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배워야 산다. 아는 것이 힘’이라는 말을 듣게 되고, 공부와 독서라는 단어가 귀에 익고 눈에 들어올 때부터 지금까지의 일이다. 그래 공부해야지, 부지런히 책 읽고 ‘문학 공부를 해보자.’ 라고 생각했다. 그 뒤 나의 시대적 사고(思考)와 진실의 에너지는 시에 있어서는 ‘생활이 그대를 속일지라도’ 의 푸시킨의 시와 선조로서의 양사언의 ‘태산이 높다하되 하늘 아래 뫼이로다.’ 라고 할 수 있다.
중학교 다니면서 방을 얻어 자취할 때다. 어린 나이에 어머니 품을 떠나 학교 다녀와 저녁밥을 지으려고 부엌에서 나무에 불을 지필 때, 갑자기 어머니가 보고 싶어서 눈물이 핑 돌았다. 그 순간 푸시킨의 시 ‘생활이 그대를 속일지라도 슬퍼하거나 노하지 말라’는 시행이 머리에서 가슴으로 내리며 마음을 다독여주었다. 이때의 감성이 일생을 살아오면서 고비고비 굽이굽이마다 어머니의 가슴 체온 같이 슬픔을 다독여주었다.
내 곁에는 중⭑고등학교를 함께 다닌 고향 친구가 있다. 그는 온화한 성격으로서 따지지 않고 신앙적인 마음으로 살아가고 있다. 친구는 J 대학에 재직하면서 일찍부터 산행을 즐겼다. 그러던 어느 날부터 나는 그를 따라 합천 해인사와 지리산을 등반하는데 동행한다는 것이 주말 산행의 즐거움이 되고 말았다. 지리산 천왕봉에 올라 해 뜨는 광경을 보고, 칠선계곡으로 내려올 때의 그 고통은 지금도 쓰리고 관절이 저리도록 아픈 추억이다. 그런데 휴일이 되면 다시 ‘오르고 또 오르면 못 오를 리 없건만 제 아니 오르고 산(뫼)만 높다’ 고 핑계를 댄다는 양사언의 시조를 가슴에 새기면서 한 걸음 두 걸음 오르고 또 오르면서 내 인생의 젊음과 중년을 보냈다.
‘문학과 산행’ 내 젊은 시간은 이렇게 새겨졌고 그 힘으로 삶을 포기하지 않고 구비와 고비를 넘겼다. 그 시간 속에는 핏빛 노을과 가족과의 사별이라는 폭발적 운명의 순간도 겪어야 했다. 아니 지금도 견뎌내고 있다. 푸시킨 시의 위로로 될 일도 사건도 아니고, 한 걸음 한 걸음 오르고 또 오를 일도 아니다. 하지만, 그러한 문학의 힘과 문자의 리듬적 위안이 있기에 ‘사노라면 잊힐 날’이 있겠지요. 와 굳건한 사고의 근육으로 내 가슴과 영혼을 단련하며, 고통과 분노를 잊고 쉬고자 노력한다.
등산을 하며 자연 속에서의 나를 발견하고 내가 주인 되는 삶을 가리라라고 가슴 근육을 키웠다. 고통스러운 멋을 즐길 줄도 알아야 한다라는 사고의 훈련과 문학적 뼈대와 함께 인간은 결국 무화(無化)된다는 의미 속에서 ‘왜 사냐면 웃지요’의 경지를 더듬어 미소를 짓기도
한다.
지난 7월 29일에는 담도 암 투병 끝에 향년 71세로 허형호 등반가가 세상을 떠났다. 그는 1982년 미칼루(8463m)를 등정하며 본격 산악인 인생을 시작했다. 1983년에는 마나슬루(8163m)를 무산소 단독 등정에 성공했고, 1987년에는 한국인 최초 동계 에베레스트를 정복했다. 총 6회 에베레스트 등정가인 그는 2010년에는 아들과의 부자 등정도 했다.
세계 기록을 보면 세계 최초 3 극점 북극⭑남극⭑에베레스트 도달 ⍆ 7 대륙 최고봉 완등자로 기록되어 있다. 1954년 충청북도 제천에서 태어난 허형호 등반대장은 ‘도전의 아이콘’으로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다.’는 신념으로써 60대 이후의 세대에게 도전과 용기의 메시지를 전파하면서 전달하고 갔다.
작심하고 문학을 공부할 때다. 이태준의 '문장강화'부터 읽었다. 산행을 하면서는 교수이자 시인인 김장호의 '나는 아무래도 산으로 가야겠다'는 책을 읽었다. 이 책은 산악에세이집으로 등산과 자연에 대한 깊은 애정과 철학적 성찰을 담은 작품이었기 때문이다. 그 후 에드워드 윔즈의 '알프스 등반기' 등을 숙독했다.
지금 내 곁엔 알프스몽블랑만년필이 한 자루 있다. 내가 소유한 가장 값 비싼 소장품이다. 이 만년필은 오래전 내가 어느 문학상을 수상했을 때, 축하한다면서 대구의 K사장이 기념 선물로 보낸 것이다. 만년필 뚜껑 위에는 몽블랑을 상징하는 눈 빛 로고가 제 값을 물고 있다. 만년필 펜촉은 금빛으로 독사뱀 머리처럼 두툼 납작하다.
사고(思考)도 습관이다. 정신 훈련의 결과이다. 정성 들여 읽고 생각하고 깊이 사유할 일이다. 이어서 내가 쓰고자 하는 글의 과녁을 정조준해 빗나가지 않도록 사고의 훈련이 필요하다. 문학에서의 등반과 사고의 훈련이 필요한 이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