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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동진의 언제나, 영화처럼] 나는 저항한다. 고로 존재한다.

112. 무명 - 청얼

 

극장에선 조기에 종적도 없이 사라졌지만, 영화 ‘무명’이 알 만한 사람들에게 관심을 모았던 이유는 1930·40년대의 이야기를 다뤘기 때문이다.

 

솔직히 이때가 지금보다 훨씬 멋있었다. 시대도 그랬고, 예술도 그랬다. 패션은 더더욱. 무엇보다 사람들이 멋있었다. 저항할 줄 알았고, 그 와중에 즐길 줄 알았으며, 반드시 사랑들을 했다. 그것도 모두 치열하게. 지금 시대에는 사라진 단어, ‘혁명’과 ‘사랑’이 이 시대에는 존재했다. 영화 ‘무명’이 다루는 이야기는 바로 거기에 있다.

 

‘무명’은 1941년 상하이에서 암약한 제5열(상대 진영 내부나 후방에서 암약하는 스파이 조직)에 대한 이야기이다. 복잡한 것은 제5열이 하나가 아니라 둘이나 셋이라는 것이며 혹은 제5열 안에 또 다른 제5열이 있을 수 있다는 것이다.

 

 

이중간첩 혹은 이쪽도, 저쪽도 아닌 사람들의 이야기일 수도 있다는 말인데, 이렇게 되면 내가 누구이고 너는 또 누구이며 우리 모두는 무엇이고 그리하여 다들 무엇을 위해 싸우고 죽이고 헤어지고 하는지 언젠가부터는 그 의미를 상실할 수도 있다는 이야기이다. ‘무명’은 그렇게까지는 아니지만 적어도 그런 분위기를 짙게 풍긴다. 그 아우라가 이 영화 ‘무명’의 매력이다.

 

‘허주임’(양조위)은 상하이 주둔 일본군 대장(모리 히로유키) 밑에서 대일본 저항 조직을 색출하는 책임자다. 주로 공산당을 쫓는다. 그의 밑에는 젊은 수사관 둘이 있는데, 그중 하나가 ‘예 선생’(왕이보)이라는 친구이다. 허주임은 치밀하며 예는 젊고 공격적인 인물이다.

 

영화의 첫 장면에서 허주임이 누군가(황뢰)를 방문하는데, 그 누군가는 은둔 중이며 아마도 일본 쪽에 투항을 하기로 한 모양이고 그간 공산당 주요 연락책 일을 했던 것으로 보인다. 허주임과 일본 점령군은 현재 ‘천 여사’(저우쉰)를 쫓고 있으며, 이 남자는 허주임에게 그녀의 은신처를 알려주는 조건으로 투항 후 생존을 약속받은 것 같다.

 

허주임은 그에게 정확한 동기를 묻는다. 흔한 거 말고, 다 아는 이야기 말고, 네가 이쪽으로 넘어오는 진짜 이유를 대라고 정중하게 묻는다. 머뭇거리던 남자는 떨리는 목소리로 말한다. “나는 지쳤소. 고향에 부모가 농사짓는 땅이 있고 거기로 가려 합니다.”

 

 

1941년은 일본이 진주만을 공습했던 때이다. 미국은 즉각 선전포고하고 서둘러 참전한다. 일본이 진짜 노렸던 것은 동남아 곧 인도차이나이다. 미국을 이 전선에서 밀어내기 위해 태평양에 거대한 전선을 만든, 이중(二重) 군사 전략의 일환이 바로 태평양 전쟁, 진주만 기습이다.

 

그리고 이 모든 것을 주도한 것은 일본 정규군이 아니라 만주군, 곧 관동군이었다. 관동군은 만주에 나라를 세우고 별도의 군사 왕국을 만들려 했으며, 그 왕국의 물적·정치적 토대는 필리핀, 인도네시아 등 동남아 국가를 점령해서 얻으려는 것이었다. 만주를 지배하기 위해서는 중국의 저항 조직, 가장 격렬하게 투쟁하는 공산 조직을 효과적으로 뿌리 뽑아야 한다. 또 그러기 위해서는 당연히 중국 내 반공주의 세력을 끌어들인다. 그건 곧장 장개석의 국민당 조직의 한 파(派)일 수 있으며, 영화에서는 ‘탕 선생’이라 불리는 인물(동성붕)이다.

 

1941년의 상하이는 일본 점령군과 이에 대항하는 조직이 얽히고설켜 수면 하에서 엄청난 수 싸움이 벌어지던 때였다. 서로는 적이면서 동시에 서로를 이용한다. 일본은 1937년 일으킨 중일전쟁을 승리로 이끈 후인데다 대국인 미국과도 전쟁을 벌이던 때라 기세가 등등하던 시기였다. 동시에 이 전쟁이 그리 멀지 않았음을 알려주기 시작한 때이기도 하다. 미국이 참전했고 저항은 그 어느 때보다 최고조에 오르던 때였기 때문이다.

