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에 금융실명제가 도입된 것은 1993년 8월 12일이었다. 당시 ‘문민정부’를 표방한 김영삼 정부는 ‘금융실명 거래 및 비밀보장에 관한 대통령 긴급명령’을 공표하고, 모든 금융 거래를 실지 명의(실명)로만 할 수 있도록 했다. 그러나 원래 금융실명 거래에 관한 법률은 1982년 말에 제정되었는데 여건 미비를 이유로 시행을 보류해 왔다.
이 제도가 생긴 이후 엉터리 건설공사를 근원적으로 없애기 위해 1995년 2월부터 도입한 것이 공사실명제였다. 이 제도는 건설공사를 준공하면 당해 시설물에 석재나 금속으로 준공표지판을 제작해 공사명과 기간, 발주자와 시공, 설계, 감리, 현장감독, 기술 준공검사자의 이름을 명기해 영구적으로 남게 함으로써 공사에 대한 책임을 지고, 나아가 부실 공사를 막는다는데 그 뜻이 있었다.
그런데 이 공사실명제는 전혀 새로운 것이 아니었다. 왜냐하면 이미 조선후기부터 공사실명제가 있기 때문이다.
조선초에 수축된 한양 도성의 경우 천자문의 순서에 다라 몇 백척씩 구간을 나누어 공사를 진행했다는 것을 성벽의 기단석에 새겨 놓았고, 왜국의 침입에 맞서 축조한 남해안과 서해안의 연변 읍성 기단석에도 공사 책임자와 투입된 인부수, 출신지를 기록한 것이 확인됐다.
수원 화성(華城)의 경우도 예외가 아니었다. 예컨대 화성의 4대문에는 성문 한쪽에, 감독을 비롯한 중요 인물의 성명을 성문의 바깥면과 안쪽 왼편에 새겨 놓은 것을 볼 수 있다. 이들 관계자 실명은 성벽을 쌓은 후 각자할 곳을 다시 마름질하여 글자를 새겨 넣거나, 별도의 공간을 두지 않고 성벽에 그대로 새겨 넣기도 하였다. 그래서일까. 화성은 축성한 지 209년이 되었지만 성의 본체는 옛과 다름없이 건재하다. 다만 6·25한국전쟁 때 북한군의 포격으로 일부가 파손돼 보수하는 바람에 변형된 곳이 있을 뿐이다. 선조의 지혜는 위대하다.
이창식/주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