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카드수수료의 기반이 되는 적격비용 제도를 개선하기 위한 작업이 차일피일 미뤄지고 있다. 카드업계는 사실상 현재 수준에서 수수료율이 합리적으로 조정돼야 한다는 입장이지만, 금융당국의 상생금융 의지 및 총선을 앞둔 정치권의 표심잡기와 맞물려 쉽지 않을 전망이다.
5일 금융권에 따르면 금융위원회 주도로 구성된 '카드수수료 적격비용 제도개선 TF(태스크포스)'는 올해 안으로 제도개선 방안을 발표하기 위해 논의를 이어가고 있다. 당초 올해 3분기 안으로 제도개선 방안을 마련해 발표하겠다고 했으나 여전히 답보 상태다.
TF는 적격비용 기반 수수료 제도가 카드사 신용판매 원가 등을 적절히 반영하는지 재점검하고, 전반적인 카드수수료 체계 개편방안을 마련하고 있다. 적격비용 재산정 주기를 3년에서 5년으로 늦추는 방안도 검토 중이다.
카드업계는 0%대의 수수료율로 인해 본업인 결제 부문에서 수익을 내지 못하고 있어 수수료율을 합리화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2007년 제도가 도입된 이후 적격비용을 재산정할 때마다 수수료율이 인하되면서 연 매출 3억 원 이하 영세 가맹점 카드수수료는 4.5%에서 0.5%로, 연 매출 3억 원 이상 30억 원 미만 소규모 가맹점 카드수수료는 3.6%에서 1.1~1.5%로 낮아졌다. 우대수수료를 적용받는 가맹점은 전체 가맹점 중 96%에 달한다.
게다가 조달금리가 오르면서 수익성이 악화됐고, 고금리가 장기간 이어지며 연체율도 높아지고 있어 대출 등 다른 금융상품으로도 수익을 내기 어려운 상황이다. 실제로 올해 3분기 국내 8개 전업카드사(신한·삼성·KB국민·현대·롯데·우리·하나·BC)의 합산 당기순이익은 7369억 원으로 전년 동기(8626억 원)보다 15% 줄었다. 같은 기간 연체율(1.67%)도 0.6%포인트(p) 높아졌다.
하지만 금융당국의 상생 의지가 강하고, 내년 4월 총선을 앞두고 선심성 정책이 나올 수 있어 이번에도 카드업계가 원하는 방향으로 제도가 개선되긴 어려울 것이라는 관측이 우세하다. 특히 최근 윤석열 대통령이 직접 서민경제를 챙기겠다고 나선 만큼, 자영업자들의 수수료율 부담을 덜어주는 쪽으로 개편될 것이라는 전망에 힘이 실린다.
일각에서는 카드사들이 고객에게 제공하는 혜택을 줄이게 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최근 카드사들은 무이자할부 기간을 2~3개월로 줄이거나 혜택이 좋은 카드를 단종시키는 등 보수적인 영업을 이어가고 있다. 여신금융협회에 따르면 지난 3분기까지 국내 8개 카드사가 단종시킨 카드는 총 282종(신용카드 247종, 체크카드 37종)으로 단종 카드 수가 취합되기 시작한 2017년 이후 최대치다.
한 금융권 관계자는 "가맹점 수수료는 이미 내릴 수 있는 만큼 내려간 상태지만, 총선 등 정치적 이슈가 있는 만큼 수수료율이 올라가기는 어려워 보인다"며 "그렇게 되면 상황이 열악해진 카드사들이 소비자 혜택을 줄이는 선택을 하게 될 가능성도 있다"고 말했다.
[ 경기신문 = 고현솔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