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8년 4월 29일. 전남 함평 농민이 썩은 고구마를 배상하라며 농협에 결연히 맞서 승리한 날이다. 1976년 고구마를 재배하면 전량 수매하겠다는 농협의 약속에 함평 156 농가에서 고구마를 재배하여 농협수매를 위해 노변에 쌓아 놓았으나 약속을 파기하는 바람에 썩어 나갔다. 농민들은 땀과 피가 범벅이 된 고구마가 노변에서 눈비를 맞아 썩어 가는 것을 보며 분노했다. 10월에 수매하겠다고 해 거리에 내 놓았으나 1달여가 지난 11월 하순이 되어도 수매치 않아 농심을 울렸던 유명한 고구마 사건이였다.
당시는 박정희 대통령이 통치체제를 강화하기 위해 국민의 자유를 제한하던 때여서 특별한 의미가 있는 사건이였다. 물론 방송이나 신문에서는 일체의 보도가 없었다. 유신체제였으며 긴급조치 7호가 발효되어 일체의 집회나 시위가 금지되어 있었다. 때문에 농민들의 항의시위는 재야 민주화 요구세력에 희망을 안겨준 값진 사건이였다.
썩은 고구마를 보고 울분한 농심이 민주화 항쟁의 단초가 된 셈이다. 흔히 말하는 나비효과를 낸 것이다. 이일로 해서 가톨릭 농민회가 구전으로 알려 졌고 지금도 맹약중이다.
며칠 전 대검 홈페이지에 광주지검 목포지청 이야기가 올라 신선한 충격을 주었다. 무면허 운전을 하다가 적발되어 70만원의 벌금형을 받은 김모씨(52세)가 벌금을 납부치 않고 피해 다녀 검찰 기동반이 검거에 나섰다. 기동반이 김모씨를 잡기 위해 그의 집에 찾아 갔더니 썩어 가고 있는 고구마 50여 박스가 있었던 것이다. 김모씨가 노점상을 하려고 사놓은 것이다. 검찰은 김모씨의 어려운 사정을 직감, 청내에서 소화했다. 이 고구마 판 돈으로 김모씨는 벌금을 낼 수가 있었고 구속을 면하게 됐다. 검찰청 직원들도 고구마가 썩는 것을 차마 볼 수 없었던 것이다. 고구마 사건의 농심과 같은 류(類)여서 더욱 찡하다.
滿庭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