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시아 사상사에서 한(漢) 무제(武帝) 제위시기(BC 140-87년)는 흔히 유교가 국가 통치이데올로기로 확고히 자리잡게 된 시대라고 말한다. 그 증거로 동중서(董仲舒)라는 인물을 거론한다.
춘추학(春秋學)의 대가로 꼽히는 그의 학설을 한 무제가 국가의 학문으로 공식채택함으로써 중국사에서는 유가 만능의 시대에 접어들었다고 한다.
그러나 다른 무엇보다 동중서의 철학이 과연 유교적이냐고 했을 때, 의문을 증폭케 하는 대목이 한두 군데가 아니다. 그의 철학은 공맹(孔孟)과의 직접적인 상관관계가 없다시피 하며, 그보다는 오히려 참위(讖緯)적인 특징이 농후하게 관찰된다.
쉽게 말해 동중서 철학은 공자가 그토록이나 증오하면서 타파하고자 한 괴력난신(怪力亂神)을 철저히 신봉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기린(麒麟)을 필두로 하는 4령(四靈), 즉, 네 가지 신비롭고 상서로운 동물이 `발명'된 것이 동중서 이후 한대(漢代)라는 사실은 시사하는 바가 작지 않다.
이 4령이 구체적으로 무엇인지에 대해서는 전한시대에 편찬된 예기(禮記)라고하는 의례서가 극명하게 전하고 있다. 즉, 이 문헌에서는 "麟鳳龜龍,謂之四靈"(린봉구룡, 위지사령)이라고 해서 기린과 봉황과 거북과 용을 지목하고 있다.
물론 이들 개별 동물 중에서도 거북만큼은 실재하며, 또, 전한시대 이전에도 이들 4령이 신성한 동물로 간주된 흔적이 곳곳에서 보이기는 하지만, 인간을 포함하는 우주삼라만상 모든 현상을 음양오행설을 주축으로 하면서 천문현상이나 점성술에 빗대어 해석하는 참위 시대가 개막되면서, 이들 동물은 `靈'으로 그 성격이 돌변한다.
4령 중에서도 기린은 흔히 공자와 연결되고, 나아가 공자 또한 신성한 동물로 간주했으므로, 유가적인 성격이 농후한 것으로 지적되기도 한다.
그러나 기린과 연관된 공자의 관련 기록을 검토하면, 거의 후대에 공자가 성인화하면서, 억지로 갖다붙인 신화적 성격이 농후하다. 물론 그와 그 제자의 언행을 기록했다는 논어(論語)에 기린을 신물로 간주하는 공자의 모습이 한 군데 보인다. 하지만 그뿐이다.
이런 기린이 한대와 함께 개막한 참위의 시대가 되어, 그 영력(靈力)을 무한히 확장하게 된다. 참위는 그 주축이 음양오행설이므로, 이의 짙은 영향력에 의해 그이전에는 따로, 혹은 한 단어로 인식되던 `麒麟'이라는 글자가 아예 쪼개져 암컷과 수컷을 각각 의미하게 된다.
예컨대 삼국시대 위(魏)나라 때 장읍(張揖)이란 자가 찬술한 자전의 일종인 광아(廣雅)에는 "기린은 인(仁)한 짐승이다. 수컷을 기(麒)라 하며 암컷은 린(麟)이라 한다(麒麟者ㆍㆍㆍ仁獸也. 牡曰麒, 牝曰麟)라고 하고 있다.
기린에 대한 이런 암수 분리 현상은 봉황(鳳凰)에서도 똑같이 감지된다.
기린이 상상의 동물이라는 사실은 크게 두 가지 방향으로 기린을 구속한다.
첫째, 그 신비성을 더욱 극대화하는 한편 둘째, 다른 쪽에서는 시각화를 요구하게 된다. 쉽게 말해 기린은 상상의 동물이니 그 능력이 무한대로 확장해 간 반면, 그렇다면 어떻게 생겼느냐 하는 끊임없는 질문에 직면하는 과정에서 마침내 기린은 그 추상성을 해체하고 그 실체가 창조되기에 이른다.
