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경제사회의 어려움 속에 젊은이들이 취업고통에 시달리고 있다. 적은 일자리에 취업 희망자들이 몰려들어 경쟁이 심각하다. 100대 1이 넘는 공무원과 대기업의 경쟁률은 취업자들에게는 엄청난 부담이 된다. 경영자는 치열한 국제경쟁력 강화를 위해 긍정적인 노동조건을 우선시한다. 임금, 노동자의식, 기업지원정책 등이 원만할 때에 국내외 기업가들이 투자하게 된다. 지나친 노동파업과 임금인상 등으로 인해 노사갈등이 심각한 우리의 현실은 기업가들이 투자를 동남아, 남미, 아프리카 등지로 돌리고 있다. 기업구조 변화와 고학력에 따른 적응력 부족과 사회 환경의 부적응도 문제다. 33만명의 청년실업자들은 오늘도 일자리를 찾아 헤매고 있다. 정부는 고용률 목표달성을 위해 11조원을 투여했지만 청년 고용률은 39.7%에 불과하다. 새로운 일자리보다 사라지는 일자리가 많은 빠른 사회변동은 고용시간조정과 가정근무 등 다양한 일터 확장을 요구하고 있다. 날로 늘어나는 고령자들이 젊은이들과 취업경쟁을 벌이고 있음도 커다란 부담이다. 대학을 졸업한 젊은이들이 공무원을 비롯한 대기업과 공기업, 금융권 등 비교적 안정적이고 높은 연봉의 일자리 선호에서 탈피해 개성과 적성에 맞는 분야의
밤새 눈이 내린 날 아침에 보이는 풍경은 말 그대로 한 폭의 그림 같다. 욕심껏 눈을 지고 어깨가 축 늘어진 소나무로 가득한 산은 일 년 내내 입는 검푸른 옷을 버리고 모처럼 하얀 옷으로 갈아입는다. 좁다란 들길에 강아지풀이나 쑥부쟁이 같은 이미 말라 죽은 잡초의 초라한 몰골에 이르기까지 눈꽃이 핀다. 선인들도 눈을 아름다운 꽃이라 여겨 육출화(六出花)라 불렀다고 한다. 예전에 숫눈을 밟고 걸을 때마다 뽀드득 거리는 소리가 신기해서 몇 번을 멈춰 서서 유심히 보기도 하고 일부러 발에 힘을 주고 꼭 눌러 밟기도 했다. 친구들과 어울려 손가락 끝으로 바둑이 발자국을 만들고 울음소리를 흉내 내기도 하고, 두 주먹을 쥐고 소발자국을 만들면 소처럼 네 발로 걸어 다니는 소처럼 걷는 아이들도 있었다. 그도 싫증이 나면 발꿈치를 꼭 붙이고 깡충깡충 뛰면 파란 바탕에 흰색으로 그린 유엔 깃발에서 본 적이 있는 월계수 잎이 생겨나기도 하고 한쪽 발로 동그랗게 발자국을 새기면 국화꽃이 탐스럽게 피었다. 그 자리에 벌러덩 드러누워 몸의 윤곽이 새겨지면 눈 사진 찍었다고 좋아하던 시절이 있었다. 눈싸움을 하다가 신발이고 옷이고 눈 투성이가 되어 뭉친 눈을 한 덩이씩 먹으면 왜 그
▲한호성(분당서울대병원 암뇌신경진료부원장)씨 부친상·유경하(이대목동병원 소아청소년과 교수)씨 시부상·한윤석(사법연수원생)씨 조부상= 25일 오전 4시40분, 분당서울대병원 장례식장 3호실, 발인 28일 오전 8시, 장지 용인 평온의 숲 ☎031-787-1503 삼가 명복을 빕니다
▲홍순명·정명옥씨 장남 현표군과 김선명(대한전문건설협회 경기도회 기획관리실장)·구복님씨 장녀 혜진양= 2월8일(토) 오후 1시, 수원 호텔캐슬 영빈관 아모르홀 ☎031-211-6666
