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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은경의 예술 엿보기] 재미와 생생한 현장감이 넘치는 단원 김홍도의 풍속화-삶을 즐기는 사람들

2024년 새해가 밝았다. 이제 모든 것이 새로 시작된다. 이때쯤 되면 누구나 결국 지키지 못할 거창한 새해 결심을 한다. 지나온 해들을 돌아보니 너무 열심히 사느라 나 자신을 돌볼 틈이 별로 없었다.

 

그래서 올해는 조금 느리게, 나 자신을 가장 배려하며 사는 나의 해가 되어보면 어떨까 생각을 했다. 그러나 현실로 돌아오면 그것이 쉽지가 않다. 회사도 다녀야 하고, 가정도 돌아봐야 하고 참 할 일이 많다.

 

이런저런 생각을 하다가 문득 오래전에 재미있게 보았던 단원 김홍도의 화첩이 생각났다.

 

김홍도의 풍속화에는 작업 현장의 생생함이 살아 있는 것들과 함께 서민들이 빠듯한 삶 속에서 나름대로 재미와 유머를 잃지 않고 살아가는 모습이 유쾌하게 그려진 작품이 많다. 하나하나 세심히 살펴보면 익살스러운 표현에 절로 웃음이 난다.

 

 

도화서 화공들로 보이는 사람들이 그림 하나를 들고 이리저리 감상하고 있다.

 

예전 드라마 “바람의 화원”에서는 대행수 집에 행수들과 양반들이 모여 서화를 감상하며 경매를 하는 모습을 보여주었는데 당시 실제로 그러한 형태의 경매가 있었는지는 알 수 없지만, 그림이나 서예를 감상하며 즐기는 것은 양반들 사회에서 일반화됐던 것 같다.

 

이 그림에서는 부채로 입을 가린 사람이 그림을 설명하는 사람이다. 이는 그림에 침이 튀지 않도록 하는 모습으로 당시 그림을 감상할 때에는 이렇게 예절을 갖추었음을 세밀하게 묘사하고 있다.

 

 

고누놀이는 서민층에서 유행하던 놀이로 장기가 우리나라에 들어와서 재창작된 것으로 보인다. 나무를 한 짐씩 해서 산을 내려온 후 잠시 땀을 식히며 고누놀이에 빠진 서민들의 망중한을 엿볼 수 있다.

 

 

많은 사람들이 빽빽하게 배에 올라타 어디론가 가고 있다. 심지어 소와 말까지 큰 짐을 지고 나룻배를 타고 있다.

 

이 그림은 조선 후기 상업이 발달하여 조운 교통을 이용해 사람과 재화의 이동이 활발하게 이루어졌음을 보여준다.

 

나룻배의 공간이야말로 어떤 장소로 이동하려는 목적지가 같은 사람들이 모인 순간적인 집단으로 양반과 평민, 아이와 어른, 아녀자, 가축까지 모두 한배에 타고 그 순간만큼은 신분의 고하를 막론하고 운명을 같이 하는 공동체가 되는 공간이다.

 

 

두 아들을 데리고 나들이를 나온 중인 부부의 모습, 아내는 아이를 무릎에 앉히고 소 위에 올라타 장옷을 걸치고 있고, 남편은 아이를 업고 그 뒤를 따르고 있다. 나들이의 설에 아내의 얼굴이 발그레하다.

 

아이를 업은 남편의 등짐에는 닭 한 마리가 들어 있다. 잠든 듯한 아이와 고개를 빳빳이 세운 닭의 모습이 재미있는 대조를 이룬다.

 

그 옆을 지나가는 선비 한 명, 넓은 갓을 쓰고 말을 탄 남자가 나들이 가족과 길가에서 엇갈려 지나가는 광경이다. 부채로 얼굴을 반쯤 가리고 장옷을 쓴 부인을 넌지시 건너보는 것으로 보아 풍류객임이 틀림없는 그 순간의 정황이 잘 포착되었다.

 

더욱 재미있는 것은 망아지 한 마리가 말을 따라오며 어미말의 젖을 빨고 있다.

 

 

드라마 "바람의 화원"에서는 웃지 않는 아이를 웃게 하기 위 김홍도가 무동을 그리는 것으로 나오는데 사실은 당시 춤을 아주 잘 추는 아들을 가진 아비가 김홍도를 찾아와 춤추는 아들의 모습을 그림으로 남기고 싶다고 간곡하여 그리게 되었다 한다.

 

이 그림에는 조선시대의 악기 연주자들의 모습이 잘 나타나 있다. 왼쪽으로부터 북, 장구, 피리 부는 사람 2명, 대금, 해금을 켜는 사람이 앉아 열심히 연주에 몰두하고 있다. 악기 연주자들은 저마다 자신의 악기 연주에 취해 덩실덩실 소맷자락을 휘날리며 춤추는 무동과 하나가 되어 있다.

 

신명나서 입을 벌리고 춤을 추는 아이의 흥겨움과 각종 악기소리가 울려나는 그림, 이렇게 김홍도의 그림에는 많은 소리를 담고 있다. 김홍도의 그림은 보는 순간 마치 환청처럼 그 소리가 같이 들리는 것 같다.

