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12월 25일, 연길 천지광장에 위치한 정다연헬스클럽이 정식 개장했다. 정다연헬스클럽은 면적이 약 3500평방메터로서 지난해 8월에 시공을 시작, 11월 21일부터 12월 24일까지 꾸준히 시험영업을 했다. 시험영업기간 이들은 회원들에게 보다 쾌적한 환경을 마련해주기 위해 14명 일군이 밤낮을 가리지 않고 최선을 다해 실내설비들을 정비했다. 현재 이 헬스클럽에서는 휴식실, 미용실 등 다양한 서비스 설비들을 갖추어놓고 회원들에게 많은 편리를 마련해주고있다. 또한 39가지 헬스종목을 내놓아 건강하고 유쾌하게 몸매를 가꾸도록 하기에 헬스운동 적장소로 널리 소문놓고있다. 지금까지 근 두달간 시험영업기간과 정식영업기간을 포함하여 무려 2000여명 회원이 이미 이곳에서 헬스운동을 ‘락’으로 삼고 즐기고있다. 정다연씨는 몸짱아줌마로 널리 알려져있는 피트니스 트레이너이다. 그에게는 ‘원조몸짱’으로 된, 13가지나 되는 자기의 이름으로 만든 다양한 건강운동체조가 있다. 이날 현장에서 정다연씨는 1대1로의 가르침 시간을 가졌으며 기타 각종 다양한 활동들도 조직하여 회원들의 환영을 받았다. /글·사진=박경일·윤금희 기자
지난해말, 연길시 고물시장 부근에 위치한 자택에서 만난 한영준(80세)옹, 움직임이 다소 힘겨워보인다. 한평생을 ‘우리 말 우리 글 지킴이’로 외길 인생에 바쳐온 그의 모습을 카메라에 조심히 담으면서 인터뷰는 시작됐다. 그의 ‘삶’이 녹아든 사진을 찍기란 쉽지 않은 일이였다. 밤샘작업을 한탓일가? 인터뷰 도중 피곤한듯 눈을 질끈 감고 의자에 몸을 푹 기대면서도 기자 질문에 하나라도 더 일러주고싶은 마음에 자료를 들추고 책장을 넘겼다. “평생을 우리 말 바로잡기와 책 만드는 일에 종사한 사람으로서 좋은 책에 얽힌 이야기가 후배들에게 도움이 될가싶어 털어놓습니다.” 스스로를 ‘책이 삶이 되여버린 사람’이라고 소개하는 한영준옹의 말에는 일말의 흐트러짐도, 망설임도 없다. 화룡이 고향인 한영준옹은 지난 1961년에 연변대학 조문학부를 졸업하고 연변1중 어문교원으로 지내다 나이 50에 연변교육출판사 조선어문교과서편집실로 둥지를 틀면서 선생의 ‘우리 말 우리 글’사랑은 더욱 깊어졌고 어느덧 자타가 공인하는 ‘사전통’으로 됐다. 재직기간 그가 수집했던 자료를 정리해 집필한 《틀린말 고치기》 책은 발행부수 2만을 훌쩍 넘기며 많은 사랑을 받았다. 이어 《륙용우리말사전》을
제3회 ‘륙정산’컵 국제동계수영초청경기가 4일 돈화시 륙정산문화풍경구 성련호에서 성대히 개막했다. 부주장 천해란이 대회 개막식에 참석했다. 19개 나라와 지역 겨울철 수영애호가들이 대회에 대거 참가한 가운데 최고령 선수는 73세에 달했다. 하루동안 진행된 경기는 25메터 접영, 자유영, 평영 3가지 종목에서 남자 갑조(51세 이상)와 을조(50세 이하), 녀자 갑조(46세 이상)와 을조(45세 이하)로 펼쳐졌다. 언 호수를 뚫어 만든 25메터 길이의 수영장 수온은 물과 얼음의 림계점에 달해 매 선수에게는 쉽지 않은 도전이였다. 이번 초청경기대회는 동계수영애호가들의 성회로 참가자들에게는 렬악한 환경에서 자기의 투지를 빛내는 전시, 경쟁, 제고의 무대가 되였다. 이번 대회에는 많은 나라의 수영애호가들이 한자리에 모였다. 파키스탄, 예멘, 르완다, 수단, 탄자니아, 로씨야, 말레이시아, 싱가포르, 리트바, 중화 대북, 향항 등 19개 나라,지역과 국내의 광동성 불산시, 광서성 옥림시 등 총 63개 도시 359명의 선수가 한자리에 모여 3인 1조로 시간을 재는 방식으로 극한에 도전하며 우호대결을 펼쳤다. 경기결과 자유영 남자 갑조에서는 로씨야 둬쿠챠예프씨가, 을조에
