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동대문 인근 광희동에는 중앙아시아에서 온 사람들이 모인 거리, 일명 ‘동대문 실크로드’가 있다. 일찍이 1990년 한소 수교를 기점으로 구소련 출신 외국인들이 모여들면서 조성된 거리로, 우즈베키스탄, 키르기스스탄, 카자흐스탄, 몽골 출신 사람들이 주를 이루었다. 작은 골목이지만 거리마다 키릴문자와 한글이 뒤섞여 이색적인 분위기를 자아내는 곳이다.
이곳에는 중앙아시아 이주민의 생활을 위한 음식점, 식료품점, 환전소 등 150여 개 업체가 밀집해 있는데, 동대문에서 판매되는 다양한 상품을 우즈베키스탄, 키르기스스탄, 카자흐스탄, 몽골 등 중앙아시아 내륙으로 보내기 위해 가까운 광희동을 드나들면서 이곳이 그들의 터전이 된 것이다.
또한 우리 주변을 둘러보면 건설과 산업현장에서 일하는 이 지역 출신 노동자들을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다. 중앙아시아가 어느덧 우리 곁에 성큼 다가온 것이다. 그러나 역사적으로 유목민의 땅이었던 이 지역이 아직도 우리에게 멀고 낯선 공간이다.
지도 위에서는 러시아와 중국 사이에 끼인 내륙 지역, 뉴스 속에서는 자원과 지정학의 대상으로만 등장해 왔다. 그러나 이 땅을 직접 밟으며 사람을 만나보면 중앙아시아는 결코 추상적인 공간이 아니다. 그곳에는 이미 우리의 이름과 언어, 그리고 기억을 품고 살아가는 사람들이 있다. 바로 고려인이다.
중앙아시아를 움직여 온 고려인들
나는 중앙아시아 곳곳을 출장과 여행 등 다양한 형태로 수없이 다녔는데, 아무리 낯선 지역에 가더라도 고려인을 만날 수 있었다. 그들은 박물관 속의 역사가 아니라 지금 이 땅의 경제와 사회를 움직이는 현재형 인물들이었다. 중앙아시아에서 고려인의 역할은 단순한 소수민족의 범주를 훌쩍 넘는다.
지난 2021년 4월, ‘포브스’지가 발표한 세계의 부호 랭킹에 낯익은 이름이 눈에 들어왔던 게 기억난다. 내가 카자흐국립대학교 한국학과 교수로 재직할 당시 제자들의 취업알선을 위해 처음 만나보았던 김 베체슬라브 카스피은행장의 이름이었다.
김 베체슬라브는 고려인으로서 카스피은행을 설립하여 이를 카자흐스탄를 넘어 중앙아시아 최대의 핀테크 기업으로 성장시킨 인물이다. 소매금융을 위주로 하던 카스피은행을 결제, 커머스, 모바일 뱅킹을 제공하는 앱으로 진화시켜 런던 증권거래소에 상장시킴으로써 일약 세계적 부호 명단에 이름을 올리게 된 것이다.
카스피은행은 모바일 앱을 통해 상업은행서비스 외에도 세금과 각종 공과금과 범칙금 납부, 상품구매, 여행 등 일상생활에 필요한 다양한 기능을 갖추고 누구나 편리하고 손쉽게 사용할 수 있게 함으로써 아침에 눈 뜬 뒤부터 잘 때까지 하루에 수차례씩 사용할 수 밖에 없게 되었다. 포브스지 발표 당시 그의 자산액은 33억 달러(원화 약 4조 8천억).
2000년대 초반, 카자흐스탄 최대 광산기업 중 하나인 ‘카작믜스’를 이끌었던 김 블라지미르 사장은 국가 정상과 글로벌 금융권 인사들이 만나는 자리의 중심에 서 있었다. 당시 영국 총리가 카자흐스탄 대통령에게 직접 서한을 보내 ‘카작믜스’의 런던 증시 상장을 축하할 정도였다.
카자흐스탄 고려인 협회를 이끄는 채유리 회장은 고려인 2세 기업인으로, 카자흐스탄 정부가 의욕적으로 추진하는 알라타우 신도시 건설 사업과 2027년 고려인 정주 90주년 기념 K-파크 조성 등 양국 간 경제·문화 교류를 주도하고 있다. 카자흐스탄에 한국의 스마트시티 기술 도입 및 보건의료 파트너십(OHKZ) 등을 통해 고려인 사회의 위상을 높이고 있다.