 

 

이 그림은 "씨름"과 더불어 김홍도의 풍속화 중 가장 잘 알려진 그림이다. 훈장 선생님에게 호된 회초리를 맞고 울고 있는 아이와 이를 보고 키득거리는 아이들의 모습이 재미있게 묘사되고 있다. 갓을 쓴 학생은 늦은 나이에 어린 친구들과 공부를 시작한 만학도인 듯하다.

 

김홍도의 작품은 이렇게 정황이 묘사되어 있어서 그림을 토막토막으로 잘라 칸 속에 넣으면 그대로 하나의 만화나 이야기가 된다.

 

 

노련한 무인이 신참에게 활쏘기 자세를 직접 지도하고 있다.

 

어험, 그렇게 구부정한 자세로야 활을 제대로 날아가게 쏠 수 있겠는가? 호통을 치자 신참이 바짝 긴장하여 얼굴이 붉그레해지고 잘 쏘아보려고 입을 꽉 다물고 있다. 그 옆에는 활의 휘어짐을 바로잡는 무인, 화살의 바르기를 확인하는 무인의 모습이 세세히 묘사되어 있다.

 

 

초례를 치르러 신부집으로 향하는 신랑의 행렬이다.

 

청사초롱을 앞세우고 오리 아범이 전안을 받쳐 들고 가고 있다. 긴 행렬이 가파르게 꺾인 산모퉁이를 돌아오는 것으로 화폭을 설정함으로써 사선과 수평선의 구도를 잡아 화면이 살아 움직이는 것 같은 생동감이 살아났다.

 

 

드라마 "바람의 화원"에서 단원과 혜원의 화사 대결 장면에서 나온 김홍도의 그림이 바로 "씨름"이다. 역사 속에서는 단원과 혜원이 화사 대결을 벌였다는 기록은 없으며 그 둘이 스승과 제자 사이였다는 단서도 찾아볼 수 없다.

 

이 그림에는 '으랏차차~' 씨름판이 벌어진 다이내믹한 모습이 제대로 살아있다. 두 선수는 있는 힘껏 샅바를 잡아당기고 있으며 한 남자는 벌써 다리를 들렸다. 갓을 푼 구경꾼들은 응원에 신명이 났고, 오른쪽 하단의 두 명의 구경꾼은 한판 승부로 넘어가려는 씨름꾼들을 보며 입을 쩍 벌리고 있다.

 

복잡한 틈바구니에서 조금도 요동하지 않으며 엿을 팔 고 있는 엿 장수의 모습도 재미있다. 이 그림은 일반적인 그림과 같이 중앙부터 하단까지 그림을 배치하고 상단을 비우는 것과는 달리 테두리 쪽으로 구경꾼들을 배치하고 중앙의 여백을 남겨 그 속에 씨름꾼들을 배치함으로써 보는 사람들에게 더 강한 현장감을 제공하고 있다.

 

또한 오른쪽 하단의 남자의 오른손 왼손이 바뀌어 있어 이것이 단원의 실수인지, 아니면 장난스러운 단원의 재치인지에 대하여 상당한 논란이 되는 그림이기도 하다.

 

 

두 승려가 부적인 듯한 물건을 펼쳐놓고 목탁을 두드리며 시주를 호소하고 있다. 지나가던 여인이 엽전을 꺼내려고 치마를 걷고 바지춤에 넣어놓은 주머니를 열며 흥미로운 표정을 보이고 있다.

 

당시 점을 보거나 무당 굿을 하는 것은 법으로 금지되어 있었으나 공공연하게 이루어진 일이었다고 한다. 한 치의 앞도 내다볼 수 없기는 예나 지금이나 마찬가지였고 답답한 심정을 점괘를 통해서나마 풀고 싶은 심정도 같았던 듯하다.

 

 

고된 노동 후에 꿀맛 같은 점심시간이다.

 

모두들 남의 시선은 아랑곳하지 않고 즐겁게 밥을 먹고 있다. 웃통을 훌훌 벗어던진 남자들의 틈바구니에서 아낙네가 거리낌 없이 가슴을 풀어헤치고 아기에게 젖을 물리고 있으며 그 옆에 앉아 밥을 먹고 있는 아이의 모습도 보인다. 한 광주리 먹을 것이 그득하고, 개 한 마리가 물끄러미 밥 먹는 사람들을 쳐다보고 있다.

 

 

밥그릇을 기울여 남은 국물을 마지막 한 숟가락까지 퍼먹는 남자의 모습을 보니 이 남자 무척 배가 고팠든지 아니면 이 주막의 국밥이 엄청 맛있든지......

 

피곤에 지친 주모는 술동이에서 술을 푸고 있고 그 옆에서 아들이 자꾸만 뭔가 보채고 있다. 그 옆에는 젖가슴을 드러내고 곰방대를 문 아주머니가 앉아서 그릇을 닦고 있다. 이 모두 서민들이 즐기는 값싼 주막에서 봄직한 모습들이다.

 

이렇게 우리의 옛 선조들은 어려운 환경에서도 유머와 재치를 잃지 않고 살아내어 지금의 대한민국이 존재한다고 생각하니 웃음과 함께 울컥하는 감동 같은 것이 마음 밑바닥에서 올라왔다. 올 한 해 우리는 또 다사다난하게 살아가겠지만 유머와 감동을 잃지 않았으면 한다.

 

조만간 안산에 있는 단원 김홍도 미술관이나 다녀와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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