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기 행정부는 제6공화국 정부들 중 정책의 변동성(volatility)이 가장 높은 정부가 될 것이다. 세 가지 요인 때문이다. 첫째, 여대야소 정국. 차기 정부는 여대야소 정부로 국정을 시작할 가능성이 높다. 여소야대 정부보다 여대야소 정부에서 비토 플레이어(veto player)의 숫자가 더 적다. 대통령의 정책 추진에 대한 제도적 저항이 약해진다. 정부 조직의 전면적 변화도 주로 여대야소 정부에서 실현되어 왔다. 둘째, 트럼프 효과. 트럼프 2기 행정부의 행태가 초래하는 정치심리학적 효과가 있다. 트럼프 2기 행정부는 2차 대전 당시 독일의 전격전(Blitzkrieg)이 떠오를 정도로 신속하고도 전방위적으로 행정입법을 쏟아내고 있다. 매일같이 “이슈로 이슈를 덮고” 있다. 트럼프 정부가 백악관에 신앙위원회(The White House “Faith” Office)를 설치했다는, 정교분리의 관점에서 경악할 뉴스는 주목조차 받지 못하고 있다. 일국의 대통령이 정상회담에서 모욕을 당하고, 멕시코만이 아메리카만으로 개명을 당하고, 그린란드와 파나마가 합병을 당하며, 파리기후협약이 무시당하고, 이제는 세상 모든 나라가 관세 폭격을 당하는 마당이다. 트럼프 행정부의
탄핵 선고를 앞두고 선거관리위원회나 헌법재판관들 등 헌법기관을 향한 비방과 중상이 무시하기 어려운 수준으로 심각해지고 있다. 선거관리위원회 구성원들이나 헌법재판관들이 중국인이거나 중국의 조종을 받고 있다는 주장에는 헌법기관에 대한 시민들의 신뢰를 무너뜨리겠다는 의도가 노골적으로 드러난다. 독일 형법의 입법자가 정치인에 대한 명예훼손을 가중처벌하도록 규정한 동기가 이해가 간다(StGB §188). 나치당이 바이마르 공화국의 공적 기관과 공적 인물들에 대한 “공격”(Der Angriff)을 서슴지 않으면서 무서운 기세로 급성장하는 것을 방치했던 역사에 대한 후회와 반성의 결과일 것이다. 이러한 입법은 공적 존재자들에 대한 공격적 표현을 특별히 가중해서 제재하도록 제도를 만들어야 자유민주주의를 수호할 수 있다는 생각을 전제하고 있다. 미국 연방대법원의 수정헌법 제1조에 대한 해석론은 정반대의 생각을 실현해 왔다. 워렌 코트(Warren Court)는 뉴욕타임스 대 설리반(Newyork Times v. Sullivan) 사건 판결을 선고하면서, 공직자에 대한 명예훼손은 원고의 현실적 악의(actual malice)가 증명되어야 책임을 물을 수 있다고 판단했다. 이어
도널드 트럼프 2기 행정부는 백악관 기자실을 유튜버들과 인플루언서들에게 개방했다. 백악관 브리핑 룸이 이제는 ‘레거시 미디어’ 뿐만 아니라 ‘뉴 미디어’를 위한 자리가 될 것이라고 했다. 갤럽의 2024년 조사에 의하면 ‘매스 미디어’를 신뢰한다는 답변은 30% 대로 떨어졌고, 특히 공화당 지지자들과 청년층의 신뢰도 감소가 뚜렷하다. 우리나라도 사정은 마찬가지다. 노학자들은 한 때 지금의 매스 미디어도 뉴 미디어라고 분류했다. 이제 매스 미디어는 레거시 미디어가 되었고, 더 ‘뉴’한 뉴 미디어와 경쟁해야 한다. 레거시 미디어는 어떻게 해야 할까? 차별화하거나 죽거나(differentiate or die). 브랜딩에 관한 책을 읽다가 알게 된 경구다. 업계에서는 이미 유명한 경구였다고 한다. 레거시 미디어도 차별화해야 한다. 뉴 미디어를 모방하고, 뉴 미디어와 같은 차원에서 더 높은 스코어를 내려고 하기보다, 뉴 미디어가 안 하는 것을 해야 하고, 뉴 미디어가 못 하는 것을 해야 한다. ‘동일 서비스 동일 규제’라는 표어로부터 한 번도 감동을 받은 적이 없었다. ‘동일 서비스 동일 규제’라는 컨셉은 의심스럽다. 정말 동일한 서비스를 제공하면서, 규제마저 동일하
