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감했으나 완고했으며, 야성적이었으나 어린아이 같았다".(막심 고리키).
"나는 톨스토이의 죽음이 두렵다. 만일 그가 죽는다면 내 가슴 속에도 커다란 빈자리가 생길 것이나. 나는 종교를 믿지 않으나 나에게 가장 적합하고 가장 가까운 종교는 바로 그의 신념이다."(안톤 체호프)
24살 때인 1852년, 첫 작품 `유년시절'을 발표한 이후 무려 58년이나 글을 쓴 톨스토이는 생애 막바지에 쓴 한 일기장에 이렇게 적었다.
"이제 작품을 써야겠다는 생각이 절실하다."
그러나 그는 영영 돌아오지 않았다. 1910년 10월29일 새벽 훌쩍 집을 떠난 지 20일 가량이 지난 11월20일 아침 6시 5분, 토마스 만과 로맹 롤랑을 비롯한 당시 서유럽 지식인들에 의해 유럽의 양심이라고 추앙되던 그는 아스타포보 역장 관사에서 1828년 9월 9일에 시작된 82년이라는 긴 생애를 마감했다.
말년에는 석가모니 부처와 불교를 접했고, 노자(老子)와 공자(孔子)를 알고는 그들에도 심취했다. 특히 노자에 대한 열정은 대단했다.
서구 열강이나 신흥 제국주의 국가 일본에 러시아의 영광이 나날이 줄어들어서일까? 말년에는 누구보다 제국주의를 경멸한 그는 손자들과 세계전도를 펼쳐놓고 극동아시아를 주목했다.
러-일 전쟁에서 러시아가 패하는 굴욕적인 시대를 맞보았으며, 그랬기에 어쩌면 같은 처지라고 할 수 있는 조선에 대한 애정도 많았다고 알려져 있다. 오죽했으면 죽기 한 해 전, 하얼빈 역에서 들려온 총성, 조선의 안중근이라는 젊은이가 이토 히로부미를 총살했다는 소식에 그토록 감격해 했을까?
레오 톨스토이. 동양을 흠모했으나, 동양 땅은 한번도 밟아보지 못한 그가 사후 96년 만에 한국을 찾았다. 도서출판 인디북(사장 손상목)이 서울역사박물관(관장 김우림)과 손잡고 이 박물관에서 10일 개막하는 특별전 `톨스토이 전(展)'.
내년 3월 27일까지 계속될 이 전시회가 톨스토이가 한국 땅에서 `부활'하는 곳이다. 춘원 이광수 초기 소설에는 톨스토이가 식민지 조선에 미친 영향력이 얼마나 막강했는지가 단적으로 드러나는데, 이런 그를 서울에서 만나게 된 것이다.
이번 그의 한국행은 거창하다. 미술 분야 종사자들에게는 오히려 톨스토이보다 그가 동반한 일리야 레핀(1844-1930)이라는 러시아 최고의 민중화가에 관심이 갈 것이다. 그가 1909년에 그린 유명한 톨스토이 초상화 진본이 나들이를 했다.
그러나 뭐니뭐니 해도 톨스토이 3부작, 즉, `전쟁과 평화'ㆍ`안나 카레니나'ㆍ`부활'의 육필 원고를 만날 수 있다는 점이 매력적이다.
악필로 유명한 톨스토이. 그래서 육필원고는 아내 소피아만이 오직 알아볼 수 있었다는 일화가 전해질 정도인데, 그가 직접 쓰고, 곳곳에 수정과 가필을 가한 친필 원고가 나타났다.
이번 한국전의 러시아 측 책임자인 모스크바 소재 국립톨스토이박물관 나탈리아 칼리니나 씨는 전시 개막 하루를 앞둔 9일 기자들을 만난 자리에서 "진품 400여 점을 포함한 총 600점에 달하는 전시품이 소개된다"면서 "이 같은 대규모 유물 반출은 톨스토이 관련 해외 전시회 중 최다이며, 더구나 육필 원고는 러시아 국경을 나간 적이 없다"고 강조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