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한일 정상회담에서 희생자 유해발굴에 합의한 야마구치현 조세이 해저탄광 수몰사고는 한일관계사의 관점에서 볼 때 매우 상징적이다. 1942년 2월 3일에 일어난 사고였다. 희생자는 183명으로, 조선인 136명, 일본인 47명이었다. 일본정부는 장장 84년 동안 유해발굴 요청에 귀를 닫고 있었다. 일본 후생성은 잠수사 등 전문인력과 함께 현지방문을 했다. 일에 착수한 것이다.
필자는 이 사안을 접하면서 특히 탄광의 이름을 주목했다. ‘조세이’는 그 지명(地名)이 아니라, 광산현장의 문패다. 한자로는 장생(長生)이다. 그때나 지금이나 광산은 사고위험성이 높다. 게다가 ‘조세이’는 해저탄광이었다. 영안(永安. 오래오래 편안한 인생), 영광(榮光.힘들지만, 곧 부자로 살게 된다), 복강(福岡. 후쿠오카의 한자표기지만, 복을 받는다는 뜻), 수(壽. 장수) 등은 또다른 탄광의 이름이었다. 이 얼마나 역설적인가. ‘늙지 않고 죽지 않는다’는 말(불로장생. 不老長生)은 진시황 같은 절대권력자들의 꿈이었다.
바다 밑 그 어둡고 위험한 탄광! ‘長生’, 그 특별한 이름은 마치 일제가 강제동원한 조선인들에게 “불평불만 없이 열심히 일하면 굶기지 않겠다, 노임도 잘 챙겨주겠다, 고향에 빨리 돌아가도록 해주겠다, 그 돈 가지고 고향에 가서 오래오래 잘살아라”, 하고 등을 두드리며 언제 무너질지, 물이 들어올지 모르는 바닷속 채탄장으로 몰아넣기 위한 선동구호였다. 일제가 우리 민족에게 저지른 만악(萬惡)의 현장에는 예외 없이 ‘長生’의 현수막이 나부꼈다. 그들의 요절(夭折)은 그렇게 때문에 참으로 드라마틱하다.
특기할만한 사항은 긴 이름의 ‘조세이탄광 수몰사고를 역사에 새기는 모임’이라는 시민단체다. 이 모임에서는 양국의 유족들, 시민단체들, 이 단체의 목적이 도움 되는 여러 분야의 전문가들이 형제자매가 되어 함께 활동하고 있다. 1991년 만들어졌다. 안타깝고 화가 나는 것은, 그들이 30년 넘도록 끊임없이 유해발굴을 외쳤지만 ‘쇠귀에 경읽기’의 세월이었다는 점이다. 두 나라 정상은 30년이 넘는 고통과 인내의 시간을 10분만에 풀었다. 좋은 정치는 억울하고 가슴 아픈 사람들이 대를 이어 매달려야 하는 일이 없게 만드는 것이다.
실은 ‘長生’만이 아니다. 100년 전, 일제가 정신대원(挺身隊員)을 모집할 때, 총독부 관리들이 “천황을 위하여 몸을 바치자”고 외치던 소리가 들리는 듯하다. 신(神)이었던 천황과 국가를 위하여 헌신하는 것은 개인과 집안의 영광(榮光)이라는 믿음을 가슴에 새기는 선동이요, 세뇌였다. “여성도 전쟁에 참여하여 영광을 누리자”고 유혹하여 군수공장과 위안소에 배치했다. 영광은 천황이 내려주는 은총이었다. 최남선, 이광수 같은 조선의 명사들까지 나서서 나라(일본)를 위하여 일하면 복(福)을 받는다고 열변을 토했다. 제국주의는 좋은 말들을 모두 이렇게 오염시켜 놓았다. 예나 지금이나, 나쁜 정치인들이 세상을 망가뜨리고 국민을 지옥으로 몰아넣으려 할 때 가장 먼저 하는 짓은 말을 타락시키는 것이다.
이재명 대통령은 말이 분명해서 좋다. 그의 발언에는 과장도 축소도 없고, 한쪽으로 치우치지도 않는다. 가장 듬직한 것은 흙수저로 태어나 오늘에 이르는 동안 겪은 신산고초의 기억들을 다종다기(多種多岐)의 정책에 녹여넣어 민생의 질을 높이고 있다는 점이다. 3·1절 107주년이다. 그날 거리로 뛰쳐나갔던 갑남을녀, 장삼이사의 후손들이 이 삭막하고 각박한 세상에서 무병장생(無病長生)하기를 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