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돌프 아이히만은 독일 나치의 중령계급이었다. 비교적 낮은 계급이었지만 그는 2차 세계대전이 종전된 뒤 나치 수뇌부를 재판한 뉘른베르크 법정에 반드시 서 있어야 할 인물이었다. 아이히만은 히틀러의 유태인학살을 가장 효율적인 방법을 동원해 적극적으로 추진한 실무 책임자였기에 반드시 심판받아야 했기 때문이었다.
나치가 점령한 지역마다 수거(?)된 유대인들은 그들만의 집단 거주지인 게토에서 생활하다가 유럽 전역에 있었던 아우슈비츠 같은 유태인수용소로 이송되어 차례대로 가스실에 들어가 학살되었다. 이때 아이히만은 가장 빠른 시간내에, 가장 적합한 수용소로 그들을 이송하는 열차 시간표를 작성해 유대인에게는 누구보다도 공포스러운 존재였다. 전후 당연히 체포되었어야 할 그는 사라져 멀리 아르헨티나에서 이름과 신분을 속이고 15년을 숨어 살고 있었다. 그러나 세계 최고의 정보력과 끈질김으로 무장한 이스라엘판 국정원이 모사드에 걸려 1960년 체포 납치되어 이스라엘의 전범 재판에 넘겨졌다.
마침 히틀러를 피해 미국에 망명해 연구 생활을 하던 독일 출신 유대인 한나 아렌트는 잡지사 뉴요커에서 법정 취재기를 청탁받고 이스라엘로 날아갔다. 아이히만을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아렌트는 유대인 600만 명을 죽인 그는 굉장히 험악하고 잔인하게 생겼을 것으로 추측했다. 그러나 법정에 들어온 아이히만은 뜻밖에 너무나 평범하고 왜소한 이웃집 아저씨 같은 모습이었다. 법정에서 아이히만은 자신은 단 한 명의 유대인도 죽이지 않았다며 그저 위에서 시키는 대로 일하는 충실한 공무원이었을 뿐이라며 변명했다. 심지어 자신은 명령에 잘 따른 모범적인 공직자였으므로 훈장을 받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20세기 최고의 여성 정치철학자인 아렌트는 아이히만의 무죄 주장에 생각하지 않고 그저 명령에 따르기만 했던 죄가 가장 큰 죄라며 악의 평범성(Banality of evil)을 주장했다.([예루살렘의 아이히만]) 악은 우리 곁의 누구에게도 평범하게 작동될 수 있다는 이 개념은 지금도 아무런 생각 없이 그저 위에서 시키면 시키는 대로 하는 영혼 없는 공직자를 상징하는 표현이 되었다. 아무리 명령이라 하더라도 아무런 문제의식도, 생각도 없이 심지어 그것이 인간과 사회에 크나큰 악행임에도 그대로 따른다면 그것은 중대한 범죄라는 것이다.
윤석열의 내란 사태가 지지부진하더니 결국 1년을 넘겼다. 과정에서 우리 사회 소위 엘리트라는 자들의 속성이 그대로 노출되었다. 부하들에게 모든 책임을 떠 넘기는 비굴하기 짝이 없는 내란 수괴와 블랙 아웃되어서 아무런 기억도 안 난다는 전직 총리와 입만 열면 거짓말로 면피하고자 하는 방조 내지는 협조자들이었던 전직 고관들, 악에는 아무 소리도 못 하면서 국회의 권한인 입법으로 민주적 질서를 회복하려는 시도에는 거품을 물고 달려들어 사법부의 독립만을 외치는 판사들.
도대체 이들은 왜 이렇게 악에 둔감한 것일까. 진정으로 이들에게 공적인 마인드를 요구하는 것은 불가능한 것일까. 아니 윤과 같은 한심한 지도자가 있어야 지금까지 누렸던 이권이 유지될 수 있다는 확신 때문이 아닐까? 그동안 이런 악이 평범하게 우리 곁에 있었는지를 알게 되니 갑자기 한국 사회가 무섭고 공포스럽다. 영혼 없는 공무원이었던 아이히만은 사형제를 부활시킨 이스라엘에서 교수형 뒤 화장되어 지중해에 뿌려졌다. 영원히 쉴 그의 안식처는 지구상에 존재할 수 없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