 

 

중국 공산 저항 조직은 천 여사를 보호해야 한다. 최고로 중요한 거점 연락망이기 때문이다. 동시에 관동군의 군사적 행보를 예측하고 알아내야 한다. 그들의 군사 야욕을 분쇄해야 한다. 결국 방법은 하나, 내 것을 내주고 상대편의 모든 것을 알아내거나 가져오는 것.

 

그래서 영화의 이야기는 천 여사로 모인다. 후에 예 선생은 일본군 대장에게 다음과 같이 보고한다. “여자는 현장에서 사살됐습니다.” 자, 그렇다면 일본은 무엇을 얻고 무엇을 잃게 되는가. 중국 독립 저항 조직은 무엇을 내주고, 무엇을 획득했는가. 궁극의 승리자는 누구인가. 제5열은 애국자인가 매국노인가. 그들은 나중에 합당한 대우를 받게 되는가.

 

영화 ‘무명’은 이야기의 흐름과 시간 순서를 의도적으로 왜곡시켜 놓았는데, 사실 과거의 많은 일들, 특히 역사적인 일들은 거의 같은 시간대에 벌어지기 십상이다. 아니면 동시다발적으로 누군가 일부러 터뜨리거나 하기 때문이다. 그래야 A로 B를 가리고 B로 C를 가릴 수 있기 때문이다. 사건 A와 B, C는 나중에, 훗날의 역사가가 시간 순으로 다시 배치한 것뿐이다.

 

혼란기에 벌어지는 사건과 이야기를 일목요연하게 정리하기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사실은 그럴 필요도 없다. 허주임이 ‘장’이라는 여인(지앙 수 잉)을 취조하는 과정, 그 여자와 국민당 쪽 인물인 탕 선생을 엮으려는 것, 그런데 그런 그녀를 총살 과정에서 살려 보내는 것, 예 선생의 동료인 ‘왕’(왕전군)이 ‘미스 방’이라는 여자를 강간하고 살해하는 것 등 모든 사건의 시간을 비틀어 놓고 중복시켜 놓는다.

 

 

미스 방은 예 선생의 약혼녀였으며 남자가 일본군 앞잡이가 된 것을 두고두고 수치스러워한다. 미스 방은 미모를 이용해 일본군 간부를 유인, 골목에서 살해하는 ‘꽃뱀’ 역할을 한다. 왕은 그 사실을 알고 그녀를 강간하고 살해한다. 어쩌면 예 선생과 그녀의 관계를 알아낸 것일 수 있다. 이런 여러 시선을 두서없이 나열하는 척, 청얼 감독은 자신의 역사적 감각이 남다르다는 것을 과시한다.

 

이럴 경우 시나리오뿐 아니라 편집 역시 매우 정교해야 한다. 이번 신의 에피소드가 다음 신의 사건과 의미상 어떻게 연결되는지를 직접 보여 주거나 암시해야 하기 때문이다.

 

예컨대 상하이 근교 일본군 소대 하나가 전멸되는 사건이 벌어지는데, 그건 아마도 누군가가 공산 조직 혹은 국민당 내 반일 조직(친일 조직만 있지는 않았으니까)에 이 소대의 위치를 알려 줬기 때문으로 보인다. 문제는 이 소대 내에 일본 황실 가문의 공작(公爵) 아들이 있었다는 것이며, 당연히 일본군은 이 테러 조직을 색출하겠다고 나설 것인 바, 이건 다분히 중국 공산당 조직이 일본군과 국민당 조직 둘 모두를 겨냥한 이이제이(以夷制夷) 전략의 일환일 수 있다.

 

 

감독 청얼의 시나리오는 이렇게 복잡한 이야기를 2시간여에 풀어내려고 무던히도 애쓴다. 중국의 현대사, 2차 대전의 역사를 아는 사람들에게는 비교적 쉽게 다가서지만 그렇지 못한 사람들, 특히 젊은 세대들에게는 요령부득의 이야기일 수 있다. 이 영화가 중국 밖에서 그다지 성공하지 못한 이유이다. 지나치게 중국적이라는 말이다.

 

치명적인 약점 중 하나는 허주임과 수사관 예 선생의 관계인데 극 후반부에 벌어지는 둘의 혈투는 다소 지나친 부분이 있다. 사실 나중에 밝혀지는 둘의 관계를 생각하면 그렇게까지는 싸울 필요가 없으며, 더 나아가 싸워서도 안 된다. 둘이 서로를 몰랐다면 피 터지는 싸움을 하는 게 맞다. 만약 천 여사를 사이에 둔 삼각관계였다면 그것도 맞다. 둘의 싸움의 이유에 뭔가의 장치와 설명이 더 필요했는데, 영화는 여기서 길을 잃은 느낌을 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무명’은 매우 매력적인 작품이다. 불안하고 불온한 시대를 살아간 사람들의 실존적 선택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훨씬 삶이 입체적이었던데다 지향점이 있었음을 보여 주기 때문이다. 이 영화가 조기에 극장에서 사라지는 이유가 두렵다. 이런 영화의 실패가 무섭고, 지금의 시대가 공포스럽다. 그렇지 아니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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