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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상헌의 심우도] 和(화)-피리 부는 사나이

날씨는 온화(溫和)하라, 세상은 평화(平和)로우니

 

주요 방송의 날씨(일기예보)는 대개 용모(容貌) 단정, ‘날씨요정’ 별칭으로도 불리는 젊은 여성들 차지다. 영어권에서도 일기담당자(전문가)라는 미티오랄러지스트(meteorologist)라는 (공식)명칭이 있는데도, 꽃나이 묘령(妙齡) 여성이면 ‘웨더 걸’이라 부른다.

 

어디서나 ‘그 세계’는 경쟁의 도가니라고 한다. 선후배 간 소통방식이나 규칙, 어휘(語彙) 활용법 등의 내림(전통)이 있겠다. 허나 어떤 때 (좀 있어 보이는) 어떤 말을 누군가 쓰기 시작하고, 시청자에게 먹힌다 싶으면 다른 이들도 경쟁적으로 따라한다.

 

일반 시민의 언어생활에 유행처럼 번지기도 한다. 때로 어색한 말이 (그 동네에서) 돌다가 하릴없이 사그라지는 것도 관찰된다. 방송의 언어는 시민의 ‘말글 선생’이어서 공공(公共)언어로서의 역할(책임)을 잊으면 안 된다.

 

겨울 되면서 ‘온화하다’는 말이 날씨요정들 사이에 유행을 타는 듯하다. 들어보니 ‘온난하다’의 뜻으로 이 말을 대충 질러버리는 모양새다. 계절에 비해 따뜻한, 그러면서 햇살도 좋아 산책이라도 즐길만한 날씨가 온난(溫暖)이겠다.

 

온화는 ‘편안하다’는 穩을 쓰는 穩和와 ‘따뜻하다’는 溫을 쓰는 溫和의 두 가지를 떠올릴 수 있다. ‘온화한 인품(人品)’처럼 저 둘을 다 (사람을 평가하는) 비슷한 뜻으로 써왔다.

 

영어 마일드(mild)는 날씨, 커피의 농담(濃淡·진하거나 옅음), 인품 등에 두루 쓰이는 말이다. 그래서 우리말로는 대체로 ‘온화’로 번역된다. 영어권 날씨뉴스에서 ‘마일드’가 자주 쓰인다. 우리 날씨뉴스에 ‘온화하다’가 떠오른 까닭일까. 어색하진 않다. ‘언어현상’의 하나로 본다.

 

穩和와 溫和의 두 말에 다 들어있는 화(和)를 챙겨볼 일이다. 평화(平和)의 和이니 참 아름다운, 요즘 우리 사회에 유행하는 말, ‘힐링’의 언어다.

 

유럽과 중동의 ‘야만인’들이 사람이 (잘) 살기위해 만든 종교나 이념을 도구삼아 지 이끗만을 속셈질하며, 정작 ‘사람’은 부정하는, 전쟁에 빠진 상황이다. 평화(peace)나 온화의 和는 인류의 본디를 돌아보는 향수(鄕愁 노스탤지아) 되어 세상을 감싼다.

 

날씨요정들이 불러온 ‘온화’의 和에서 뜻밖의 피리소리를 듣는다. 음악은 영롱하게 사람의 세상, 인간의 지구촌을 보듬는다. 사랑이다. 오래 인류는 동아시아의 옛 마음을 잊고 살았다.

 

문명의 새벽, 동이(東夷)겨레도 함께였을 대륙 중원 황하(黃河) 유역의 갑골문 사람들이 온화하고 따뜻하고 부드럽다는 뜻으로 글자를 지었다. 벼(禾 화)와 피리(龠 약) 그림의 합체였다.

 

피리는 입(口 구)으로 분다. 말하고 노래하는 입은 또한 밥을 먹는 기관(器官)이다. 풍류(風流)는 인심처럼 ‘밥’에서 나온다. 그 풍류와 인심이 평화의 和다. 그 피리가 세월과 역사 속에서 口자로 모양 바꿔 도안(圖案 디자인)된 것이다.

 

누가 아니라 할까? 종교가? 좌우(左右)의 이데올로기가? 어리석다 혀 끌끌 차는 경건(敬虔)과 겸허(謙虛)의 철학 윌리엄 워즈워스(1770~1850 영국시인)와 헤르만 헤세(1877~1962 스위스작가)를 떠올리자. 서양에도 예전에는 저런 마음이 더러 있었더라.

 

워즈워스의 그 무지개는 이제 아시아에서 떠오를까. 말은, 언어는 일과 물건 곧 사물(事物)의 이름이면서 그 본디를 가리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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