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 말에 자신을 위해서 학문을 하지 말라고 했다. 그러다 보면 학문의 순수성을 잃기가 쉽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또 이런 말도 있다. 학문을 하려면 군자(君者)의 학자가 되어야지 소인(少人)의 학자가 되지 말라는 것이다. 이 말도 결국은 배움을 자신의 이(利)를 위해서 하지 말라는 가르침이다. 이(利)가 리(理)를 승(勝)해서는 안된다는 평범한 진리의 설명인 셈이다.
이 글에서 군자는 먹음에 배부름을 구하지 않고 거처함에 편안함을 구하지 않는 사람(논어 학이편)을 일컫는다. 사욕이 있으면 안된다는 얘기다. 가난해도 배를 채우기 위해 아첨하지 말라는 것이다. (貧而無諂) 소인은 물론 이의 반대다.
공자의 제자 자장(子張)은 요즈음 말로 삐딱 기질이 있었던 모양이다. 자장은 “자문이 초나라에서 상경(上卿:지금의 총리)이라는 벼슬을 세 번이나 했는데 어떻냐고 물었다. 초왕이 부당한 일을 시킨다던지 해서 3번이나 사직했으나 다시 불려간 것을 일컬음이다. 직의 유지를 위해 신념에 반하지 않은 패러다임이다. 공자는 자장의 질문을 받고 충성스럽다고 했다. 충성하는 방법과 마음의 자세를 일깨워 정도가 무엇인지를 가르친 것이다.
또한 이러한 말도 있다. 위태로운 나라에는 들어가지 말고 어지러운 나라에서는 살지 않으며 나라에 도가 있으면 벼슬하고 도가 없으면 물러나야 된다. 위태로운 나라라는 것은 질서가 없고 이(利)가 횡행하는 나라를 말한다. 이러한 나라에서 살고 벼슬하려면 잘못된 것인지 알면서도 눈감고 맞추어야 되는데 이러한 삶의 태도는 안된다는 것이다.
곡학아세를 하지 말라는 교훈이다. 학문과 신념을 굽혀서까지 세상에 아부한 호식(好食)보다는 조식(粗食)이 좋다는 얘기다. 얼마 전 나의 문화유산 답사기로 이름난 유홍준 문화재청장이 광화문 현판을 놓고 곡학아세하는 것이 아니라고 해서 화제다. 반향이 궁금해진다.
滿庭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