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국내 보험사가 새 회계기준(IFRS17) 도입에 힘입어 올해 1분기 두 자릿수 이상의 실적성장률을 기록했다. 보험사들의 기초 체력은 지난해와 비슷한데 회계기준이 바뀌며 실적이 부풀려졌다는 지적이 나오자 금융당국은 뒤늦게 가이드라인 마련 작업에 들어갔다.
18일 보험업계에 따르면 IFRS17을 처음으로 적용한 올해 1분기 주요 생명·손해보험사들의 당기순이익은 총 4조 7500억 원으로 전년 동기(3조 7100억 원) 대비 27.9% 증가했다.
생보업계 1위인 삼성생명의 올해 1분기 순이익은 7068억 원으로 지난해 1분기보다 163.4% 증가했다. 교보생명도 전년 동기 대비 83.5% 늘어난 5003억 원의 순이익을 기록했다.
손보사들도 올해 1분기 역대급 실적을 거뒀다. 삼성화재는 올해 1분기 전년 동기보다 36.6% 증가한 6133억 원의 당기순이익을 거뒀다. DB손보의 1분기 당기순이익은 4060억 원으로 1년 새 43.6% 증가했다. 메리츠화재 또한 같은 기간 2배 가까이(82.1%) 늘어난 4047억 원의 순이익을 거뒀다.
업계는 보험사의 실적이 크게 개선된 배경으로 올해 도입된 국제보험회계기준 IFRS17을 지목했다. 보험사의 영업 여건이나 기초 체력은 지난해와 비슷하지만, 실적을 계산하는 방식이 달라진 덕을 봤다는 것.
정태준 유안타증권 연구원은 "IFRS17 도입 이후 가장 큰 변화는 회사 간 비교가 어려워졌다는 점이다. 보험사들의 1분기 실적을 단순히 이익 증가로 받아들이면 안 된다"며 "IFRS17 이후의 실적 수치는 충분한 시간을 두고 조정을 거친 후에야 신뢰할 수 있다"고 분석했다.
특히 새로 도입된 계약서비스마진(CSM)의 계산법이 논란이다. CSM은 미래 예상되는 이익을 현재 가치로 환산한 지표로, 통일된 기준이 없어 각 보험사가 손해‧해지율 등을 계산할 때 가정을 달리할 수 있어서다. 이에 따라 부풀려진 이익이 향후 손실로 전환되면, 보험사들의 지급여력에 문제가 생겨 소비자 피해가 발생할 수 있다.
실제 주요 보험사들의 1분기 CSM은 이전에 비해 개선됐다. 한화생명은 컨퍼런스콜에서 3월 말 CSM이 9조 7000억 원으로 전년동기대비 23.7% 증가했다고 밝혔다. 삼성생명과 삼성화재의 CSM도 각각 11조 3000억 원, 12조 3500억 원으로 전년 말 대비 각각 5.2%, 1.2% 확대됐다.
보험사에서조차 새 회계기준의 신뢰성을 지적하고 있다. 김용범 메리츠금융 부회장은 지난 15일 "우리나라 보험은 상품 구성과 내용이 대동소이해 가정이 달라질 이유가 없다"면서 "규제당국에서 구체적인 가이드라인을 조만간 내놓으면 혼란이 줄어들 것으로 본다"고 밝힌 바 있다.
이에 금융감독원은 이익 지표 변동성이 큰 일부 보험사에 대한 수시 검사에 착수했으며, 보험업계에 IFRS17과 관련해 지나치게 낙관적인 가정을 자제할 것을 요청했다. 또한 늦어도 다음 달 초까지 미래 실손보험 손해율, 무·저해지보험 해약률 등 CSM 산출을 위한 계리적 가정에 대한 세부 가이드라인을 제시하기로 했다.
금감원 관계자는 "큰 틀의 시스템 변화는 없겠지만 계리적 가정을 무엇을 썼느냐가 문제이기 때문에 수정 필요성이 있는 계리적 가정에 가이드라인을 준비하는 것"이라며 "한 번만 하고 끝나는 게 아니라서 중요한 부분부터 우선순위를 두고 차근차근 들여다볼 것"이라고 말했다.
[ 경기신문 = 고현솔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