기린이 지닌 신비성이라는 측면에서 한 고조 유방의 손자인 회남왕(淮南王) 유안(劉安)이 식객들을 동원해 완성한 회남자(淮南子)라는 문헌을 주목할 수 있다. 여기에는 "기린이 싸우면 일식이나 월식이 일어난다"고 하고 있다.
또 광아(廣雅)에서는 기린은 반드시 땅을 가려서 노닐고, 살아 있는 곤충을 밟아 죽이지도 않을 뿐더러 살아 있는 풀을 해치지도 않으며, 무리지어 살지 않고, 덫에도 걸리지 않는다고 하고 있다.
한 마디로 미생물 하나 해치지 않는 신령스런 동물로 간주된다.
이런 특성에 의해 기린은 흔히 성군(聖君) 그 자체, 혹은 그런 성군이 다스리는 태평성세(太平聖世)라는 개념과 동일시되기에 이른다. 임금이 백성을 위한 훌륭한 정치를 펼치면 봉황이 내려오고 기린이 나타난다고 생각한 것이 그러한 증거다.
기린이 갖추었다고 간주된 이런 성격 때문에 기린을 곧잘 유가적 성격과 연결시키고 있으나, 이는 대단한 논리 비약이다.
성군 혹은 성인(聖人)이 선정(善政)을 펼치면 하늘(혹은 천명<天命>)이 이에 감응해 감로(甘露)를 내려주고 봉황과 기린과 용을 출현케 한다는 발상은 실은 참위학파의 발명품이다.
한대 이후 중국 사상계를 장악하다시피 하는 이러한 참위사상은 진 시황제와 한무제 무렵 발해만 연안을 일대로 대유행을 하게 되는 신선(神僊)사상에 직접적인 뿌리를 두고 있으며, 그것은 다시 노자를 필두로 하는 도가사상, 혹은 도가사상과 법가사상의 결합물이라고 할 수 있는 황로학(黃老學) 사상에서 기원하고 있다.
겉으로는 군주는 말을 최대한 아낌으로 자기 본색을 감추고 모든 일은 신하들에게 맡기는 무위(無爲)를 가장하면서, 실제로는 교묘한 술수를 통해 신하들을 끊임없이 감시하고 통제해야 한다는 정치술을 역설하는 황로학은 그 이상적인 통치자로서 황제(黃帝)라는 신화적 인물을 가공해 냈다.
이러한 황로학 사상과 도가사상의 밀접성은 우선 사마천의 사기(史記)에서 벌써 보이는 황로(黃老)라는 말 자체가 황제(黃帝)와 노자(老子)를 합친 말인 데서 단적으로 드러나고 있다. 그뿐 아니라 후한시대에 접어들면서 황로사상은 그 사촌격인 신선사상이나 참위사상까지 한데 버무려 도교라는 새로운 종교를 낳기에 이른다.
이와 같은 황로학 혹은 참위사상은 성군(聖君)이나 성인(聖人)에 의한 무위(無爲)의 정치를 역설하면서, 그러한 정치가 성공했음을 알려주는 보증수표로 봉황과 함께 기린을 내세웠던 것이다.
그러한 밀접한 상관성은 후한말 대학자 정현(鄭玄)과 활동연대가 같은 채옹(蔡邕)이라는 사람이 쓴 월령(月令)이라는 글에서 단적으로 드러난다. 채옹은 이 글에서 이르기를 "천궁(天宮)에는 다섯 가지 동물이 있다. (천궁) 가운데는 대각(大角) 헌원(軒轅(=黃帝)이 있으니 기린의 징표이다"고 하면서 기린에 대해 "화(火)에서 나서 토(土)에서 노닌다"고 덧붙이고 있다.
