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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활에세이] 어서 와

 

 

구정 새해를 함께 보내고자 서울에서 밤새워 달려온 아들과 손자를 기다리고 있을 때다. 손자와 손녀가 차에서 내려 ‘할머니!’ 하고 품으로 달려들면 아내는 힘껏 껴안으면서 아이들 등을 두드려주며 ‘어서 와’ 하고 반겼다. 내 어린 시절을 회상해본다 해도 외갓집에 갔을 때 외할머니가 ‘어서 오라’면서 손 벌려 환영해 주던 기억이 새롭다. 성장해서 성인이 되고나면 언제 누구에게 이렇듯 따뜻하고 정감어린 어투로 환영 받던 일이 있었는가? ‘어서 와 기다리고 있었다.’는 그 정감어린 언어를 언제 듣고 못 들었던가.

 

구정 새해를 함께 보내고 아이들이 서울로 돌아간 다음 날 허전한 마음으로 도서관 주변 산길을 걸었다. 그런데 내 앞에서는 건장한 아들과 얼굴 빛 고운 아버지가 낮은 목소리로 이야기를 주고받으며 걸어오고 있었다. 믿음직스럽고 다정한 부자의 새벽길 같았다. ‘나는 저렇듯 살아오지 못했는데-’ 갑자기 아이들에 대한 미안한 감정으로 가슴이 건조해지는 순간이었다. 인간답게 잘 산다는 것은 어떤 모습일일까? 열심히 산다는 것은 어떤 삶의 길일까? 행복한 가정은! 새삼스럽게 자문하게 되었다.

 

내 욕망만 생각하지 않았다. 열심히 공부하며 동양 문학과 한국인의 문화와 멋도 가꾸고 싶었다. 슬픈 사람들과 눈물을 나누며 때로는 함께 울고도 싶었다. 슬픔이 슬픔을 만나면 에너지가 배가 되고 위로가 되었다. ‘일하는 육체와 창조 하는 정신’을 생각하며 주경야독이라고 생각했다. 직장 생활을 제외한 시간을 창조의 시간으로 알고 책 읽고 창작하며 살았다. 내 인생의 저울추는 현실과 희망 사이에서 한쪽으로 기울지 않기를 소망했다.

 

때로는 인생이 뭐 별거냐고 생각했다. 그런 몽니로 평생 책과 원고지를 가까이 하며 살았다. 그런데 이제는 ‘까짓 것 죽음이 별것이겠느냐’싶다. 그러면서도 무능한 아비를 만난 아이들을 어쩌란 말이냐! 하는 생각에 잠 부족한 아침이 많다. 명절 뒤라서 발길 뜸한 길 가는데 사라져가는 나뭇잎이 눈길에 밟힌다. 주워들고 보니 작은 잎은 잎맥 따라 구멍이 숭숭 뚫렸다. 좌우로 공평하고 바르게 구멍이 나 있다. 벌들의 집을 보면 촘촘하고 모두가 평등한 구멍의 집이다. 자연의 세계는 그들만의 법칙이 있다. 이기적인 유전자를 지닌 인간이 끼어들지 않으면 자연은 자연스럽다. 그런데 사람들은 지금 우주의 망나니 같은 짓을 하고 있지는 않은지 싶다. 지구의 역사를 하루 24시간에 비한다면 10초도 채 되지 않은데 인간의 수명이야 알아보아 무엇 하겠는가.

 

손자가 다니던 초등학교를 지나오다 보니, 교문 위에 ‘어서 와! 학교는 처음이지?’라고 쓴 현수막이 거리를 환하게 하고 있다. 속으로 ‘어서 와, 어서와’를 되풀이 하면서 언제 듣고 못 들었던 어머니의 음성이며 아내의 모습인가! 싶었다.

 

‘2023학년도 신입생 예비소집’이라는 현수막의 맨 위에 쓰여 있는 ‘어서 와-! 학교는 처음이지?’라는 문구 앞에 내 발은 얼어붙은 듯 서 있었다. 이 학교에 입학한 어린이들이 어머니의 가슴 같은 교사들의 사랑 속에 한국인의 온기를 느끼며 각자의 개성과 능력으로 경쟁과 서열 없이 살아갔으면 싶었다. 이어서 국가의 법(法) 감정싸움으로 인한 삶의 질이 낮아지는 불행 없이 서로가 ‘어서 와’하고 반기며 환영하는 마음일 수는 없을까를 생각해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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