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은행이 현재 통용 중인 화폐 크기를 줄이고, 도안을 바꿈과 동시에 고액 신권 발행을 준비 중이라는 것은 익히 알려진 일이다. 지금 쓰고 있는 지폐는 선진국 지폐에 비하면 조금 크고, 모양도 세련된 편은 아니다. 다만 지질(紙質)이 우수해 수명이 길다는 장점이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우리나라는 광복 이후 세번 화폐개혁을 했다. 1차는 1950년 8월 28일에 단행됐다. 6·25 한국전쟁 직후 불법 남발된 적성 통화를 없애기 위한 것으로 조선은행권을 한국은행권으로 등가교환(等價交換)해 주었다.
2차는 1953년 2월 16일 막대한 전비(戰費) 지출 등에 따른 통화증발과 인플레이션을 막고, 과잉구매력 흡수와 체납 국세 일소를 위해 단행했다. 이 때는 통화 단위를 100분의 1로 낮추고, 화폐 호칭을 ‘원’에서 ‘환’으로 바꾸었다.
3차는 5.16 군사 쿠데타 이후인 1962년 6월 10일 단행됐는데 과잉통화를 흡수하여 물가상승 요인을 막고 퇴장자금을 양성화 시켜 산업자금으로 쓰기 위함 이었다. 이 때 ‘환’이 ‘원’으로 다시 바뀌었다.
고약한 것은 1905년 1월 18일 화폐조례 공포 때의 화폐개혁이었다. 명분은 근대 화폐제도 확립이었지만 속내는 조선 금융의 장악이었다. 일제는 그 동안 사용하던 백동화를 3등급으로 구분하여 갑종은 본래 값인 2전5리, 을종은 2리로, 병종은 아예 교환해주지 않았다.
화폐개혁을 주도한 통감부는 이런 사실을 일본인들에게 미리 알려줘 양화(良貨)의 대부분을 일본인들이 수집해 막대한 이익을 보게 한 대신, 조선인들이 가지고 있었던 백동화는 대개 병종으로 처리돼 하루 아침에 무일푼 신세가 되고 말았다. 또 대상끼리 주고 받은 약속 어음을 무효화함으로써 부도사태가 속출하고, 자살한 사람도 한 둘이 아니었다. 민족 자본으로 세운 ‘한성’과 ‘천일은행’이 쇠락하고 일본계 은행이 흥한 것도 이 때부터 였다.
이창식/주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