다시 말해 기린은 천궁이라고 하는 하늘의 궁전 중에서도 중앙을 차지하고 있는 황제(黃帝)와 동일시되고 있다.
한데 기린을 내세운 사람들은 동시에 그것을 시각화할 의무가 있었다. 도대체 기린이 어떻게 생긴 동물인가 하는 사회적 요구를 어떻게든 해결해야 했다.
사실 춘추전국시대 문헌에서 기린의 생태를 언급한 표현은 거의 보이지 않는다.
기린은 그냥 기린이었다. 기린을 쪼개어 암수라고 보는 개념 자체도 없었다.
그러다가 참위사상이 일대 유행을 하게 되고, 그 마스코트 격으로 기린이 동원되는 것과 궤를 같이 해 기린은 이런 모습을 하고 있는 동물이라는 기술이 빈번히 보이기 시작한다.
예컨대 한대에 출현한 사전류인 이아(爾雅)에서는 "기린이 노루 같은 몸뚱이에 소 꼬리를 하고 있으며 뿔이 하나이다"는 언급이 보이며, 모시주소(毛詩注疏)라고 하는 시경(詩經) 해석서에는 말 다리에 소 꼬리, 황색에다 둥근 발굽, 외뿔이라는 묘사로 발전된다.
대대례(大戴禮)라고 하는 한대 의례서에는 기린이 모충(毛蟲) 360종 중에서도 우두머리로 간주되고 있으며 춘추감정부(春秋感精符)라는 참위서에는 외뿔이라는 언급이 보인다.
이를 발판으로 마침내 한대 이후가 되면, 기린이라는 동물이 상상의 영역을 박차고 나와, 어떤 사람(주로 천자)이 어디로 사냥을 했다가 기린을 포획했다는 언급으로 발전되고 있다.
물론 기린 포획 기사는 일찍이는 공자 말년에 해당하는 좌전(左傳)의 노(魯) 나라 애공(哀公) 14년 봄 대목 기사에서 "서쪽으로 사냥을 나갔다가 기린을 포획했다"는 언급으로 보이고 있기는 하다.
그러나 이 때 기린이 어떻게 생긴 동물이었는지는 도대체 알 수 없다.
그러던 것이 한대 이후가 되면서 심심찮게 기린을 포획했더니 그 모양이 이러이러하더라고 하는 기록으로 큰 변천을 겪게 된다.
문헌에 따라 기린은 그 실체가 상충되는 면이 없지 않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은 그것이 무엇보다 상상의 동물이기 때문이다. 예컨대 앞서 인용한 문헌 중 모시주소에는 그 색깔을 황색이라고 했으나, 후한시대 반고의 한서(漢書)에는 백린(白麟), 즉, 흰색 기린을 포획했다는 기사가 실려 있다.
이런 기린이 한반도에는 언제 어떤 경로로 입수되었는지는 확실치 않다. 다만, 고구려 고분벽화에는 기린을 형상화했다고 생각되는 동물이 보이고 있는 점이 주목된다.
신라의 경우 적석목곽분 시대 말기가 되면, 이미 들어와 있었음이 확실하다.
신라에서 봉황이라든가 용을 활용한 환두대도와 같은 유물은 5세기 말에 축조되었다고 간주되는 경주 식리총 이후 빈번히 출토되고 있다.
봉황이나 용은 앞서 보았듯이 기린과는 뗄 수 없는 신령한 동물로 한 묶음되었으니, 그런 동물 도상들이 나온다는 사실은 그것과 밀접한 관계에 있는 기린 또한 그시대에 신라사회에 침투돼 있었다고 보는 것이 지극히 당연할 것이다.
이런 여러 가지 정황이나 고고학적 발굴성과를 감안할 때 천마총 출토 천마도장니가 묘사한 동물이 말이 아니라 외뿔박이 유니콘인 기린으로 밝혀진다고 해서 하등 이상할 것도 없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