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업시간, 학생들에게 아버지가 가장 쓸쓸해 보일 때가 언제였는지 물어 본 적이 있다. 그 때 한 학생이
“늦은 저녁 퇴근하셔서 혼자 식사하시는 아버지의 뒷모습이 너무 쓸쓸해 보여서 아버지와 마주앉아 이야기를 나눈 적이 있어요.”라고 대답했다.
그 말을 듣는 순간 아버지의 뒷모습을 볼 줄 아는 마음 깊은 아들, 딸이 있었구나라는 생각에 가슴 한 자락이 찌릿해졌다. 늘 그 자리 지키며 가정을 꾸려나가는 내 아버지의 소중함을 나는 놓치고 살았었다. 가정의 울타리에 항상 파수꾼처럼 지키고 있는 사람은 아버지여야 한다는 듯 의무감으로 무장된 아버지의 앞모습만 바라볼 줄 알았던 그 철없음이 한없이 부끄러웠던 순간이 있다.
10년 전 오랜 지병으로 아버지 세상을 떠나시던 날, 허겁지겁 병실에 남은 짐 정리를 하다 병상 밑에 우두커니 웅크리고 있던 아버지의 낡은 구두를 발견했다. 마치 삶에 지친, 이제 그만 그 부담을 놓아버리고 싶어 하는 아버지의 마음처럼 지친 구두 한 켤레. 그 구두 삐뚜름하게 낡은 밑창이 비수처럼 꽂혀왔을 때 비로소 깨닫게 되었다. 아버지께서도 아버지이기 전에 나약한 한 사람의 인간이었음을. 미처 깨닫지 못한 지난날의 후회가 눈물로 쏟아지는 순간이었다. 한 번도 아버지의 뒷모습을 챙겨드리지 못한 못난 자식들로 인해 어쩌면 아버지께서는 돌아가시는 그 순간까지 마치 숙명처럼 짊어지게 된 아버지라는 그 무거운 편견을 깨지 못하고, 한 번쯤은 간절히 벗어나고 싶었을 아버지라는 그 굴레에 갇힌 채 살아가신 게 아닐까.
책임져야 한다. 벌어야 한다. 먹여 살려야 한다. 누구보다 더 강해져야 한다는 중압감으로 길들여진 우리들의 아버지는 심지어 남자는 평생에 세 번만 울어야한다는 얼토당토않은 굴레까지 뒤집어써야 했으니. 세상이 바뀌어도 쉽게 벗어던질 수 없는 그 편견으로 인해 오늘도 군말 없이 주렁주렁 지친 피로를 업은 채 세상의 아버지들은 매일 새벽 문을 열고 하루를 시작하는 것이다. 가장은 그래야 한다니, 내 아버지가 그러했고 내 할아버지가 그러했듯이 그것이 가장의 할 일이라니. 물론 21세기의 급변하는 세상과 더불어 가치관도 많이 변해가고 있고 양성평등 운운하며 부담도 양분되는 듯 보이지만 가장에 대한 그 고정관념이 깨지기란 참으로 더딘 것 같다.
이 아침, 뿌옇게 가려진 안경너머로 또 하루를 시작하는 사람들이 보인다. 이른 새벽 첫차로 출근하는 사람들. 급하게 오르느라 좌석을 구하지 못하였는지 카페 칸 설렁한 기차 바닥에 양쪽으로 사열하듯 앉아 쪽잠을 청하고 있는 그들의 사이. 지그시 감은 눈, 어느 꿈속을 역류하는지 화장실 쪽으로 등을 기댄 남자는 눈 밑이 연신 움찔거린다. 늙수그레한 그 남자 옆으로 구두 한 켤레 나란히 벗어져 있어 마치 그 옛날 내 아버지 병상 밑 풀죽은 그 구두를 보는 듯하다. 저 구두 소임을 다해 세상을 딛고 다니듯 묵묵히 아버지의 길을 걷고 있는 숱한 세상의 아버지들에게 나는 박수를 보내고 싶다.
날마다 목이 휘청거리게 흔들어대는 사회의 냉정한 핍박 속에서도 꿋꿋하게 이겨내고 있는 그들로 인해 또 여린 싹들이 꿈을 꾸고 그 꿈 활짝 펼쳐나갈 수 있음을 나는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