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분홍빛 봄꽃이 하나둘 지고, 하얀 배꽃이 만발하기 시작하면 어김없이 떠오르는 술이 있다. 바로 ‘이화주’다. 이름 그대로 ‘배꽃이 필 무렵에 담근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지만, 실상 그 술에 배꽃이 들어가는 것은 아니다.
이화주는 고려 시대부터 전해 내려오는 우리 전통주다. 쌀만을 원료로 해 빚는 고급주로, 과거에는 사대부나 부유층 등 특권 계층만이 즐기던 귀한 술이었다. ‘산가요록’, ‘음식디미방’, ‘요록’, ‘주방문’, ‘산림경제’, ‘임원경제지’, ‘양주방’, ‘조선무쌍신식요리제법’ 등 30여 종의 고문헌에 이화주에 대한 기록이 전해질 만큼, 오랜 역사를 지니고 있다.
이화주를 빚기 위해서는 특별한 누룩인 ‘이화곡’이 필요하다. 이화곡은 멥쌀을 하룻밤 불린 뒤 곱게 갈아 체에 쳐서 고운 가루를 만든 후, 오리알 크기로 단단히 뭉쳐 만든다. 여기에 솔잎이나 볏짚을 사이사이에 끼우고 약 30도 내외의 따뜻한 곳에서 2주 정도 띄우면, 표면에 솜털 같은 흰 곰팡이가 피어난다. 이것을 말린 뒤 겉껍질을 벗기면 속의 연한 미색이 드러나는데, 이 과정을 거쳐 속까지 곱게 뜬 이화곡은 절구에 넣고 곱게 빻아 술 빚는 데 쓰인다.
누룩이 준비되면 본격적인 술 빚기가 시작된다. 멥쌀을 깨끗이 씻어 하룻밤 불린 뒤 곱게 갈아 뜨거운 물을 조금씩 부어가며 익반죽을 한다. 이 반죽으로 도넛 모양의 ‘구멍떡’을 만들어 끓는 물에 삶아낸 뒤, 뜨거울 때 멍울지지 않도록 고르게 펼쳐 식힌다. 여기에 이화곡 가루를 넣고 섞는데, 수분이 적어 손으로 버무리는 일이 결코 쉽지 않다. 이렇게 만든 술덧을 항아리에 담아 2~3주간 발효시키면, 새콤달콤한 이화주가 완성된다. 걸쭉한 질감은 마치 떠먹는 요거트를 연상시키며, 숟가락으로 떠먹거나 여름철에는 찬물에 타서 마시기도 한다. 하지만 진정한 풍미는 떠먹을 때 비로소 온전히 느껴진다.
이화주는 단순한 술이 아니다. 봄날의 햇살과 정성스러운 손맛이 깃든, 계절을 담은 음식이자 문화다. 꽃이 피는 짧은 시기에만 빚고 맛볼 수 있는 이 특별한 술 한 숟가락에, 조상들의 지혜와 사계절을 음미하는 섬세한 감성이 담겨 있다.
현재에도 전통 방식의 이화주를 계승하고자 여러 양조장에서 다양한 시도를 이어가고 있다. 국순당의 ‘이화주’, 술샘의 ‘이화주’, 예술의 ‘배꽃 필 무렵’, 양주골이가전통주의 ‘이화주’, 백주도가의 ‘이화주 참’ 등에서 그 깊은 맛을 다시 만날 수 있다.
짧은 봄, 흩날리는 꽃잎처럼 아쉬운 계절에 어울리는 술. 이화주는 그렇게, 봄을 담아낸 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