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금융그룹이 임종룡 회장 체제 출범 이후 최대 위기를 맞았다. 손태승 전 회장 친인척 부당대출 사건을 계기로 내부통제시스템의 허점이 드러나면서 금융당국과 검찰의 전방위적 압박이 이어지고 있어서다. 당국의 비판 강도가 거세지면서 우리금융이 염원했던 종합금융그룹 도약을 위한 포트폴리오 구축에 차질을 빚을 것이라는 우려와 더불어 조직문화 개선 실패에 따른 임 회장의 책임론도 크기를 키우는 모습이다.
5일 금융권에 따르면 금융감독원은 지난 2일 우리금융과 우리은행에 정기검사를 실시하겠다고 통지했다. 당초 내년으로 예정됐던 정기검사 일정이 앞당겨진 것으로 금감원은 다음달 초 시작되는 이번 정기검사를 통해 우리금융의 내부통제 시스템 등 전반적인 상황을 살펴볼 계획이다.
금감원이 이례적으로 검사 일정을 앞당긴 것은 최근 불거진 손 전 회장 친인척 부당대출 사건 때문이다. 금감원은 이번 사태와 관련해 현 경영진이 사안을 인지하고도 당국이나 이사회에 보고하지 않는 등 늑장 대응을 했다는 문제의식을 가지고 있다.
검찰도 우리은행 본점 및 영업점을 압수수색하며 본격적인 수사에 나섰다. 특히 우리금융저축은행이나 우리캐피탈 등 은행 외 계열사에서도 부당대출이 실행됐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의혹이 커지고 있는 만큼 금감원 및 검찰의 검사·수사 수위는 한층 높아질 전망이다.
금융권에서는 허술한 내부통제 시스템과 구시대적인 조직문화 등 우리금융의 시스템적인 문제가 이번 사태를 계기로 수면 위로 떠올랐다는 의견과 더불어 임 회장에 대한 책임론이 대두되고 있다. 조직문화를 개선하고 구태를 뿌리뽑기 위해 선임된 인물임에도 제 역할을 다하지 못했다는 것.
지난 2022년 700억 원대의 횡령 사건 여파로 이후 내부통제가 허술하다는 지적이 이어졌고, 우리금융 임원후보추천위원회는 '조직문화 혁신'을 이유로 임 회장을 추천했다. 당시 임추위는 "과감한 조직 혁신을 위해선 오히려 객관적 시각으로 조직을 진단하고 주도적으로 쇄신을 이끌 수 있는 인사가 적합하다고 판단했다”고 설명했다.
앞서 임 회장 등 현 경영진의 책임론을 제기한 이복현 금감원장은 지난 4일 "(손 전 회장 관련 대출이) 과거의 일이기는 하지만 그런 것을 발본색원할 의지가 있는지, 소위 '끼리끼리 나눠먹기 문화'가 팽배해 있는데 조직 개혁 의지가 없는 것은 아닌지 등 (현 경영진의) 책임이 있지 않냐는 것"이라며 비판의 강도를 높였다.
임 회장의 취임 이후 최대 업적이라고 볼 수 있는 비은행 포트폴리오 확장 또한 제동이 걸렸다. 금융당국은 소통 없이 진행된 동양·ABL생명 인수 결정에 이례적으로 불편한 심기를 드러내면서 강도 높은 검사를 예고했다. 종합검사의 기간이 정해져있지 않은 만큼, 인수 관련 당국의 인허가는 무기한 연장될 수 있다.
이 원장은 지난 4일 "생명보험사 인수 같은 경우는 (증권사보다) 훨씬 더 큰 딜인데도 저희는 생보사 인수를 검토 중이라고만 알고 있었지 계약이 체결된다는 것은 신문을 보고서야 알았다"며 "민간 회사의 계약이지만 인허가 문제가 있다 보니까 그런 리스크 요인이 있는지에 대해서 금융위나 금감원과 소통을 했어야 하는데 그런 소통이 없었다"고 지적했다.
이어 "(우리금융지주에 대한) 경영실태평가가 3년이 넘게 경과된 시점인 만큼 현 단계의 경영실태평가를 좀 하고 그 과정에서 문제점이나 전체 상황을 좀 봐야 될 것 같은 느낌이 들어서 정기검사를 앞당겨서 하게 된 것"이라며 "금융지주의 전체 리스크를 같이 봐야 되기 때문에 최대한 역량을 집중해서 빨리 볼 것"이라고 말했다.
금융권은 이러한 이 원장의 발언을 당국과 소통 없이 급작스럽게 생보사 인수를 결정한 임 회장에게 경고를 보내며, 최근 불거지고 있는 우리금융을 둘러싼 각종 의혹에 대한 책임을 묻겠다는 의도로 풀이하고 있다.
만약 금감원이 경영실태 평가에서 3등급 이하를 부여할 경우, 우리금융은 보험사 인수요건을 충족하지 못해 인수는 무산된다. 보험사 등 비은행 사업 다각화는 우리금융이 완전민영화 이후 염원해 왔던 일인 만큼, 경영진을 향해 실패 책임을 묻는 목소리는 더욱 거세질 가능성이 높다.
한 금융권 관계자는 "금감원이 정기검사로 발표했으나 사실상 주제가 있는 특별검사에 해당하는 것으로 보인다"면서 "이복현 원장이 보고누락 책임 등을 앞서 이야기 했고 이에 대한 책임소재를 가리기 위한 검사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보험사 인수 과정에서도 금감원의 의중 파악이 매우 중요한 시기인데 금감원이 전방위 압박에 나선 만큼 향후 절차에 진통이 예상되는 상황"이라고 덧붙였다.
게다가 다음 달 국정감사가 예정돼 있어 임 회장을 향한 압박은 더욱 강해질 전망이다. 정무위원회에서 내부통제 실패 책임을 묻기 위해 임 회장과 조병규 우리은행장을 소환할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다른 금융권 관계자는 “은행권을 중심으로 횡령, 배임 등 금융사고가 반복되면서 금융당국이 지배구조법 개정안에 힘을 쏟는 등 내부통제 관리를 특별 주문해왔다”라며 “모든 은행이 눈 밖에 나지 않으려는 분위기 속에서 우리금융에 대한 본보기 징계를 내리기 좋은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 경기신문 = 고현솔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