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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문소] 덕적도에 울려 퍼진 “대한 독립 만세”…인천 옹진군 ‘순국열사 임용우 선생 영세불망비’

1919년 4월 9일 명덕학교의 임용우 선생 주도로 만세운동 펼쳐
5월 10일 서울 서대문형무소에서 순국.
1946년 8월 15일 순국열사 임용우 선생 영세불망비 세워져

 

28. 덕적도에 울려 퍼진 “대한 독립 만세”…인천 옹진군 ‘순국열사 임용우 선생 영세불망비’

 

1919년 전국적으로 진행된 3·1운동은 인천에서 남서쪽으로 70km가량 떨어진 인천 서해 섬마을 덕적도에도 영향을 끼쳤다.

 

전국적인 3·1운동의 영향을 받은 덕적도의 만세운동은 임용우 선생이 전파했다. 그는 1884년 9월 24일 경기도 김포군(현 김포시) 월곶리에서 태어났다. 1912년에 초빙교사로 덕적도 진리 명덕학교에서 8년간 일어와 산수를 가르쳤다.

 

그는 자신의 고향에서 만세운동을 시작했다. 1919년 3월 29일 월곶면의 지역 주민 수백 명은 갈산리 근처에 모여 만세를 외쳤다. 이후 임용우 선생은 자신이 근무하던 명덕학교가 있는 덕적도로 이동했다.

 

이는 지역 유지들이나 종교단체에서 뜻을 모아 설립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특히 진리의 명덕학교는 1933년 5월 공립학교령에 따라 공립 보통학교로 통합되었고 현재까지 덕적도의 유일한 학교로 남아있다.

 

덕적도에는 진리의 명덕학교, 소재마을의 명신학교, 서포리의 합일학교가 있었다. 이는 공익을 위해 세운 교육기관으로 한문을 가르치는 사숙(私塾)에서 한 단계 발전한 근대학교였다.

 

 

같은 해 4월 9일 임용우 선생은 진리 해안에서 덕적도 세 사립학교의 종합운동회를 개최해 학생과 지역 주민 등 많은 사람을 집합시켰다. 임용우 선생의 연설을 시작으로 서포리 서당 선생인 이재관은 유고문을 낭독했다. 이후 임용우 선생을 비롯해 이재관·차경창 선생의 주도로 학생들과 주민 수십 명은 “대한 독립 만세”를 외쳤다

 

밤이 되자 주민들은 각자 마을의 산봉우리에 올라가 불을 피우고 늦은 밤까지 만세 운동을 했다.

 

다음 날인 4월 10일 임용우 선생은 이재관, 차경창 등과 인천경찰서에 구금됐다. 이후 그는 4월 13일 서대문형무소로 이감됐으며 5월 9일 경성지방법원에서 징역 1년 6개월을 선고받았다. 하지만 다음날 복역 중 잔인한 고문으로 인해 옥중에서 순국했다.

 

광복 이후인 1946년 8월 15일 진리 삼거리 솔밭도로 옆 소나무밭에 ‘순국열사 임용우 선생 영세불망비’가 세워졌다. 또 1979년 3·1 독립만세운동 60주년을 맞아 ‘기미 3·1운동 독립만세 기념비’ 기념비를 세웠다. 1991년 독립운동 공훈이 인정돼 건국훈장 애족장을 받았다.

 

한편 2021년 진리 덕적초중고등학교 옆에 독립운동 기념공원이 준공돼 지난해부터 3·1운동 기념식을 열고 있다.

 

[ 경기신문 / 인천 = 김주헌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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