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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활에세이] 쑥국의 위로

 

 

이른 아침 운전하면서 평소처럼 헬스장으로 향했다. 대학로 골목길에서 나와 좌회전 하는 순간이다. 대학생 같은 두 명의 젊은이가 ‘X 할 놈’ 하고 욕을 한다. 차에서 내려 ‘지금 뭐라고 욕했느냐?’고 하니까 대들면서 운전 똑바로 하라는 것이었다. 곧 한 주먹 선사하고 싶은 태도였다. ‘거리에 여기저기 CCTV가 있으니 잘 보고 알아서 하라’고 하고 돌아왔다. 하루 종일 오물을 뒤엎어 쓴 머릿속이었다. 미래의 시간을 앞당겨 빌려와 나이 든 사람에게 젊은이들이 어떻게 대하는 지를 선 체험하는 것 같은 기분이기도 했다. 감정관리 키를 작동시켜 머릿속을 정화하고 싶은 데도 감정세척기 필터 고장인가 스트레스는 가시지 않았다. 일단 안전운행에 대한 하나님의 역사하심으로 알고 마음을 긍정적으로 수습했다.

 

그날 저녁이다. 식탁에 쑥국이 올라왔다. 막내인 딸이 직장에서 일하고 돌아와 피로할 텐데 핏줄의 써댐인지 봄 쑥을 구해와 쑥국을 끓여 ‘드세요’하는 것이었다. 딸의 쑥국에는 아내의 음식 맛과 어머니의 손맛이 어울려 고향의 맛으로 이어지고 있었다. 한 수저 두 수저, 세 수저를 거푸 떠먹었다. 입안에서는 뜨거운 맛이었다. 그러다 식도로 내려가면서 시원하고 달보드레한 국물 맛은 이것이 ‘봄의 쑥국 맛이야!’ 아니 ‘사람 사는 맛이야!’라는 육감적 체험으로 이어졌다.

 

대학생에게 욕먹는 순간에는 그랬다. 집으로 가 아내가 있었다면 ‘여보 당장 짐 싸, 우리 시골 가서 이 꼴, 저 꼴 보지 말고 삽시다’하고 떠났을 것이라고.

 

‘공명도 잊었노라 부귀도 잊었노라/ 세상 번우한 일 다 주어 잊었노라/ 내 몸을 내마저 잊으니 남이 아니 잊으랴.’ 1606년대 시조시인으로서 벼슬을 버리고 전원으로 돌아가 수졸전원(守拙田園) 생활을 즐긴 김광욱(金光煜) 시인의 삶이 생각났다.

 

이틀 뒤에는 ‘자유를 위해서 늘 긴장했던 일상 쓸쓸했지만 이젠 자유롭습니다’라고 유언처럼 남기고 홍세화 씨가 세상을 등졌다. '나는 빠리의 택시 운전사', '쎄느강은 좌우를 나누고 한강은 남북을 가른다'라는 책을 내며 20년 만에 한국 땅을 밟았던 그도 떠났다. 그의 삶에 무심하지 않았는데 조금은 허전한 마음이었다.

 

쑥은 한자로도 여러 글자로 쓰인다. 애(艾)·번(繁)·봉(蓬)·래(萊) 등, 쑥은 단군의 출생 신화에서부터 등장한다. 환웅이 범과 곰에게 쑥 한 묶음과 마늘 20개를 주면서 이것을 먹으며 100일 동안 햇빛을 보지 않으면 사람이 될 것이라고 했다. 그런데 범은 지키지 못했고 곰은 삼칠일(21일)을 지켜 여자의 몸이 되어 환웅과 혼인해 낳은 아들이 단군이라는 이야기다. 그래서였을까 예부터 농촌에서는 단오 날 아침에 쑥 즙이나 익모초 즙을 마셔두면 한 해 동안 더위를 먹지 않는다 하여 많이들 복용했다. 그런가 하면 이른 봄이면 쑥국 맛을 찾아 서울에서 제주도까지 비행기로 날아간 언론사 사장도 있었다.

 

생각해 보면 쑥과 마늘과 오곡백과를 싹 틔우고 길러내는 흙의 고마움과 대자연의 품이 한없이 고맙다. 죽어서 돌아갈 곳 또한 흙이라고 믿고 살아온 것 아닌가.

 

이아침 딸이 새봄의 쑥국을 끓여 밥상에 올리며, 맛있게 드시고 온갖 액운 다 물리치며 힘내시라고 한 것인가! 싶으니 가슴 풍만해진다. 쑥국을 한 수저 두 수저 떠 마실 때마다 ‘그래 이게 봄 쑥국 맛이야!’ 하고 반기니 겨드랑이에서 날개가 솟으려는지 기지개가 켜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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