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의 재집권 성공에 따라 국내 수출기업들의 리스크가 커질 것으로 예상되면서 은행들이 리스크 점검에 나선다. 은행권이 앞으로 우량 대기업을 위주로 대출을 내줄 것으로 점쳐지는 만큼, 중소기업들의 자금난이 심화될 것이라는 우려가 나온다.
18일 한국은행에 따르면 지난달 말 기준 은행권의 기업대출 잔액은 1324조 3000억 원으로, 1년 전(1246조 4000억 원)보다 779억 원(6.25%) 많다.
은행권의 기업대출은 올해 들어 76조 6000억 원 증가했다. 금융당국이 가계대출 증가에 제동을 걸면서 은행들이 기업금융 강화를 목표로 공격적인 영업을 펼쳐 온 결과다.
다만 수익성과 건전성 측면에서 앞으로의 기업대출 시장 전망은 밝지 않다. 기준금리 인하 이후 이자이익 둔화가 불가피한 데다, 트럼프 당선인의 보호무역주의 기조에 따른 미국의 강력한 관세 부과정책이 예상되면서 수출기업을 중심으로 리스크가 확대될 것으로 점쳐지고 있기 때문이다.
강달러 현상에 따른 금융시장의 불확실성 확대도 은행에게는 부정적인 요소다. 기업의 대출 상환 여력이 줄어들면서 건전성 관리 부담이 커질 뿐 아니라 은행의 자본비율도 타격을 입을 수 있기 때문이다. 자본비율은 자본을 위험가중자산(RWA)으로 나눠서 구하는데, 환율이 오르면 분모에 해당하는 외화 RWA의 원화 환산액이 늘어나게 된다. 외화를 많이 보유한 은행일수록 위험자산은 높게 평가돼 관리가 필요하다.
은행들은 내년도 사업계획 수립 과정에서 트럼프 2기 행정부 출범에 따른 영향을 다각도로 점검할 전망이다. 미국의 통상정책 변화에 따라 해외에 진출해 있는 국내 기업의 실적 변동성을 검토하거나, 수출 비중이 높은 기업들의 수출 감소 리스크를 점검하는 방식이다.
한 은행권 관계자는 "트럼프의 경제 통상 정책 가시화 시 자동차, 2차전지, 철강, 재생에너지 등 부정적인 영향을 받을 것으로 예상되는 산업군에 대한 리스크를 점검할 예정”이라며 "대미(對美) 수출 환경 변화에 따른 중국, 베트남, 멕시코 진출 국내 기업의 실적 변동 가능성을 점검하고 환율 불확실성에 대한 환 헤지(위험회피) 등을 사업 전략에 반영할 것”이라고 말했다.
금융권은 이에 따라 내년 이후 은행들의 대출 성장세는 둔화될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금융연구원은 국내은행의 내년 원화대출 증가율을 올해보다 1.5%포인트(p) 낮은 4.5%로 전망했다. 이는 2010년(3.7%) 이후 가장 낮은 증가율이다.
특히 은행들이 우량기업을 위주로 대출을 실행하며 리스크를 관리함에 따라 중소기업과 개인사업자의 자금난은 더욱 심화될 전망이다. 대기업대출의 경우, 중소기업에 비해 상대적으로 위험가중치가 낮은 편이다. 보통주자본(CET1) 비율을 기반으로 주주환원정책을 발표한 금융지주 입장에서는 대출을 줄이면서 우량 대기업 위주로 포트폴리오를 재편하는 방식으로 비율을 유지할 필요가 있다.
다른 은행권 관계자는 "결국 내년 사업계획은 우량한 중소·중견기업에 얼마나 대출을 내줄 수 있느냐가 중요해졌다"며 "개인사업자 대출은 연체율이 높고, 그만큼 위험가중치도 높아서 은행들이 소극적인 영업에 나설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 경기신문 = 고현솔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