 ‘만물박사’…지능적 ‘악성 민원’에 한숨도

120 경기도콜센터 상담원 일일 체험…초보 상담원에게는 ‘높은 산’
상담은 기본, 정보 숙지에 시간 할애 대부분…교통‧법률 등 ‘광범위’
보람도 잠시, 진화하는 악성 민원에 울분…상담사 보호방안 개선돼야

 

연중무휴 24시간 운영되는 ‘120 경기도콜센터’. 명절, 주말 구분 없이 3교대로 근무하는 상담원들은 하루 40~50여 통의 전화를 받으며 도민이 겪는 문제를 해결하려 애쓴다. 16년 간 도민의 손발이 되어온 상담원의 고된 일상을 경기신문이 직접 들여다본다. [편집자 주]

 

지난 17일 오후 2시쯤 첫 민원 전화가 걸려왔다. 교육도 받고 마음의 준비도 굳게 했지만 긴장감으로 인해 머릿속은 하얘졌다. 떨리는 목소리로 수화기를 들었다. 

 

“반갑습니다. 김혜진입니다. 무엇을 도와드릴까요.”

“설 연휴를 앞두고 해외여행을 가려는데 여권을 빠르게 발급받는 방법이 있을까요.”

 

순간 당황했다. 민원인의 질문에 대답할 말이 생각나지 않았다. 1~2초 정적이 흐르자 곁에서 지켜보던 경력 10년차 권모 상담원은 자신의 말을 그대로 민원인에게 전해주라고 소곤거렸다.

 

“여권 발급은 자치단체 소관으로 처리 기한과 정확한 발급 시기는 관할 자치단체에 문의해 보셔야 합니다. 민원인이 거주하는 곳과 가까운 여권 발급 장소를 안내해 드리겠습니다.”  

 

민원인과 통화를 마친 후 손에는 땀이 흥건했다. 교육은 받았지만 어떤 질문이 어떻게 튀어나올지 가늠이 되지 않았다.

 

첫 민원 상담으로 당황한 초보 상담원에게 베테랑 상담원은 ‘잘 모르겠으면 확인 후 안내해 드리겠다’고 하면 된다고 알려줬다.

 

이어 G-드림카드 잔액 조회 방법을 묻는 전화가 걸려왔다. 역시 초보 상담원에게 답변은 무리였다. 권 상담원은 즉시 콜센터 정보 시스템 들어가 방법을 검색해 해결책을 찾았다.

 

이처럼 ‘120 경기도콜센터’에는 매일 광범위한 분야의 민원 상담이 쏟아진다. 다양한 내용을 숙지하고 있지 않다면 민원인의 질문에 답변하는 것은 쉽지 않다.

 

때문에 상담원들은 상담이 없는 시간에는 새로운 도정 정보, 사회 현상, 매뉴얼 등을 숙지하는데 시간을 할애한다.

 

이날 콜센터에는 ‘제2경인고속도로 방음터널 화재 이후 도로 통행 가능 여부’, ‘불법주정차‧로드킬 신고’, ‘버스노선 안내’ 등 다양한 민원 전화가 걸려왔다.

 

120 경기도콜센터 한 상담사는 “지난해 ‘수원 세 모녀’ 사건을 계기로 마련된 긴급복지핫라인을 이용하려는 문의도 들어온다”며 “상담원들은 민원인의 거주 지역과 위기 상황을 파악해 긴급복지핫라인에 연결해 주기도 한다”고 말했다.

 

 

◇ 상담원, 전화 끊고 울분…수법 진화하는 ‘악성’ 민원

 

콜센터에는 하루 평균 30~35명의 상담원이 근무하는데 태풍이 오거나 눈이 많이 내리는 날에는 민원 전화가 폭주한다. 

 

업무 강도가 높을 수밖에 없는 이유다. 코로나19가 기승을 부리던 시기에는 한 상담원이 하루 100여 통의 전화를 받기도 했다. 

 

수십 통의 상담 전화 중에는 ‘악성 민원’이 빠지지 않는다. 자신이 처한 상황만 고집하며 상담원들에게 고스란히 감정을 토해 내기도 한다.

 

이날 옆자리에 앉은 한 상담원은 전화를 끊고 울분을 토했다. 무료법률상담을 요청한 민원인에게 내용을 명확하게 알려달라고 하자 민원인은 자신의 상황만 반복해서 말했다.

 

상담원이 재차 설명을 요구하자 민원인은 말귀를 못 알아듣는다며 욕설을 하고, 상담원을 비하하는 발언을 하고 일방적으로 전화를 끊어버렸다.

 

2018년 ‘감정노동자 보호법’ 제정 이후 상담원을 보호하기 위한 대화형 자동응답시스템(IVR)이 도입됐지만 언어폭력, 성희롱, 억지‧강요, 장시간 통화 등을 막기에는 역부족이다.

 

매뉴얼에는 IVR을 적용하려면 2~3차례 경고하도록 명시돼 있다. 그러나 민원인들의 지능적 괴롭힘은 매뉴얼을 무력화 시킨다.

 

한 상담원은 “요즘은 소리를 지르고 욕을 하면 전화가 끊어지는 것을 민원인들이 알다보니 말꼬리를 잡고 늘어지거나 혼잣말로 욕을 하는 등 교묘하게 상담원을 괴롭힌다”고 하소연했다.

 

 

최근 들어 수법은 더 악랄해지고 있다. 언어폭력 등으로 등록된 연락처는 일주일간 콜센터 상담이 차단되는데 연락처를 숨기고 전화를 거는 방식이다.

 

120 경기도콜센터가 아닌 타 지역의 콜센터로 전화를 걸어 민원을 제기하면 해당 지역으로 상담을 연결해 주는데 연락처가 뜨지 않아 악성 민원을 차단할 수 없는 것이다.

 

마땅한 대책이 없다보니 경기도는 상담원들의 권익보호를 위해 ‘상담원 보호제도’를 적극 활용해 달라고만 안내하고 있다.

 

도 관계자는 “악성 민원이 아닌 척 전화를 걸어 콜센터 연결을 요청하는 만큼 사전 차단에는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면서도 “해당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방안을 모색하겠다”고 말했다. 

 

[ 경기신문 = 김혜진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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