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8월이 다가오면 가슴속 어디에선가 희망의 감각기능이 작동되는 것 같다.
8월이면 눈부신 태양과 함께 우리들 가슴 속 또한 밝아지는 것 같았다. 복된 순간의 기쁨이 다가올 것 같은 느낌이었다. 이것은 분명 초등학교 때부터 가슴 속에 각인된 정서적 기능의 역할일 것이다. 8·15해방에 이어 6·25전쟁 뒤 초등학생이었던 나는 광복절이 되면 담임선생이 태극기를 그려오라고 했다. 종이도 귀했다. 하지만 컴퍼스가 없어서 사발을 엎어놓고 원을 만들고 물결 표시로 반으로 나눠 위로는 붉은 색을 아래로는 청색을 칠하여 태극기를 완성해 조심스럽게 가져갔다. 운동장에 모인 학생들은 교장선생의 선창에 의해 ‘대한독립만세’를 목청껏 크게 외쳤다. 그때 불렀던 광복절 노래는 지금도 외울 수 있다. ‘흙 다시 만져보자/ 바닷물도 춤을 춘다./ 기어이 보시려든 어른님 벗님 어찌 하리/ 이 날이 사십년 …’
임마누엘 칸트는 ‘인간은 교육을 통해서만 인간이 될 수 있다’고 했다. ‘교육의 양(量)이 국가의 양이고, 교육의 질(質)이 국가의 질이다.’ 라고 하였다. 8월이면 내 가슴속 행복의 감지기가 작동하는 것 또한 초등학교 당시 교육의 힘이요. 애국적 정서의 정의로운 감각이라고 나는 확신하고 있다. 지금처럼 지연과 학연과 정치이념에 따른 ‘내 편이 아닌 너는 죽어도 안 된다.’는 생각은 없었다. 많은 사람이 우선 배고픔을 면하고, 원하는 만큼 노력한 만큼 좋은 꿈이 이루어지는 소박한 삶을 희망하며 살았다.
우연한 일이었다. 지난 7월 중순 어느 지방신문에서 읽게 되었다.
‘김구 암살범’ 안두희 처단 / 정읍 출신 박기서 씨 별세라는, 기사였다. 백범 김구 암살범 안두희를 처단한 박기서 씨가 7월 10일 0시 10분께 경기도 부천의 한 병원에서 지병으로 세상을 떠났다. 향년 77세. 정읍에서 태어난 그는 경기도 부천 소신여객 시내버스에서 일하던 1996년 10월 23일 인천시 중구 신흥동의 안 씨 집에 찾아가 ’정의봉‘ 이라고 적은 40cm 길이 몽둥이로 때려 살해 했다. 범행 후 그는 7시간 만에 경찰에 자수하고 “백범 선생을 존경했기에 안두희를 죽였다. 어려운 일이지만 당당하다고 생각한다.” 고 말했다.
고인은 1997년 11월 11일 대법원 상고심에서 징역 3년이 확정됐지만 1998년 3월 김대중 정부 때 사면 석방됐고 소신여객 버스기사로 일하다 부천에서 택시기사로 일했다. 한편 안두희는 1949년 6월 26일 서울 서대문 인근 경교장인 현 강북 삼성병원자리에서 권총으로 김구를 암살했다. 그는 종신형을 선고 받고 육군형무소에 갇혔다가 감형되었다. 1951년 2월에는 풀려나 사면까지 받고 군에서 포병장교로 복귀했다고, 자세하게 신문은 밝히고 있었다. 사진 속 박기서 씨는 흰머리에 크고 검은 눈, 굳게 다문 입과 큼직한 콧날이 그의 정신과 삶의 모습 그대로를 보여주고 있었다.
동물적 인간의 기본형질과 습성 때문일까. 인간은 힘센 사람과 먹잇감을 가지고 있거나 어디에 있는지를 알고 있는 자를 따라붙게 되어 있는 것 같다. 그것이 결국은 친일, 친미, 친군부, 이어서 힘센 그들의 정당으로 이어지면서 아들딸 거액 과외 시키고 유학 보내고 우리나라에서는 S대학을 졸업시켜야 자본의 세습과 권력의 이양으로 이어진다는 것을 떠오르게 했다.
‘교육이 그 나라다’는 말도 있다. 해방 이후 초등학교에서는 ‘바른생활’이라는 책을, 중학교 때는 ‘도덕’ 책을, 고등학교를 진학하면 ‘공민’이라는 교과서가 있어 배우고 실천하게 했다. 지금은 인문학적 교육을 위하여 바른생활을 위한 교과목을 얼마큼의 비중을 두고 가르치고 있는지 잘 모르겠다. 세상이 자기 이익과 뜻에 맞는 사람들의 별천지로 되어 가는 것 같아서 하는 말이다. 그런데 지금의 일부 젊은이들이 ‘공의로운 분노’를 표출하는 것을 보면, 모두가 영어·수학·법학만의 공붓벌레 같지 않다는 생각이다.
인간으로서 정의롭고 공의로운 죄 값을 치르고 생을 마감한 박기서 씨는 동학혁명의 발상지인 정읍에서 태어났다. 그분은 권력자의 오만과 돈방석 위의 교만과는 거리가 먼 시골 태생으로 개인택시 운전을 하다 갔다. 그분에 대한 기사를 읽고 나는 내 제자 A군이 정읍 고부에서 목사로 봉직하고 있기에 더욱 색다른 감정이었다. 이어서 안두희를 사살할 때 사용했다는 40cm의 몽둥이로서의 ‘정의봉’이 꼭 한번 보고 싶었다. 지난해 12·3 사태 이후 대한민국 국민들이 너무도 안타깝고 불행하다는 생각을 하면서, 그들에게 들려주고 싶은 말이 있다. 토끼가 호랑이 굴에 들어간다고 호랑이 되는 것 아니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