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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활에세이] 생명의 본질적 눈물

 

묵은해 가고 새해가 된 지 보름이 지났다.

 

나는 어머니가 만들어 주신 색동옷 입고 동무들과 제기차기 놀이 하던 시절이 지나고부터는 새해를 기다리거나 기대해 본 적 없다. 사람들이 새해의 첫 날인 설에 어떤 의미를 두는 이유는, 어제와 다른 오늘을 살고 싶기 때문일 것이다. 다가올 날이 지나간 세월보다 못하거나 바랄 게 없다면 누가 내일의 희망과 꿈을 설계하며 새벽길 안개를 헤치고 교회로 해 뜨는 곳으로 향하겠는가.

 

호남의 기호학파 간제(艮齊1841-1922)선생은 ‘성(性)이 곧 이(理)’라는 성리학 본령을 확고하게 세워 성선(性善)에 기반 한 의리(義理)의 세계를 구현하고자 했던 당대의 거유(巨儒)다. 그가 말했다. ‘나그네로서의 근심을 없애라. 평생 남을 탓해봐야 아무런 득이 없고 잠시라도 자기를 돌이켜보면 여유의 맛(味)이 있으니 어찌하여 이 맛이 있는 것을 버리고 저 무익한 것을 취하는가?'라며 자기 성찰을 명징하게 당부했다. 그리고 '끝까지 하라. 어떤 분야든 5년 10년 지나면 단맛이 나는 게 없다. 자기가 좋아 하는 일을 끝까지 하는 게 노년에도 최고의 건강 유지법이다'라고 하였다.

 

나는 초등학교 때부터 그림 그리기와 편지 쓰기를 좋아했다. 교과서 중에서도 국어와 역사 시간이 기다려졌다. 그러면서 일기를 썼고 책 읽기에 빠져들었다. 1970년 초등학교 교사로 재직할 때는 그 학교의 어린이신문을 최초로 제작했다. 1980년대에는 지방의 모 방송사에서 일했다. 고전을 공부하면서 ‘마음을 바로 쓰라. 이는 자손의 뿌리가 되기 때문이다. 제대로 뿌리를 박은 나무가 아니면 가지와 잎이 무성할 수 없다’는 진리를 배우기도 했다.

 

그래서였을 것이다. 지난해 말, 서울에 사는 손자손녀에게 책을 사서 보내며 편지를 써 작은 용돈과 같이 보냈다. 그런데 공휴일을 제하고도 일주일이 지나도 도착하지 않았다는 말을 듣고는 은근히 걱정스러웠다. 그러나 받았다는 소식을 듣고 아이들 마음에 내가 살아가는 보법 중 하나의 발자국을 새겨주는 기회가 되었다는 위로가 따랐다.

 

새들이 떠나간 숲 같이 적막한 어느 날 아침, 아파트를 빠져나와 90세 문턱을 앞둔 누나를 찾아갔다. 나이 든 사람이 더 많은 나이의 윗사람을 찾아가는 마음은 결코 즐거움만은 아니다. ‘운명이 나에게 좋은 카드를 준 것 같지 않다’는 마음이고 보면 더욱 그렇다. 누나는 반갑게 맞아주었다. 거실 의자에 앉자 내 손을 쓰다듬으며 어떻게 먹고 지내느냐고 아이 대하듯 했다. 누나의 온몸은 문자 그대로 피골이 상접한 그 모습이었다. 누나는 끝내 눈물을 보이며 나를 붙잡고 울었다. 그런 뒤 ‘그만 갔으면 좋겠다’고 했다. 홀로 된 지 20년이 훨씬 지난 누나의 고독이 읽혀졌다.

 

한동안 앉아 있다 일어섰다. 누나는 다시 눈물을 흘리며 이제 언제 또 볼 것이냐고 하며 내 손을 잡고 ‘불쌍해서 어쩔거나’ 하면서 또 울었다. 나는 한동안 꼭 껴안아 드리고 나왔다. 자동차 시동을 걸고 출발하려는데 누나는 언제 나와서 내 차 앞에 서 있었다. 차의 유리창을 내리면서 들어가시라고 하니 용돈이 든 봉투를 던져 주면서 어서 가라고 했다. 깨어 있는 침묵의 바보 같이 살아가는 내 눈에서도 눈물이 흘러내렸다. 아니 생명의 본질적인 그 무엇이 서글퍼서 울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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