중앙아시아 어디를 가든 눈에 띄는 삼성전자, LG전자, 현대자동차 등의 화려한 광고판 뒤에도 고려인들이 있다. 중앙아시아 가전, IT 업계를 대표하는 Top3 기업들 역시 고려인이다. 이들은 단순한 판매상이 아니라 한국 기업의 현지화 전략을 실질적으로 구현한 파트너였다.
더 거슬러 올라가면 메데우 댐을 설계·시공한 허가이 알렉세이의 사례도 있다. 해발 2천 미터가 넘는 고산 지대에서 세계 최초의 공법으로 대형 댐을 완공한 그는 카자흐스탄 토목사의 전설로 남았고, 국가적 존경을 받았다.
이 모든 사례는 고려인이 단순히 ‘잘 적응한 이주민’이 아니라, 중앙아시아 사회의 구조 속으로 깊이 들어가 영향력을 행사해 왔음을 보여준다.
‘과거가 현재를 돕고 있다’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 있다. 1937년 중앙아시아로의 강제이주 이후 고려인이 수십 년간에 걸쳐 쌓아온 근면하고 성실한 이미지는, 한국 기업이 중앙아시아에 진출하는 데 있어 보이지 않는 자산이 되었다. 전세계를 휩쓸고 있는 ‘K 컬쳐 현상’의 선구자 또는 원조는 중앙아시아 지역에서 고려인들에 의해 일어났다고 할 수 있다.
이 점에서 우리는 고려인에게 일종의 ‘역사적 은혜’를 입고 있다. 그러나 이 은혜는 자동으로 성공을 보장해 주지 않는다. 오히려 이를 당연하게 여기거나, 고려인 네트워크에만 의존할 경우 오히려 독이 될 수도 있다.
중앙아시아의 불투명한 행정, 복잡한 세법, 만연한 부패 구조는 한국 기업에게만 가혹한 것이 아니다. 현지 기업과 다른 외국 기업들 역시 같은 조건에서 경쟁하고 있다. 문제는 환경이 아니라, 그 환경을 어떻게 이해하고 대응하느냐에 있다.
중앙아시아 시장에서 실패한 기업일수록 책임을 외부로 돌리는 경향이 있다. 현지 파트너 때문이라고 말하고, 문화가 다르다고 탓하며, 제도가 불합리하다고 불평한다. 그러나 이 시장을 떠난다고 해서 더 쉬운 길이 열리는 것도 아니다.
오히려 중앙아시아는 기업의 내공과 장기 전략을 시험하는 무대다. 이곳에서 성공하지 못한다면 북미나 유럽, 아프리카에서도 같은 어려움에 부딪히게 될 가능성이 높다.
이 지점에서 고려인의 역할은 다시 중요해진다. 고려인은 단순한 인맥이 아니라, 문화와 제도, 사고방식을 해석해 주는 ‘전략 자산’이다. 이들을 동등한 파트너로 인정하고, 그들의 경험과 네트워크를 존중할 때 비로소 징검다리는 제 역할을 한다.
중앙아시아를 친구로 만드는 길
중앙아시아는 기다려 주지 않는다. 그러나 서두른다고 해결되는 곳도 아니다. 사회주의 체제를 거쳐 온 이 지역의 역사와 문화, 사고방식을 이해하지 못한다면 어떤 계약도 오래가지 못한다.
결국 답은 사람이다. 고려인을 징검다리 삼아 현지 사회를 이해하고, 7,600만 중앙아시아인들과 신뢰를 쌓아 갈 때 중앙아시아는 자원의 대상이 아니라 동반자가 된다.
우리는 이미 좋은 출발선을 가지고 있다. 이 역사적 선물을 어떻게 활용할 것인지는 전적으로 우리의 몫이다. 고려인을 징검다리로 삼아 중앙아시아를 더 가까운 친구로 만들 수 있을지, 아니면 스쳐 지나가는 기회로 남길지는 지금 우리의 선택에 달려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