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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있는 모든 것에 대한 찬사…뮤지컬 ‘파과’

60대 여성 킬러 ‘조각’과 그를 기억하는 ‘투우’ 이야기
‘빛나다 사라질 살아 있는 모든 것들에 대한 찬사’ 주제
느와르 액션 연기와 탄탄한 서사, 실감나는 연출로 몰입감 높여
5월 26일까지 홍익대학교대학로아트센터 대극장

 

파과(破果), 흠집 난 과일. 부서진 과육으로 먹을 수도 없이 썩은 과일이 무슨 의미가 있을까. 노년을 바라보는 60대 여성 킬러는 성치 않은 몸으로 킬러의 수명을 다해간다. 한 치의 실수도 용납하지 않는 킬러의 세계에서 자신을 치료한 의사에게 마음이 흔들리는 상황이라면 더더욱 가치가 떨어진다. 그녀는 부서졌지만 살아있음에 빛나는 인간을 증명한다.

 

2013년 출간된 구병모 장편 소설 ‘파과’를 원작으로 한 뮤지컬이 무대에 올랐다. 초연 신작으로 소설 출간 당시의 인기를 이어가고 있다. 우리나라의 정서를 무대에 구현하는 연출가 이지나, 작품 전반을 이끌어가는 음악감독 이나영, 작품의 현대적 감각을 배가시키는 무술감독 서정주가 함께했다.

 

극은 킬러에게 살해당한 아버지를 목격하는 어린 ‘투우’의 이야기로 시작한다. 총성이 울리고 이마에 피를 흘리며 쓰러진 아버지 뒤로 흐트러짐 없는 완벽한 자세의 ‘조각’의 뒷모습이 보인다. 그 모습은 어린 ‘투우’에게 인상 깊게 기억되고 복수심과 알 수 없는 동경심을 느끼게 한다.

 

 

킬러 ‘조각’은 15세에 친척집에서 도둑으로 누명을 쓰고 가출해 미군기지 주변에서 숙식을 알아보던 인물이었다. 킬러 조직을 운영하던 ‘류’의 호의로 식당일을 하며 지내지만 자신을 노리는 군인을 실수로 살해하고 만다. ‘류’는 ‘조각’을 자신의 일원으로 받아들이고 함께 조직 생활을 하게 된다.

 

‘류’에게서 각종 기술들을 배운 ‘조각’은 실력 있는 킬러로 성장하고 자신을 받아 준 ‘류’에 대한 마음도 커져간다. 하지만 ‘류’는 일 하던 중 폭탄을 밟은 ‘조각’을 대신해 죽고 ‘조각’은 고통 속에서 하루하루 살아간다.

 

극은 어린 ‘조각’과 60대 노인이 된 ‘조각’의 모습을 교차시켜 이야기를 전개한다. 사람을 죽여야만 능력을 인정받는 킬러의 세계에서 ‘조각’은 죄책감을 느끼면서도 쓸모없어지면 죽음으로 끝을 맺는 현실 속 킬러가 됐다. ‘함께 지옥으로 떨어지자’던 ‘류’에 대한 감정도 그의 죽음 후 그리움으로 남았다.

 

어른이 된 ‘조각’과 ‘투우’가 최후의 결투를 벌이는 날, ‘투우’는 찰나의 망설임을 느낀다. ‘투우’는 ‘조각’을 죽이려던 순간 ‘몸속의 무언가가 빠져나가 공허함을 느꼈다’고 고백한다. 그리고 ‘조각’의 무릎에서 죽어가며 ‘자신은 ‘조각이 죽인 이들 중에서 ‘조각’이 유일하게 기억하는 사람’이라고 읊조린다.

 

 

파과처럼 60대 여성 킬러의 삶은 비참하지만 잠깐이나마 빛났던 인간적인 순간과 자신을 기억한 인물로 살아있는 모든 것은 가치 있다는 메시지를 전한다. ‘빛나다 사라질 살아 있는 모든 것들에 대한 찬사’라는 극의 주제처럼 삶의 부서짐을 안고 살다 보면 빛이 나는 순간이 찾아온다는 메시지를 전한다. 늙어감의 쓸쓸함과 공허함이 공감을 이끌어낸다.

 

무대는 모던하고 현대적이며 철골 구조물과 레이저, 조명이 ‘조각’이 생활하던 미군기지와 공장 등을 실감나게 재현한다. 킬러들의 액션은 태권도, 유도, 검도, 특공 무술 등을 접목해 정교하다. 배우들의 느와르 액션 연기는 극의 분위기를 무르익게 하고 어둡고 긴장감 넘치는 배경은 몰입감을 높인다. 숨을 죽이게 되는 서사는 140분을 순식간에 흐르게 한다.

 

가창력이 뛰어난 배우들의 연기가 극을 힘 있게 이끌어가며 킬러들이 느끼는 죄책감 등을 섬세하게 표현한다. 손목을 살짝 비틀어 상대방을 찌르는 ‘조각’의 기술, ‘조각’이 키우는 개 한 마리, 불그스레한 복숭아 등의 디테일이 극을 더욱 탄탄하게 만든다. 무대 위 소품들을 최소화해 활동성을 높였고 8인조의 오케스트라가 돋보인다.

 

살아있음에 빛나는 인간에 대한 찬사 ‘파과’는 5월 26일까지 홍익대학교대학로아트센터 대극장에서 계속된다.

 

[ 경기신문 = 고륜형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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