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0년만에 이루어진 일제 강제동원 피해신고 창구는 애끓는 사연들로 넘쳤다. 신고 첫날 전국에서 2천 573건, 경인지역에서는 경기도 146건, 인천 13건 등 159건이 접수됐다. 신고 접수는 6월말까지 계속되지만 시ㆍ군ㆍ구 신고 창구는 신고요령을 묻는 방문객과 문의 전화가 끊이지 않았다. 그만큼 억울한 사연을 품고 살아온 동포들이 많았다는 증거다. 1931년 9월 18일부터 1945년 8월 사이에 군인ㆍ군속ㆍ노무자ㆍ군위안부 등으로 끌려간 피해자는 794만(연인원)명으로 추산된다. 이 가운데 노무동원이 733만 명으로 가장 많고, 군인ㆍ군속 등 병력동원이 약 61만 명, 군위안부 등 기타 동원이 8만에서 20만명으로 추정하고 있다.
달리 말하면 근력있는 장정과 한창 때인 여성들 대부분이 낯선 이국 땅으로 끌려가 노예 노릇을 한 것이다. 때문에 일본은 패망과 함께 이들에 대한 피해 보상을 했어야 옳았는데 1965년 12월 18일 한ㆍ일협정비준서 교환과 함께 강제동원 피해자에 대한 보상은 흐지부지되고 말았다. 일본으로부터 외면 당한지 60년, 정부로부터 무시 당한지 40년이 지난 지금 피해신고를 받기에 이르렀으니 상식으로 이해하기 어려운 일이다.
피해신고를 한다고 해서 당장 피해 보상을 받게 되는 것도 아니다. 신고를 접수하고 나서 보상문제를 검토한다는 것이 정부 입장이기 때문에 보상을 기대하고 있는 신고자 및 유가족들의 반발도 예상된다. 신고 절차도 만만치 않다. 워낙 오래 전의 일이라 증빙서류를 마련하기가 쉽지 않기 때문이다. 접수와 조사도 간단치 않아 보인다. 진상규명위원회 지침이 늦게 시달되는 바람에 시ㆍ도에서는 아직 관련 조례와 위원회 구성도 못하고 있는 상태다. 60년만에, 그것도 인권정부라고 자처하는 참여정부 하에서 치러지는 일제 식민지 청산작업 치고는 사전ㆍ사후 준비가 너무 허술해 국민들을 실망시키고 말았다.
늘해온 소리지만 우리나라는 철저한 준비없이 시작부터하는 버릇을 버리지 못하고 있다. 특히 강제동원 피해자 신고는 한 인간에 대한 인권유린 사실을 객관적으로 확인하고, 명예를 회복시켜 주는 의미도 있어서 신중과 정확을 기해야 마땅한데 출발이 매끄럽지 못했던 것은 유감천만이다. 바쁘면 돌아가라고 한 교훈을 본받을 때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