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이 고요한 것은 / 홍명진 / 걷는사람/ 312쪽 / 1만 6000원
누구도 자신의 이야기를 남기지 않고/ 죽을 만큼 빈곤한 삶을 살지 않는다고/ 말한 사람이 누구였더라?/ 모연은 다만, 모든 날이/ 고요하길 바랄 뿐이었다. (본문 中)
홍명진 작가의 소설집 '밤이 고요한 것은'이 출간됐다. 이번 작품집은 익숙한 서사 대신 잘 들리지 않지만 분명히 존재하는 감각에 집중한다. 작가는 이질적이거나 주변부에 놓인 존재들을 향해 다가가고 그들이 머무는 공간 속에 자신을 조용히 놓으며 문학적 태도를 구축한다.
표제작 '밤이 고요한 것은'은 돌발성 난청을 겪는 화자가 이웃의 갑작스러운 죽음을 마주하는 과정을 통해 일상의 균열과 침묵의 진동을 섬세하게 포착한다.
공공도서관에서 단기 계약직으로 일하는 주인공은 불안정한 삶 속에서 감각의 단절을 견디며 위층에 살던 분홍 여사의 부재를 인지하면서 세상의 고요 속에 감춰진 불안을 감각한다. 작품은 고요가 단순히 소리가 사라진 상태가 아니라 수많은 신호가 겹친 밀도일 수 있음을 환기한다.
이러한 태도는 소설집 전체를 관통한다. "답례 없는 순수 증여"로 존재를 드러내는 인물들 삶의 가장자리에 머물며 끝내 중심으로 나아가지 않는 인물들, 연약함을 껴안고 스스로를 비워내는 인물들이 각 작품 속에 놓여 있다.
이밖에 수록작 '장귀자 아카이빙'은 타자의 삶을 기록하는 아카이빙 서사로 사라져가는 존재의 흔적을 담담히 복원한다. 작가는 이를 ‘말하지 않고, 중심에 서지 않으며 타자의 삶을 조용히 감각하는 태도’로 규정한다.
다른 수록작들에서도 삶의 변두리에 선 인물들이 등장한다. '마지막 산책'은 병든 아내를 돌보는 노년 남성이 세계와의 연결을 스스로 끊는 결단을 그리며 '모자'는 과거 인연의 부고 앞에서 고립된 삶을 응시한다.
'미조'는 공동체의 상흔과 죄의식을 불러내고, '그들의 내력'은 장례식장이라는 공간에서 눌러두었던 가족 갈등을 드러낸다. 아울러 '마술이 필요한 순간'은 연극을 시작한 딸과의 교감을 통해 세대 간 소통을, '불면'은 갱년기의 불면과 불안을 감각하는 주인공의 고립을 담는다.
'밤이 고요한 것은'은 중심보다 주변에 드러나는 말보다 침묵의 여백에 집중한다. 홍명진 작가는 고요히 사라지는 존재들을 기억하고 기록하는 조용한 문장으로 말없는 것들에 대한 윤리적 응답을 내놓고 있다.
[ 경기신문 = 류초원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