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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상헌의 심우도] 용(龍)과 사이비(似而非)

새해의 상징-용의 해인가, 드래곤의 해인가?

 

사이비는, 생활에서나 공부에서나, 경계(警戒)하여야 할 대상이다. 사이비종교 사이비기자 등 그 경계의 사례를 보여주는 어휘들이 수두룩하다.

 

서양문물의 영향 때문에 동아시아 문화의 거대한 상징인 용(龍)을 드래곤(dragon)이라고 번역한 것도 물론 사이비다. 새해 ‘청룡(靑龍)의 해’를 ‘이어 오브 블루 드래곤(Year of Blue Dragon)이라고 쓴 여러 (영문) 매체를 보면서 느낀 생각이다.

 

우리에게는 드래곤(이라는 상상 속 동물)이 없다. 서양에는 龍(이라는 상상 속 동물)이 없다. 어쩌다 언제부터인지 용을 드래곤이라고 번역하고, 시간 지나도 그 번역이 황당하다 생각하는 지적이 없었음이 신기하다.

 

개는 도그(dog), 계란은 에그(egg)지만 용은 드래곤이 아니다. 그럼 뭔가, 용은 용이고 영자(英字)로 적자면 ’yong’이다. 청룡처럼 [룡]으로 발음될 때는 ‘ryong’으로 적으면 된다. dragon이 드래곤인 것도 같은 이치(理致)다.

 

번역할 필요가 없는 개념이나 사물인 것이다. 단군 할아버지를 영어로 어떻게 번역하려는가. 그리스·로마 신화의 주인공 제우스나 디오니소스를 어떻게 번역하려는가. 이럴 때 필요한 것은 ‘단군은 겨레의 시조(始祖)로서...’하는 해설(解說)이지 번역(飜譯)이 아니다.

 

사이비(似而非)는 닮았지만(似而) 아닌(非) 것이다. 용과 드래곤은 단지 ‘상상의 동물’이라는 점만 닮았지, 각각을 구성하는 여러 이미지는 천양지차(天壤之差·하늘과 땅 차이)로 다르다. 이를 짝으로 맞춰 사전에까지 올려둔 언어 관계자들의 머저리스러움이 새삼 한심하다.

 

우리 하늘의 은하수(銀河水), 영어로는 휴대전화 상표로 익숙한 갤럭시(galaxy)다. 원래 우리 이름은 미리내다. 미르는 용, 내는 시내 즉 개천이니 용천(龍川)일세. 발음은 이쁘고 뜻을 거창하다. 하늘을 올려다 본 선조들의 마음을 짐작해본다.

 

겨레 간, 문명 간 생각이나 표현의 차이 등을 곰곰 궁리하다보면 14, 15세기 이후 대양(大洋)을 차지하고 산업혁명을 일으켜 한동안 세상을 오로지하다시피 한 해적 무리 출신 서구(西歐) 국가들을 생각난다.

 

현대사 비참(悲慘)의 터전이었던 것이다. 노예와 식민주의는, 모양을 바꾼 채, 현재진행형인가. 전쟁과 재앙의 시대를 살면서 다만 인류의 종말을 위한 레퀴엠(진혼곡)을 마련하는 것 말고는 방법을 못 찾는 인류를 슬퍼한다.

 

인간의 마음, 그 결정(結晶)인 문명은 손을 잡고 가는 것이다. 두 사람(이상)이(仁 인) 함께 가는 동행(同行)이고, 이는 곤 동양의 가치 덕(德)이다. 아기까지 총살하는 것이 문명인가?

 

덕(德)을 good(굿) virtue(버튜) 정도로 번역하거나 해설할 수는 없다. 그 차이는 심성(心性) 발현의 섬세한 뉘앙스(語感 어감)일 터다. 비교문화론 같은 공부가 필요한 까닭이다.

 

서구의 여러 언어들에 현혹돼 자신의 안목(眼目)을 키우지 못하는 것은 인류 전체로 보아서도 큰 비극이다. 나의 내면을 바라보는 새해가 되도록 명상하리라 다짐하는 까닭이다.

 

이무기는 혹 용이 될 수도 있겠지만, 찌질한 드래곤은 용이 될 수 없다. 이무기는 뿔이 없고 드래곤은 여의주가 없다. 여의주 없는 용은, 말이 안 된다. 사이비는 잘 해도 사이비다.

 

우리 청년들은, 드래곤 말고, 용이 되거나 용을 잡으라. 쩨쩨하지 말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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