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올여름은 날씨가 주인공이다. 불쑥 찾아온 열대야, 예고 없는 장맛비 그리고 쉽게 가늠할 수 없는 하늘. 기상 변화 앞에 계획은 자꾸만 틀어지고 여름휴가는 어느새 망설임이 되곤 한다.
하지만 흐린 날은 흐린 대로 맑은 날은 맑은 대로 빛을 발하는 여행지도 있다. 예측보다 유연함이 필요한 요즘 날씨에 휘둘리지 않는 여름 여행지를 소개한다.
■ 폐벽돌공장이 예술문화 공간으로 ‘연천 은대리 문화벽돌공장’
1988년부터 벽돌을 생산하던 공장이었던 ‘은대리 문화벽돌공장’은 약 10년간 운영된 뒤 폐업했고, 오랜 시간 자취를 감춘 채 방치돼 있었다.
이후 2025년 7월, 예술과 문화의 공간으로 재탄생했다. 건물 옆에는 여전히 벽돌을 굽던 시절의 굴뚝이 우뚝 솟아 있고 실내에는 붉은 벽돌 벽과 강화유리로 덮인 바닥 등 공장의 흔적이 고스란히 남아 있다.
약 600평 규모의 전시장은 미술 전시 공간과 벽돌공장 역사를 살펴보는 라키비움으로 나뉜다. 개관 기념전 ‘경계에서 피어난 예술 – 환영의 경계’에는 회화, 프린팅, 조소, 미디어아트 등 다양한 장르의 작품들이 전시돼 있다.
특히 라키비움(Larchiveum, Library+Archive+Museum) 중심에 과거 벽는돌을 굽던 열차형 가마가 원형 그대로 보존돼 있어 전시의 중심이 된다. 빛바랜 작업 노트, 푸른 작업복과 낡은 신발은 한 시절을 묵묵히 살아낸 노동의 시간을 생생히 전한다.

■ 도심과 자연이 맞닿은 곳 수원 ‘일월수목원’
아파트와 대학가 사이 도심 속에 숨겨진 듯한 ‘일월수목원’은 처음에는 그 존재감이 크게 느껴지지 않는다. 하지만 방문자센터 로비에 들어서는 순간 통유리를 통해 펼쳐지는 풍경이 시선을 사로잡는다. 비 오는 날이면 유리에 흐르는 빗물과 배경의 숲이 어우러져 낭만적인 장면을 연출한다.
센터 한편의 원형 식물 존은 ‘햇빛정원’이라 불리며 수원 매산초등학교에 있던 100년 수령의 네군도단풍 일부가 중심을 차지한다.
수목원에는 초지원, 침엽수원, 습지원 등 테마별 정원이 있고 특히 전시온실에서는 ‘모네˟일월 특별기획전’을 통해 모네의 그림과 그림 속 식물들을 함께 만날 수 있다. 숲과 물, 자연이 어우러진 공간엔 의자와 파라솔이 곳곳에 놓여 있어 여유롭게 산책하고 쉴 수 있다.

■ 기품 있는 전통 찻집, 성남 ‘새소리 물소리’
경주 이씨 집성촌이던 성남 오야동. 이곳의 전통 한옥 ‘새소리 물소리’는 1923년에 지어진 정남향 가옥이다. 연못과 정원이 함께 어우러진 이곳은 2024년 경기도 문화재로 지정되며 더욱 주목받고 있다.
삼층석탑과 석등, 촘촘한 대나무 담장을 지나 마당으로 들어서면 물레방아와 연못, 석판 다리가 정취를 더한다.
ㄱ자 구조의 한옥 내부는 낮은 테이블과 전통 소품으로 꾸며져 있고 실내에도 작은 연못이 조성돼 있다. 통유리를 통해 정원을 감상하는 순간 옛 선조들이 말한 ‘차경(借景)’의 의미가 온몸에 와닿는다.

■ 시간이 느리게 흐르는 곳, 안성 ‘서일농원’
안성 일죽면의 ‘서일농원’은 삭막한 일상에 지친 이들에게 조용한 쉼표가 되어주는 공간이다. 타원형 산책로를 따라 어느 방향으로 걷든 제자리로 돌아오게 되며 그 길 위로 소나무와 느티나무가 짙은 그늘을 드리운다. 여름이면 연꽃이 피어난 ‘용연지’가 가장 먼저 발걸음을 멈추게 한다.
2000개가 넘는 장독대는 서분례 명인의 손길이 닿은 공간이다. 장맛을 담는항아리들이 촉촉한 비를 맞으면 수묵화 같은 풍경이 완성된다. 이곳 식당에선 이 장으로 끓여낸 청국장을 맛볼 수 있다. 청국장의 깊은 구수함은 더위에 지친 몸에 진한 위로가 된다.

■ 정제된 건축물에서의 힐링 평택 ‘트리비움’
평택의 한적한 농로를 따라 들어가다 만나는 콘크리트 건물. 군더더기 없는 형태의 ‘트리비움’은 라틴어로 ‘학문의 세 갈래 길’을 뜻한다. 이곳은 건축 그 자체로 철학적 사유를 담고 있다.
직선과 면이 만들어낸 공간은 고요와 빛과 하늘, 자연을 담는다. 통창 너머로 펼쳐지는 들판과 햇살은 그 자체로 쉼이 된다. 내부는 카페, 전시장, 명상실 등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100% 예약제로 운영된다. 전시와 티타임을 즐기려면 ‘아트&스페이스’를 예약하면 된다.

■ 비 오는 날이 더 좋은 ‘이천 테르메덴’
사계절 내내 사랑받는 스파, 테르메덴은 독일식 바데하우스를 모델로 설계된 실내풀과 가족 단위 이용객에게 인기 많은 야외풀이 있다. 실내는 수영과 마사지를 동시에 즐길 수 있으며 비 오는 날 통유리를 타고 흐르는 풍경은 색다른 낭만을 선사한다.
야외 인피니티 풀에서는 햇살과 물빛이 어우러진 이국적 풍경을 경험할 수 있다. 테르메덴의 가장 큰 매력은 모든 시설에 ‘진짜 온천수’를 사용한다는 점이다. 비 오는 날의 온천욕은 그 자체로 잊지 못할 경험이 된다.
숲속에 위치한 숙박 공간은 카라반과 한옥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숙박권엔 스파이용권도 포함돼 있다. 낮에는 물에서 밤에는 숲에서 하루 종일 온전한 휴양이 가능하다.
[ 경기신문 = 류초원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