〈남양주시〉 ▲정보통신과장 최삼휘 ▲북부도서관장 조성기 ▲산림녹지과장 박주연 ▲경기도 전출 이인재·엄태군 <광주시> ◇5급 전보 ▲안전총괄과장 김진욱 ▲보건행정과장 정철화 〈오산시〉 ◇4급 승진 ▲복지교육국장 김석겸 ◇4급 전보 ▲자치행정국장 서민택 ◇5급 승진 ▲환경사업소 상수과장 직무대리 김경수 ▲환경사업소 생태하천과장 직무대리 최연동 ◇5급 전보 ▲세무과장 최종식 ▲복지정책과장 이관구 <협성대> ▲대외협력과장 이동욱 ▲총무과장 임성수 ▲재무과장 배상범 ▲도서관 운영과장 겸 지원과장 박현영
수업시간, 학생들에게 아버지가 가장 쓸쓸해 보일 때가 언제였는지 물어 본 적이 있다. 그 때 한 학생이 “늦은 저녁 퇴근하셔서 혼자 식사하시는 아버지의 뒷모습이 너무 쓸쓸해 보여서 아버지와 마주앉아 이야기를 나눈 적이 있어요.”라고 대답했다. 그 말을 듣는 순간 아버지의 뒷모습을 볼 줄 아는 마음 깊은 아들, 딸이 있었구나라는 생각에 가슴 한 자락이 찌릿해졌다. 늘 그 자리 지키며 가정을 꾸려나가는 내 아버지의 소중함을 나는 놓치고 살았었다. 가정의 울타리에 항상 파수꾼처럼 지키고 있는 사람은 아버지여야 한다는 듯 의무감으로 무장된 아버지의 앞모습만 바라볼 줄 알았던 그 철없음이 한없이 부끄러웠던 순간이 있다. 10년 전 오랜 지병으로 아버지 세상을 떠나시던 날, 허겁지겁 병실에 남은 짐 정리를 하다 병상 밑에 우두커니 웅크리고 있던 아버지의 낡은 구두를 발견했다. 마치 삶에 지친, 이제 그만 그 부담을 놓아버리고 싶어 하는 아버지의 마음처럼 지친 구두 한 켤레. 그 구두 삐뚜름하게 낡은 밑창이 비수처럼 꽂혀왔을 때 비로소 깨닫게 되었다. 아버지께서도 아버지이기 전에 나약한 한 사람의 인간이었음을. 미처 깨닫지 못한 지난날의 후회가 눈물
축구선수 이영표에게는 몇가지 별명이 있다. 초롱초롱 반짝이는 눈을 묘사해 흔히 사람들은 ‘초롱이’라는 별명을 붙여줬고, 빠른 스피드로 인해 ‘바람’이라는 별칭을 얻기도 했다. 이영표는 안양초, 안양중, 안양공고를 졸업했다. 안양은 이영표가 축구의 기초를 닦은 텃밭이다. 이영표는 2000년 드래프트 1순위로 안양 LG 치타스에 입단, 프로로 데뷔해 그 해 K리그 우승과 2001년 K리그 준우승, 2002년 아시안 클럽 챔피언십 준우승에 큰 공헌을 했다. 2002년 FIFA 월드컵 이후 월드컵에서 감독을 맡았던 거스 히딩크를 따라 2003년 1월 네덜란드 에레디비시로 진출해 PSV 에인트호번에 6개월 임대된 후 완전 이적했다. 에인트호번에서 초반부터 좋은 활약을 펼쳤고 특유의 성실함까지 더해져 유럽에서도 인정받는 풀백으로 성장했다. 특히 2004∼2005 시즌 UEFA 챔피언스리그에서 대한민국 선수 최초로 4강에 진출했고 그 과정에서 큰 공헌을 했다. 이후 유럽 빅리그의 러브콜이 이어졌고 결국 2005년 8월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의 토트넘 홋스퍼 FC로 이적했다. 이적 후 두 시즌 동안 팀내 붙박이 주전으로 활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