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부당대출과 횡령 등 대규모 금융사고가 반복되면서 은행권에 대한 사회적 신뢰가 떨어진 가운데 금융당국이 은행권과 여신 업무 프로세스 개선에 나섰다. 이를 통해 여신 관련 중요 서류의 진위확인 절차를 강화하고, 담보가치 산정 과정을 보다 엄격하게 관리하는 내용 등을 담은 모범규준 개정안을 연내 마련할 계획이다.
금융감독원은 3일 박충현 은행 담당부원장보 주재로 은행권과 여신 프로세스 개선을 위한 TF(태스크포스) 킥오프 회의를 개최했다고 밝혔다.
이 자리에는 박 부원장보를 비롯한 금감원 관계자들과 은행연합회 본부장 및 11개 은행(국민·신한·하나·우리·농협·SC제일·iM·기업·수협·부산·광주) 여신담당 부행장 등이 참석했다. 이들은 은행권 공통의 여신 프로세스 보완 필요성과 개선 추진 과제 등에 대해 논의했다.
박 부원장보는 "부당대출·횡령 등 연이은 금융사고로 은행산업에 대한 불신이 커지는 상황을 엄중하게 인식하고 있다"며 "신뢰회복을 위해 금감원과 은행권이 다함께 상황인식을 공유하고 힘을 같이 모아야 할 시점"이라고 강조했다.
금감원에 따르면 최근 은행권 금융사고는 여신 프로세스상 허점을 잘 아는 내부직원이 승진이나 투자 등 개인적 동기로 부당대출을 주도하는 경우가 많으며 규모도 대형화되는 추세다.
실제 은행 영업점에서 일어난 100억 원 초과 여신사고는 지난 5년간(2019~2023년) 1건에 불과했으나 올해 들어서는 8월까지 7건이나 발생했다. 규모도 150억 원에서 987억 원으로 급증했다.
금감원은 점포와 인력 축소 등으로 영업점 직원의 업무부담이 늘어나면서 내부통제상 취약점이 드러나고 있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영업점장 전결여신 대상의 본부부서 감리가 대폭 감축되는 등 영업점 여신에 대한 전반적인 내부통제 수준이 약화되고, 여신업무의 디지털화로 스캔보관되는 여신 관련 증빙서류들에 대한 진위성 확인 절차도 미흡했다.
이에 금감원은 TF를 통해 은행권이 제출한 개선계획 및 검사 과정에서 확인된 여신 프로세스 취약점 등을 바탕으로 제도개선을 추진할 계획이다. 주요 개선과제는 ▲여신 중요서류에 대한 진위확인 절차 강화 ▲담보가치 산정 및 검증 절차 개선 ▲임대차계약의 실재성 확인 강화 및 자금의 용도 외 유용 사후점검 기준 보완 등이다.
특히 소득·재직 서류는 가급적 공공마이데이터를 통해 확보하고 중요서류는 발급기관을 통해 의무적으로 확인하도록 하는 등 중요 서류에 대한 진위확인 절차를 강화한다. 서류를 위변조해 여신심사에 활용하는 등 고객이 제출한 증빙서류가 스캔 보관 후 원본이 폐기되는 점을 악용한 부당대출 사례가 잇따르고 있어서다.
또한 담보가치를 부풀려 대출 한도를 높이는 사고가 연이어 발생한 만큼 영업점 담보가치 산정과 관련된 검증 절차도 한층 엄격해진다. 금감원은 본점의 심사를 확대하고 영업점 자체평가에 대한 본점 모니터링도 강화할 계획이다. 장기 미분양 등 취약 물건 담보평가에 대한 자체 검증절차도 개선하기로 했다.
RTI(임대업이자상환비율) 규제회피를 위해 임대차계약서의 진위여부를 확인하지 않고 부당대출을 취급한 사례, 대출실행시 사용 목적과 달리 자금을 사용해 횡령한 사례 등과 관련해서는 임대차계약의 이행 확인 및 대응 프로세스 수립, 자금 용도외 유용 점검 기준 보완 등에 나설 예정이다.
금감원은 여신 프로세스 개선과제와 관련해 다음 달까지 TF 실무논의를 진행해 개선안을 마련한 뒤 연내에 모범규준 개정에 나설 계획이다.
금감원 측은 "제도개선과 함께 정기검사 시 여신 프로세스 점검을 강화하는 한편, 금융사고에 책임있는 임직원에 대해서는 법과 원칙에 따라 엄중히 조치하는 방침을 견지해 나갈 것"이라며 "다만 제도 보완이나 사후제재만으로 위법·부당행위를 방지하는데 한계가 있으므로 일선 직원들이 높은 윤리의식, 책임감을 바탕으로 여신업무를 할 수 있도록 준법교육에도 각별한 신경을 써달라"고 당부했다.
[ 경기신문 = 고현솔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