利(리: 이로움)가 理(리: 도리)에 이겨서는 안된다는 것이 옛날 우리나라 지식인(선비)의 대표적 사상이다. 또한 곁불을 쬐서도 안된다고 했다. 이러한 사상으로 우리나라는 독특한 언어와 문자 그리고 문화를 지켜왔다.
이씨 조선 조(祖) 연산군이 집권하고 있던 시절 강혼(姜渾)과 우정이 깊은 그의 친구 조언형(曺彦亨)의 얘기는 理?利의 관계를 잘 나타낸 것으로 지금도 회자 되고 있다. 문장가로 이름을 떨친 강혼은 시리(時利)에 밝아 연산군의 총애를 받으며 승승장구하여 도승지(都承旨)에 올랐다. 반면에 조언형은 연산군의 폭정에 대해 서슴치 않고 간언, 자주 내침을 당하고 기용되어도 한직에 머물기 일쑤였다.
조언형이 단천군수로 있을 때 그의 친구 강혼이 감사가 되어 단천에 내려 왔다. 이때 그의 참모들이 “마중을 나가 모실 것”을 재촉 했으나 조언형은 칭병을 이유로 꿈적 않고 있었다. 그날 밤이 되자 그는 탁주 한 통을 갖고 강혼이 머물고 있는 객사 상방(上房)으로 찾아 갔다. 두 사람은 안주도 없이 밤을 지새우며 통음했다. 마지막 잔을 주고받으며 조언형이 한마디 했다. “나는 너를 친구로 둔 것을 어릴 때부터 자랑으로 여겼는데 요즘 너의 하는 짓을 보니 돼지만도 못하다”고 힐난하고는 “내가 글을 보내 절교할 생각이었으나 마침 네가 여기 와서 술 한 잔하고 한마디 한다”며 벼슬도 내 놓고 단천을 떠났다. 강혼도 훌륭했다. 친구의 충고를 고맙게 받아들이고 낙향한 것이다.
벼슬 버리기가 쉽지 않은데 理를 위해 利를 버린 것이다. 많은 공인들이 공직을 내 놓은 뒤에 쓸쓸함을 참지 못한다고 한다. 때문에 직을 버리기가 어렵다는 것이다. 그만큼 신념을 지키기가 어려운 것이다.
박세일 의원이 행정수도에 반대하며 의원직 사퇴서를 내고 박 대표와의 오찬 약속도 취소했다. 근래 보기드믄 利를 버린 처신이 돋보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