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03.05 (목)

  • 맑음동두천 -1.7℃
  • 맑음강릉 1.2℃
  • 맑음서울 1.6℃
  • 박무대전 0.4℃
  • 구름많음대구 1.3℃
  • 맑음울산 3.0℃
  • 박무광주 3.5℃
  • 맑음부산 6.3℃
  • 맑음고창 -0.5℃
  • 구름많음제주 7.3℃
  • 구름많음강화 -0.5℃
  • 맑음보은 -2.3℃
  • 맑음금산 -1.9℃
  • 맑음강진군 0.5℃
  • 맑음경주시 -0.3℃
  • 구름많음거제 4.5℃
기상청 제공
“눈보라의 이변이 마음을 놀라게 하고 눈을 참혹하게 한다. 섣달에 천둥이 울리고 3월에 눈 오는 현상이 요 몇 년 동안 계속 있었지만 일찍이 어제처럼 심한 적은 없었다. 극히 근심스럽고 황급하여 어찌할 바를 모르겠다. 하늘이 경계를 보이는 것은 그 책임이 임금에게 있는 것이니, 내가 어제는 큰 죄를 지은 것 같아 낯을 들 수가 없었다. 여러 신들이 이 자리에 있으니 조금도 숨김 없이 다 말하여 재앙을 그치게 할 대책을 각기 진술하라.”효종이 이른 말이다.
이에 형조 판서 허적(許積)이 아뢰기를 “어제 내린 눈은 예전에 없던 바입니다. 대저 비는 음(陰)이고 눈은 비의 음입니다. 그래서 옛 사람은 더러 ‘형벌이 중도를 벗어나 혹독하거나, 궁궐의 질서가 엄격하지 못하거나, 임금은 약하고 신하는 강성한 응험이다.’고 여겼는데 이는 모두 그 일시적인 잘못된 일을 들어 말한 것입니다.” 허적이 이어 아뢰기를 “바깥세상의 사람들이 궁궐의 엄숙하지 못함을 많이 말하며, 심지어는 요사이 주상의 뜻이라고 청탁하는 자까지 있어 말하기를 ‘죄수 아무개는 위에서 살리고 싶어하는 뜻이 있으나 마땅히 그 형벌을 느슨하게 해야한다고 합니다.” 임금이 놀랄 것은 두말할 것도 없었다.
현종은 이르기를 “만약 허적이 아니었다면 결코 이런 말을 주달하지 않았을 것이다. 청탁한 자들의 이름을 다시 한번 기억해내서 아뢰는 것이 좋겠다.”고 하였다.
결국 조의지(趙義智)와 이형남(李亨男)은 곤장을 맞고 죽었고, 김치적(金致積)은 본디 죽을 죄가 아니었기 때문에 대신들이 헌의(獻議)하여 형신을 정지하고 정배시켰다. ‘조선왕조실록(朝鮮王朝實錄)’ 효정 10년 3월 27일(무오)에 실린 기록의 일부다.
허적은 충주인으로 1659년(효정 10) 한성부사(漢城府使)를 거쳐 1671년과 1673년 두 차례에 걸쳐 영의정을 지낸 충신이다. 폭설이 자신의 탓이라 여긴 임금이나, 기강의 해이 탓이라고 직언한 신하의 용기가 왠지 부럽게 느껴지는 요즘이다. 이창식/주필








COVER STOR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