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때 떠들석하던 중국의 이른바 ‘동북공정(東北工程)’ 비판도 어느새 시들해지고 말았다. 결코 끝난 역사 논쟁이 아닌데 뚝 그친 까닭은 무엇일까. 일본의 역사 왜곡과 독도문제가 불거져서인지, 아니면 중국과의 역사 논쟁에 한계가 생겨서인지는 모르겠으나 분명한 것은 우리나라와 우리 민족은 쟁점이 생겼을 때 바르르 끓다가 일정한 시간이 지나면 식어 버리는 일과성이다. 우리가 고구려사 왜곡에 침묵하고 있는 동안 중국의 동북공정은 급진전 돼 저들 나름으론 완성 단계에 도달했을지 모른다.
각설하고 안타깝게도 우리나라에는 고구려 역사 유물이 많지 않다. 특히 비석 유적은 아주 드물다. 중국 만주 통구에 있는 광개토왕비가 유일하다고 할 정도이다. 그런데 충북 충주 탑평리에 고구려 비석이 있다는 것을 아는 사람은 별로 많아보이지 않는다. 길이 135㎝의 돌비석을 발견한 충주 사학자들이 황수영, 장영호 교수의 도움으로 430자의 음각 글자를 해독한 결과 고구려 때 세워진 비석임을 밝혀냈고, 1979년 마침내 국보 제205호 ‘중원고구려비’로 지정된 것이다.
이 비는 고구려 장수왕의 손자인 문자왕 때인 492년부터 518년 사이에 세워진 것으로 추정되므로 길게는 1503년, 짧게는 1487년 가량된다. 한마디로 위대한 발견이라할 만 하다. 이 근처에 목계가 있는데 여기에 신경림의 시비 ‘목계장터’가 서있다.
“하늘은 날더러 구름이 되라하고 / 땅은 날더러 바람이 되라하네 / 청룡 흑룡 흩어져 비개인 나루 / 잡초나 일깨우는 잔바람이 되라하네 / 뱃길이라 서울 사흘 목계나루에 / 아흐레 나흘 찾아 박가분 파는 / 가을볕도 서러운 물장수 되라하네 / 산 서리 맵차거든 풀 속에 얼굴 묻고 / 물여울 모질거든 바위 뒤에 부으라네 / (중략) 하늘은 날더러 바람이 되라하고 / 산은 날더러 잔돌이 되라하네.” 목계장터는 시인에 의해 부활하고 있다.
이창식/주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