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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건행 칼럼] 초시대성의 장인 정신

 

지난 여름과 가을에 경주를 찾았다.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된 남산까지 자세하게 훑어보려면 한 번의 여행으로는 어림없었기 때문이다. 맛집 순례도 여행의 큰 즐거움인데 생고기집과 횟집, 커피숍 등 찾아간 곳 모두 대단한 수준이어서 깜짝 놀랐다. 획일적인 맛을 자랑하는 프랜차이즈 음식을 비웃기라도 하듯 맛이 개성적인데다 깊었다.

 

생고기집은 인상적이어서 이틀 연속 찾아갈 수밖에 없었다. 한우 암소 갈빗살과 삼겹살 모두 최고 품질이면서도 가격은 저렴한 편이었다. 60대 사장은 그 비결을 젊어서부터 고기를 다뤄 안목과 확보돼 있는 거래선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된장찌개도 담백하면서 깊어 자주 손이 갔는데 누군가 레시피 정보 제공 가격으로 2000만 원을 제시했지만 넘기지 않았다고 한다. 아무튼 생고집의 맛 비밀은 줄기차게 한 우물을 판 뚝심과 세월에 있을 것이다.

 

보문단지 쪽 뒷골목에 있는 횟집은 구식 건물에 들어서 있어 을씨년스럽기까지 했다. 이렇다 할 정보 없이 찾아갔기에 맛집 순례에 찬물을 끼얹을 수도 있었다. 그러나 그것은 기우에 지나지 않았다. 바구니에 담겨져 나온 참가재미회에서 윤기가 흘렀던 것이다. 쫀득한 식감에다 양도 넉넉해서 고급 일식집이 부럽지 않았다. 숙소로 돌아와 횟집 내력을 검색해보니 노부부와 아들이 함께하는 연륜있는 맛집이었다. 특히 노블레스 오블리주의 대명사 격인 경주 최 씨 후손이라는 이야기까지 곁들어져 믿음을 배가시켰다.

 

남산 쪽 언덕 위 카페는 연륜과는 상관없는 모던한 곳인데 이즈음 유행하는 소금빵 맛이 군더더기 없이 깔끔했다. 커피 맛도 새로워 오랜 시간 연마한 솜씨임을 알아차리게 했다. 과거를 음미하기 위해 떠난 경주에서 현대를 맛보게 된 것은 전혀 뜻밖이었다. 유행어가 된 콘텐츠로 승부하라는 말에 딱 맞는 카페인 것이다.

 

연륜이 묻어나는 이런 맛집은 어디서든 인기다. 필자가 사는 동네인 분당에도 발효빵집과 평양 냉면집, 생고기집, 숙회집, 연포탕집, 닭한마리집 등 이름난 맛집이 많다. 아무 때나 찾아가도 손님들로 붐빈다. 일부는 준비한 재료가 소진돼 일찍 문을 닫기도 한다.

 

맛집들이 소문난 까닭은 몇 가지로 요약할 수 있을 것이다. 첫째, 엄선한 좋은 식재료만 쓴다. 둘째, 축적된 이른바 맛의 노하우가 있다. 셋째, 원재료 맛에 충실해서 달거나 맵거나 짜지 않는 등 건강식이다. 넷째, 돈을 앞세우지 않는다. 이를 가능케 하는 것은 장인 정신이 아닐까 한다. 오랜 시간 동안 우리의 경제적 삶을 지배해온 천민자본주의와 대척점에 있기 때문에 그 의미는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침이 없을 것이다.

 

주지하다시피 한국의 경제 규모는 세계 13위(2022년 GDP 기준)다. 게다가 신자유주의의 영향으로 세계 시장이 단일 시장이 되어 우리는 소비 지상주의 세계에 살고 있다. 소비가 곧 미덕이라는 전례없는 희한한 가치가 우리의 신화가 된지 오래되었다. 이 때문에 음식에 있어서도 기름지고 자극적인 것들이 주류를 이룬다. 돈만 쫒기에 건강이나 자연과의 조화 등을 신경 쓸 리 만무하다.

 

장인 정신은 필연적으로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행위와 정반대 지점에 있다. 그렇기 때문에 무분별한 소비 지상주의와 거리가 멀다. 두 번의 경주 여행을 통해 맞닥뜨린 건 역사만이 아니었다. 장인 정신이라는 익히 알고 있지만 제대로 알지 못하는 가치와도 마주했던 것이다. 어쩌면 장인 정신이야말로 시대를 뛰어넘는 진정한 역사인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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