테슬라와 스페이스X 그리고 엑스(X, 구 트위터)의 오너인 일론 머스크는 독일 정치에도 관심이 각별해서, ‘독일을 위한 대안’(AfD)의 당대표인 알리스 바이델(Alice Weidel)을 공개 지지하며 선거운동을 하고 있다. 머스크는 AfD가 독일 정치의 “마지막 희망”이라는 내용의 글을 독일 언론 벨트(Welt)에 기고했다. 지난 9일에는 바이델과의 75분의 대담을 엑스에서 라이브 스트리밍으로 방송했다. 해당 영상이 나간 이후 AfD의 지지율이 치솟아, 기민련-기사련(CDU-CSU) 연합에 이어 2위를 차지했고, 집권당인 사민당(SPD)을 3위로 밀어냈다고 한다. 머스크-바이델 대담 영상에서 두 사람은 독일의 에너지 정책, 교육 정책, 관료제, 이스라엘-팔레스타인 문제 등 여러 쟁점에서 견해가 일치했다. 특히, 머스크와 바이델은 유럽연합(EU)의 디지털서비스법(Digital Service Act, DSA)에 대한 반감을 공유했다. 머스크와 바이델 둘 다 EU의 DSA를 표현의 자유에 대한 검열(censorship)로 규정했다. EU의 DSA가 검열이라면, 느린 검열이다. 머스크와 바이델의 대담은 라이브 방송을 동시 시청한 200만 명의 이용자들에게 즉각 영
우리 헌법은 대통령이 전시·사변 또는 이에 준하는 국가비상사태에 있어서 병력으로써 군사상의 필요에 응하거나 공공의 안녕질서를 유지할 필요가 있을 때에는 계엄을 선포할 수 있다고 정하고 있다(제77조 제1항). 비상계엄이 선포되면 영장제도나 언론·출판·집회·결사의 자유에 관하여도 특별한 조치를 할 수 있다(제3항). 계엄을 해제하려면 국회가 재적의원 과반수의 찬성이 필요하다(제5항). 즉 대통령이 국가비상사태인지 아닌지를 판단하고, 비상계엄을 선포하면 심지어 언론의 자유와 같은 기본권에 대해서도 “특별한 조치”를 할 수 있고, 국회 재적의원의 과반수가 모여야 겨우 계엄을 해제할 수 있다. 다른 나라 헌법도 이런가? 독일의 기본법에서는 방위상의 긴급사태(Verteidigungsfall)에 대해 정하고 있다. 그러나 방위상의 긴급사태는 ‘연방영역이 무력으로 공격받거나 또는 그와 같은 공격의 직접적인 위험에 직면’한 경우로 한정되고, 방위상의 긴급사태의 결정 자체를 의회가 한다. 연방하원의 재적의원 과반수 찬성을 포함하는 출석의원 2/3 이상의 득표나(독일 기본법 제115a조 제1항), 연방하원의원과 연방상원의원으로 구성된 합동위원회의 2/3 이상의 득표가 있어야
해석자는 자신의 해석이 옳다는 점에 대하여 독단에 가까울 정도의 확신이 있어야 성공하는 듯하다. 마르틴 루터는 독단에 가까운 확신을 가진 해석자였다. 그리스도는 체포되기 전날 밤 떡을 떼어 가리키며 ‘이것은 내 몸이다’(Hoc est enim corpus meum)라고 했다. 그리스도는 분명히 ‘이다’(est)라고 했다. 그러니 성만찬의 떡은 예수의 몸‘이다’. 성만찬의 떡은 떡이면서도 동시에 예수의 몸이다(공재설). 이것이 마르틴 루터의 해석이었다. 울리히 츠빙글리의 해석은 달랐다. 그리스도는 같은 날 밤 이런 말도 했다. ‘이것을 행하여 나를 기념하라’. 그리스도는 분명히 ‘기념’하라고 했다. 성만찬의 떡은 단지 기념이고 상징일 뿐이다(기념설). 복음서 텍스트의 몇 문장에 대한 해석의 차이 때문에 독일과 스위스의 종교개혁 진영은 분열되었다. 독일의 제후 헤센 방백 필리프 1세는 비텐베르크의 루터와 취리히의 츠빙글리를 중재하고자 했다. 유럽의 구교 세력에 맞서기 위해서는 개혁주의 진영이 단일 대오를 이루어도 세력이 모자란 형편이었다. 필리프 1세의 중재로 루터파와 츠빙글리파는 마르부르크에서 회동을 했다. 그러나 회담은 중간 지점을 찾지 못하고 결렬되었다.