훈춘에 연변대학이 입주한다. 연변대학과 훈춘시발전사에서 리정표적 의의를 띠는 이 중대사는 우리 성에서 선참 우수한 교육자원과 지방자원이 결부되는 성공적인 사례로 대학교육 합작운영의 새 모식을 열어제끼면서 각별한 주목을 받고있다. 5일, 훈춘시인민정부와 연변대학은 연변대학 훈춘캠퍼스 건설에 관련해 협의를 체결, 이로써 연변대학의 훈춘 입주가 본격 시작됐다. 연변대학 훈춘캠퍼스 설립은 2016년 12월 20일 길림성인민정부의 정식 비준을 받았다. 이에 앞서 훈춘시인민정부와 연변대학은 2010년부터 훈춘시에 새로운 캠퍼스를 건설할데 대해 적극적으로 탐색하고 전단계의 운영에 대해 론증을 거쳤으며 최종 훈춘시인민정부가 학교운영에 필요되는 각 류형의 기초시설 건설을 책임지기로 하고 연변대학에 훈춘입주운영을 요청했으며 쌍방이 함께 ‘연변대학 훈춘캠퍼스’ 건설을 준비하기로 했다. 훈춘캠퍼스는 연변대학의 구성부분으로 연변대학과 ‘대등한 기준, 동등한 수준’을 이루면서 함께 선도구개발개방과 동북진흥발전에 필요한 실용형인재를 양성해내게 된다. 1949년에 창립된 연변대학은 중국공산당이 최초로 소수민족지역에 일떠세운 대학교중의 하나로 국가 ‘211프로젝트’ 중점건설대학이며 서부개
아주 작은 가시 /유하 시를 탓한 적이 있지요 내가 무능한 인간이라는 생각이 들 때면 시는 몸에 박힌 가시였어요 너무 작아서 뽑아낼 수도 아픈 까닭에 그냥 잊고 살 수도 없는 그러나 돌이켜보건대 내 삶의 하느님은 오직 그 작은 가시 속에서만 그의 온전한 힘을 보여주었습니다 -시집 ‘천일馬화’ / 문학과지성사·2000 사랑할수록 애증의 감정이 쌓인다. 깊어질수록 외면하고 싶은 유혹으로 갈등을 겪기도 한다. 고로 시는 끝이 없다. 끝이 보이지 않아서 영원히 함께 할 수밖에 없다. 그 치명적 매혹의 늪에 빠져 허우적거릴지언정 빠져 나올 생각이 없음이 솔직한 고백이다. 그래서 시인은 시는 몸에 박힌 가시라고 말한다. 영혼 깊숙이 박혀 짜릿한 쾌감이 올 때마다 그에 합당한 힘을 보여주고 있음이다. 허나 피할 수 없으면 즐기라는 말이 있듯이 어느새 나도 모르는 사이에 이 고통을 나누며 즐기고 있는 것은 아닐까. 이런 사랑스럽지만 채찍과도 같은 가시와의 동거 없이 어떻게 한 줄의 시가 탄생되겠는가. 그 작은 가시 속에서만 비로소 시가 오는 것을. /정운희 시인
시인 윤동주(尹東柱)의 아버지는 ‘해’ ‘달’ ‘별’을 유난히 좋아했다. 그래서 자식들 아명도 이와 연관해 지어 주었다. 첫째인 동주에게는 ‘해처럼 빛나라’는 뜻의 해환(海煥), 둘째 일주에게는 달환(達煥), 그 밑에 갓난애 때 죽은 동생에게는 별환이라고. 윤 시인은 고향인 북간도 용정 ‘명동촌’에서 이런 아명을 갖고 28년 생애의 절반인 14년을 보내며 자연을 벗 삼아 시인으로서의 감수성을 키워나갔다. “별하나에 추억과 별하나에 사랑과 별하나에 쓸쓸함…”이라고 서정을 노래한 시집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는 이미 그때 잉태되고 있었던 것이다. 