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병호 시인이 12 번째 시집 ‘자화상’을 상재(上梓)했다. 나라 안에선 편운재(片雲齋) 조병화 시인이 가장 많은 시집을 낸 다작 시인으로 알려져 있지만, 임병호 시인도 지금 페이스를 유지한다면 결코 못따라 잡을 것 같지 않다. 여기서 다작 얘기를 꺼내는 것은 다작이 좋다 나쁘다가 아니라, 시집을 쉼없이 펴내는 그 열정과 창작욕이 부러워서 하는 말이다.
임 시인이 맨 먼저(1975년) 펴낸 시집이 ‘환생(幻生)’이었다. 이후 ‘가을엽서’, ‘신의 거주지’, ‘우만동 별곡’, ‘벌초’, ‘아버지의 마을’, ‘새들이 방울을 흔든다’, ‘어느 행복주의자의 명상록’, ‘금당리’, ‘일출 앞에서’, ‘겨울 환상곡’에 이어 이번에 ‘자화상’을 선보였다. 30년만에 12 번째 시집을 냈으니 2년 5개월에 한 권씩 선보인 셈이 된다. 이는 1년에 한 권, 또는 2권씩 펴낸 것보다는 뒤지지만 2년 5개월마다 시집을 낸 시인도 사실은 드물다. 왜냐하면 시집은 돈이나 정력으로 펴내는 것이 아니라, 시인의 피와 혼으로 그려내는 진(眞)·선(善)·미(美)의 결정체이기 때문이다. 달리 말하면 임병호 시인은 그토록 지난한 작업을 묵묵히 해낸 셈이고, 그런 산고를 운명처럼 여기고 있다는 점에서 돋보인다.
임 시인이 첫 시집 ‘환생’을 냈을 때 필자는 서문을 쓴 일이 있었다. 내용은 임 시인이 죽었다 다시 태어난다해도 시인이 될 것이라는 요지의 글이었던 것으로 기억하고 있다.
또 한가지 임 시인을 얘기할 때 빼놓을 수 없는 것이 있다. 그것은 그가 20대 약관일 때 수원 문단의 설립자로 활약했다는 사실이다. 작고한 안익승 선생과 함께 수원 문인동아리를 창립한 것이 오늘날의 수원문인협회, 경기도 문인협회의 모체가 되었으니, 큰 일을 한 셈이다. 본업이 K일보 논설위원인터라, 이래저래 글쟁이 소리를 듣고는 있지만 청탁을 가리지 않는 술 사랑(?)은 너무 파격적이어서 그저 감탄할 따름이다. 건필을 빈다.
이창식/주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