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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존과학의 시험대 미륵사지석탑

반쯤은 붕괴돼 버린 전북 익산 미륵사지 석탑. 한국에서는 가장 오래되고 규모가 가장 크며, 한국 석탑의 시원을 이룬다고 해서 국보 제11호로 지정 보호받고 있으나 그 몰골은 흉물스럽기 짝이 없었다.
그 반쯤 붕괴된 곳에 1915년 조선총독부는 둔중한 콘크리트 벽을 쳤다.
이런 조치는 더 이상의 훼손과 붕괴를 막기 위한 것이었다.
혹자는 남아 있는 석탑 덩치만큼이나 우람하게 덧댄 콘크리트 보강벽을 보고 일제가 우리 문화재를 망쳤다고도 비난하지만, 이는 그 시대 사정을 고려하지 않은 억단에 지나지 않는다.
당시로는 이런 방식이 최고 기술력을 동원한 보존조치였다. 해체가 한창 진행되고 있는 지금 분명히 할 것은 붕괴 직전이었던 미륵사지 석탑을 문화재로 재발견해 낸 것이 분명히 당시의 일인(日人)들이었다는 점이다.
그 이전만 해도 미륵사지 석탑이 문화유산의 가치가 다대하다고 인식한 조선인은 전무(全無)했다고 해도 과히 틀린 말은 아니다.
그렇다고 우리가 그 가치를 미처 알지 못했던 미륵사지 석탑을 문화재로 재발견해 주고, 그것이 더 이상 붕괴되는 것을 막아줬다고 해서, 그런 조치를 취한 일인이나 조선총독부에 분에 넘치는 찬사를 던질 이유 역시 없다.
배경에 바로 근대 국민국가(nation-state)라는 속성이 자리잡고 있었기 때문이다. 국민국가는 국민(nation)이라는 집합명사를 만들어내고, 구성원인 국민을 하나로 묶어내기 위해 거의 필연적으로 전통(tradition)을 창출한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이전과는 확연히 다른 차원에서 문화재를 발명해 낸다.
미륵사지 석탑은 물론, 경주 석굴암과 같은 문화유산들이 문화유산으로 진정한 자리매김을 하게 된 때가 식민지시대 어간이었음은 부인할 수 없다.
이 미륵사지 석탑이 21세기 한국 문화유산 보존과학을 시험대에 올려놓고 있다.
이 유산은 워낙 일반 인지도가 높은 석탑인 데다, 사업 규모가 엄청나며, 다른 무엇보다 해체 이후의 모습이 정해지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미륵사지 석탑이 이런 시험대에 오르게 된 것은 1915년 콘크리트로 보강한 부분이 세월의 무게를 이기지 못하고 붕괴 조짐을 보이고 있고, 외관에서도 기존에 남아있던 석탑 부분과 조화를 이루지 못하고 있다는 문제의식에서 비롯됐다.
이에 1997-98년에 전북도 주관으로 재단법인 한국건설안전기술원에 의뢰해 실시한 구조안전진단 결과 해체해야 한다는 결론이 내려짐에 따라 1999년 4월 17일 문화재위원회 심의를 거쳐 해체보수 방침이 결정됐다.
애초에 이 사업은 문화재청 감독을 받아 전북도가 진행하기로 했으나, 여러 문제점이 노출됨에 따라 2001년 10월 24일 대행사업 협약을 통해 국립문화재연구소가 직접 뛰어들게 됐다.
이에 그 해 10월 31일에는 공사 시작 의식인 고유제를 지내고 남아 있는 석탑 중 맨 꼭대기인 6층 옥개석을 해체한 것을 시발로 2002년에는 3층까지 해체했고, 2004년 12월 현재는 1층과 바닥만 남겨두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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