윤동주는 독립투쟁 일선에서 장렬하게 산화한 투사는 아니다. 남긴 작품도 많지 않다. 그런데도 ‘가장 좋아하는 시인’ 조사에서 1위에 자주 오른다. 서거 72년이 지났지만 아직도 ‘순결한 영혼의 소유자’라는 평도 듣는다. 끊임없이 윤리적인 자기완성을 꿈꾸며 내부에 도사린 한 점의 욕됨조차 용납하지 않으려 하던 청년 시인의 정신이 많은 사람들의 마음을 사로잡은 까닭이다. 올해는, “죽는 날까지 하늘을 우러러 / 한 점 부끄러움이 없기를 / 잎새에 이는 바람에도 괴로워했”던 시인 윤동주의 탄신 100주년이 되는 해다. 따라
자크 루이 다비드의 1800년 작 ‘생 베르나르에서 알프스 산맥을 넘는 나폴레옹’은 한때 이웃집이나 동네 미용실에 걸려있는 달력에서 자주 보곤 했던 그림이라고 한다. 알프스 산등성이 위에서 힘차게 발돋움 하고 있는 말 위에서 나폴레옹은 카리스마 넘치고 기세등등한 포즈를 취하고 있다. 시대가 혼란스러울 때마다 사람들은 그림 속 나폴레옹을 바라보며 이처럼 영리하고 통치력 있는 지도자가 혜성처럼 나타나서 지금의 궁핍함과 어려움을 한방에 날려주기를 간절히 바랐을 것이다. 실제로 나폴레옹은 프랑스 대혁명 이후 피의 혈투와 계층 간의 반목이 끊이지 않았던 정국에 일시적으로나마 질서를 가져다 준 인물이었다. 전장으로부터 들리는 승전보는 오랜 내전으로 인해 지치고 불안해진 민심에 자부심과 안도감을 주었다. 그는 통령으로 취임하자마자 상공업을 진흥시켰고, 그동안 만성적자를 면치 못했던 재정은 건전해졌다. 전쟁을 통해 얻어온 배상금 역시 재정을 뒷받침했으며, 재정이 안정되자 통화 역시 안정되었다. 프랑스 전역에는 운하, 항만, 도로, 관개시설이 지어졌고, 전에 없던 사회적 안정과 번영으로 인해 인구는 증가했다. ‘생 베르나르에서 알프스 산맥을
평소 등산으로 건강에 자신있던 노인이 허리통증으로 내원했다. 이전에도 활동 시 허리가 아프고 다리가 저렸지만 심하지 않아 휴식을 취하면 괜찮아져서 나이가 들면 힘이 없어 생기는 일로 알았다고 한다. 그때마다 가까운 의원을 들려 물리치료와 통증주사를 맞았지만 통증도 심해지고 오래 걷거나 오래 서있을 때면 어김없이 통증은 참을 수 없어 큰 병원을 찾아왔다고 한다. 척추관협착증은 허리디스크와 더불어 대표적인 척추 질환으로 실제로 척추진료를 할 때 허리디스크와 함께 척추관협착증 사례를 많이 접할 수 있다. 퇴행성 척추질환인 척추관협착증은 허리를 펼 때, 활동할 때 통증이 나타난다는 특징이 있다. 걷다가 앉을 경우 통증이 잠시 잦아들기도 하나 다시 걸으면 통증이 재발돼 한번에 먼 길을 걸을 수 없게 된다. 통증으로 제대로 걸을 수 없을 뿐 아니라 엉치, 허벅지, 종아리, 발 끝 부분이 저리거나 다리가 빠지는 듯한 통증을 느끼기도 한다. 퇴행성 질환이기 때문에 50대 중년층에게서 자주 발병하지만 최근에는 30·40대 젊은 층에서도 발병 사례가 나타나고 있다. 협착증은 척추의 뼈가 퇴행성 변화를 겪으며 웃자란 뼈나 디스크의 퇴행성 변화로 발생되는 것이 일반적
11일 오전 양주시의 한 고물상에서 불이 나 소방대원들이 진화작업을 하고 있다. /양주소방서 제공
유정복 인천시장이 11일 쉐라톤인천호텔에서 열린 ‘제368회 새얼아침대화’에서 2017 시정방향에 대해 연설하고 있다. /인천시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