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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동진 칼럼] 나라가 이렇게까지 가서야

 

난 사실 블랙핑크가 어떤 친구들인지, 그들의 노래가 어떤 경향성을 지니는지 잘 모른다. 근데 아마도 그건, 내 나이 대의 사람들 대다수가 그럴 것이다. 그냥 BTS급의 세계적 인기를 지니고 있는 팝 그룹쯤으로만 알고 있으며 국내만큼, 아니 국내 이상으로 인기가 높다는 것을 바람풍으로 들은 정도일 것이다. 

 

레이디 가가도 마찬가지다. 솔직히 레이디 가가가 브래들리 쿠퍼와 나온 2018년 영화 ‘스타 이즈 본’보다는 바브라스트라이잰드와 크리스 크리스토퍼슨이 나왔던 1976년 영화 ‘스타 탄생’이 훨씬 낫다고 생각한다. ‘스타 이즈 본’은 ‘스타 탄생’을 리메이크 한 작품이다. 

 

블랙 핑크와 레이기 가가는 뮤지션들이다. 이쪽 방면의 아티스트들은, 영화인들보다 더, 대통령이 됐든 대통령 할아버지가 됐든, 아무리 그들이 부탁한다 한들 자기가 싫으면 안 하는 성향의 인물들이다. 들리는 소문에 따르면 블랙 핑크는 그 좋다는, 아니 단박에 세계적 명성을 얻는다는 UN공연도 마다했다고 한다. 그들의 스타성은 실로 하늘을 찌른다.

 

오랜 기간 이쪽 업계를 관찰해 온 사람으로서 한미 정상회담에 블랙 핑크 – 레이디 가가 공연이 ‘주요 의제’처럼 됐다는 사실이 놀랍지는 않다. 지금의 정부가 그저 ‘깜짝 쇼’를 하려고 혈안이 돼있다는 정도는 알고 있으니까. 그보다 놀라운 점은 블랙 핑크 급 스타들의 공연을 즉흥적으로 유치하려 했다는, 그 무모함에 있다. 이들의 스케줄은 2~3년 전부터 예약을 걸어도 될까 말까이다. 그렇지 않으면 절대적 필요성이 요구되거나 해야 한다. 그것도 본인들이 싫으면 한 번에 ‘까이기’ 십상이다. 그래서 이들을 섭외하기까지는 매우 정교하고 디테일한 계획과 접근이 필요한 것이다.

 

그런데 여기는 대통령실이니까, 전화 한 통이면 모든 게 될 거라고 생각했을까. 그보다는 대체 이 공연의 계획과 입안 과정의 실체, 그 진실은 무엇일까. 정말 질 바이든 미국 대통령 부인이 그토록 원했던 일일까. 진실로 그것이 알고 싶다이다. 다 떠나서 블랙 핑크와 레이디 가가는 대체 무슨 죄인가.

 

한국의 정치가 이상적인 수준에 도다르지 못하는 이유는 문화에 대한 이해도가 낮기 때문이다. 문화적인 대통령, 문화적인 국회의원을 만나기가 쉽지가 않다. 그저 이용하려고만 한다. 연예계 셀럽들과 사진을 찍고 유명세에 편승해 표 한 장 더 얻으려는 천박한 심성 외에는 다른 게 없어 보인다. 정치가 문화적이 돼야지 문화를 하위 개념으로 깔보는 시선으로는 정치가 문화만큼 대중들의 사랑을 얻기가 힘이 든다. 정치가 문화적인 것이 되는 데는 천부적이거나 타고난 감성이 있어야 되는 것은 아니다. 문화 역시 끊임없는 훈련 과정이 필요하다. 지속적인 교육의 과정이 뒷받침되면 모두 어느 정도는 미술을 알아보는 식견과 음악을 취향 대로 골라 듣는 귀가 열린다. 혹은 영화가 갖고 있는 그 안의 메시지를 읽어 낼 수가 있다.


또다시 화제가 되고 있는 넷플릭스 영화 ‘길복순’에서 하급 킬러 한희성(구교환)은 주인공 길복순(전도연)에게 이렇게 말한다. “세상은 모순 덩어리예요. 우리는 그 모순 너머의 진실을 찾아야 해요.” 정치는 모순과 이율배반의 원천 같은 것이다. 사람들이 정치인에게서 기대하는 것은 세상을 구동하는 실체적 진실을 밝히기 위해 앞장서는 것이다. 적어도 문화 행위라고 하는 것이 늘 그런 메시지를 지니고 있다는 것을 정치인들이 잘 알고 있는지 심히 의심스럽다. 

 

정친인들은 볼거리 이벤트에 앞서서 자신이 할 일들부터 잘 챙겨야 할 것이다. 예를 들어, 수차례에 걸쳐 얘기하는 것이지만, 영화에 관한 법률 이름이 아직도 ‘영화와 비디오에 관한 법’이다. 지금 세상에 비디오가 남아 있는가. 아직도 VHS로 영화를 보는 사람들이 남아 있다고 생각하는가. 국회의원은 입법을 하는 사람들인 바, 그렇다면 자신들의 책무를 다 하지 않고 있다는 얘기이다. 일종의 직무유기이다.

 

책을 읽고 영화를 보고 공연을 다니기에는 시간이 턱도 없이 부족할 것이다. 안되면 성의라도 보여야 할 것이다. 봉준호가 세계적인 감독이고 그가 K-컬처를 이끄는 사람이라는 판에 박힌 얘기만 할 것이 아니라 그가 만든 ‘기생충’이 왜 미국의 아카데미나 프랑스의 칸에서 주목을 받았는지, 그 영화가 한국을 넘어 세계 사회에 어떤 얘기를 던져 주고 있는지 성찰하는 얘기를 해야 할 것이다. 만약 앞으로 봉준호를 만날 계획이 있다면 그가 만든 새 영화가 에드워드 애슈턴이 쓴 SF소설 ‘미키 7’을 토대로 한 것이라는 것쯤은 알고 만나야 할 것이다. 만약 박찬욱 감독을 언급하려면 왜 그가 지금 베트남 작가 비엣 타인 응우엔이 쓰고 퓰리처를 탄 소설 ‘동조자’를 7부작 드라마로 만들고 있는지 정도는 인지해야 할 것이다. 그것도 아니라면 적어도 의전팀이 그 책의 내용을 요약해서 사전 보고 정도는 할 줄 알아야 할 것이다. 지금의 윤석열 정부는, 안타깝게도, 그 같은 문화 수준을 기대하기 힘들다. 실로 암담한 일이다. 

 

사람들이 점점 심하게 자조적이 되어 간다. 블랙 핑크 논란은 좌절감까지 느끼게 한다. 나라가 이렇게까지 가야 하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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