로라 베이츠의 ‘인셀 테러’(위즈덤하우스, 2023)에서 소개된 미국 인셀들의 혐오표현의 사례들은 충격적이다. 일례로, '백인 샤리아'라는 표현이 대안 우파 웹사이트를 거의 장악하고 있는데, 백인 남성이 여성을 노예로 만드는 이슬람 원리주의식 주장을 자기식대로 차용해야 한다는 주장이다(42면). '백인 샤리아'는 그나마 “온건한" 편이고 더욱 "과격한" 표현들이 많다. 독서를 마치면, 표현의 자유를 보호하기 위해 혐오표현을 형사처벌해서는 안 된다는 주장이 한가하게 들린다. 그런데 ‘인셀 테러’의 후반부에서 저자는 ‘매력자본’(민음사, 2013)의 저자 캐서린 하킴 박사조차도 "선정적이고 매우 여성혐오적인 주장"의 주범으로 단언한다. 하킴 박사의 논증 중 상당수가 오류이거나 편향에 기초했을 수 있고(반박되는 것이 사회과학의 숙명이다), 결론 중 상당수가 여성혐오적일 수도 있다. 학술적 권위와 형식을 갖춘 혐오표현의 해악이 더 심각하다는 문제의식에도 공감이 간다. 그럼에도 바로 이 때문에 ‘여성혐오'나 ‘혐오’가 곧바로 범죄의 구성요건요소가 되기에 부적당하다. '백인 샤리아'에도 적용되고 하킴 박사의 학술적 오류에도 적용되는 광범위한 개념이기 때문이다. 혐오표현
타게스샤우(Tagesschau)는 독일의 공영방송 ARD의 메인 뉴스 프로그램이다. 탸게스샤우는 올해부터 ‘더 쉬운 말로 하는 타게스샤우’(Tagesschau in Einfacher Sprache)라는 방송뉴스 서비스를 제공하기 시작했다. 타게스샤우의 웹사이트에 가면 ‘더 쉬운 말로 하는 타게스샤우’를 소개하는 글이 있다. 소개하는글도 하단에 더 쉬운 말로 다시 쓰여 있다. “많은 사람들이 학습을 어려워합니다. 많은 사람들이 그렇게 독일어를 많이 말하지 않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듣기를 잘 못합니다. 이 새로운 방송은 모두를 위한 것입니다.” ‘더 쉬운 말로 하는 타게스샤우’는 1-2일 간격으로 1개 정도의 영상이 올라온다. 분량은 7분 정도 다. 뉴스 개수는 3~4꼭지 정도다. 제목은 짧다. “최저임금: 더 많은 돈에 대한 논의”, “아시아의 태풍”, “패럴림픽: 대단한 폐막식”. 내용도 짧다. 짧기만 한 것이 아니라 아주 기초적인 단어의 뜻까지 설명한다. 기후변화에 관한 보도는 ‘기후’가 무엇인지 설명한다. “오랜 기간 동안 날씨가 어떻게 나타나는지를 가리켜 사람들은 ‘기후’라고 합니다” 시청자의 어휘력과 청해력이 A2에서 B1 레벨 수준이라고, 기초적인
주권자는 예외상태를 결정하는 자다(„Souverän ist, wer über den Ausnahmezustand entscheidet.“). 나치스의 계관 법학자 칼 슈미트(Carl Schmitt)의 말이다. 바이마르 공화국 헌법에 대한 해석론을 배경으로 나온 말이지만, 지난 한 세기 헌법학을 넘어 다양한 분야에서 소비되다 보니, 이제는 아무나 갖다 쓰며 아무 말이나 하는데, 이 글도 그런 글 중 하나다. 주권자가 예외상태를 결정하는 자라면, 주권자가 되고 싶은 주권자 지망생들이나 주권자 호소인들도 예외상태를 결정하는 자가 되고 싶을 것이다. 지금이야말로 예외상태라고, 예외상태에 필요한 예외적인 조치를 도입해야 한다고 선언하고 싶을 것이다. ‘민생회복지원금 지급을 위한 특별조치안’, 일명 “25만 원 지원법”에 대한 재의요구안이 국무회의를 통과했다. “25만 원 지원법”은 법률의 전형과는 거리가 멀다. 헌법에 반하는 처분적 법률이고, 권력분립의 원리를 해한다는 비판이 있다. 처분적 법률이 불가피한 상황이 없다고는 할 수 없다. 그러나 처분적 법률이 예외가 아닌 정상이라고 할 수도 없다. 민주당은, 지금이 민생회복을 위한 예외적인 조치가 필요한 ‘예외상태’인데
극우화, 난민 유입, 우크라이나-러시아 전쟁 등으로 정신없는 와중에도 유럽연합 의회는 2024년 세계 최초의 포괄적 인공지능 규제법인 ‘유럽연합 인공지능법’(EU Artificial Intelligence Act)을 가결해 2026년부터 시행할 예정이다. 건강 논란에 시달리는 노구의 바이든 대통령조차 2023년 ‘AI 행정명령’을 발령해 안전하고 신뢰할 수 있는 인공지능의 이용과 발전을 위한 정책과 원칙의 기초를 놓았다. 우리나라 제22대 국회의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에는 총 6개의 AI 기본법안들이 계류 상태에 있다. 안철수 의원 등 12인이 발의한 ‘인공지능 산업 육성 및 신뢰 확보에 관한 법률안’, 정점식 의원 등 108인이 발의한 인공지능 발전과 신뢰 기반 조성에 관한 법률안, 민형배 의원 등 13인이 발의한 ‘인공지능기술 기본법안’, 권칠승 의원 등 15인이 발의한 ‘인공지능개발 및 이용 등에 관한 법률안’ 등이 그것이다. 현재 발의된 인공지능 법안들의 내용이 타당하다거나 충분하다는 것은 아니다. 내용이 뭐라도 좋으니 일단 기본법은 통과되어 있어야 고쳐나갈 수라도 있지 않느냐는 생각도 단정하지는 못하겠다. 그러나 여야가 인공지능 법 정책을 두고 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