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기후변화는 기후위기를 넘어 기후재앙의 단계에 접어들었다. 기후재앙의 현실과 그에 따른 책임을 인정하고 싶지 않은 이들에 의한 현실 부정이 격렬해질 수 있다. 환경 이슈에 관한 가짜뉴스는 이미 많지만 더욱 많아질 것이다. 파리 기후협약을 탈퇴한 미국 대통령부터 언론사들을 높은 금액의 소송으로 위협하는데 거침이 없다. 앞으로 법원이 환경 이슈에 관한 뉴스의 진실과 허위를 판별해 시시비비를 가려 달라고 요청받는 일도 늘어날 것으로 전망된다.
법원에서의 분쟁은 사인과 사인의 분쟁의 형태를 취하거나 공권력과 사인 사이의 대립의 형태를 취하는 일이 많다. 그러나 환경 문제에 관한 뉴스를 둘러싼 분쟁은 사실 다수의 공익과 또 다른 다수의 공익이 충돌하는 성격을 갖는다. 대안적 사실들 중 어느 것이 진실로 선택되어 선언되느냐에 따라 당사자의 승패뿐만 아니라 다수의 이해득실이 변화할 수 있다. 개별 노동자와 개별 사용자가 부딪히는 노동 행정 분쟁도 단순히 사인 간 분쟁이 아니라 노동계와 경영계의 분쟁이 배후에 있는 것처럼, 환경 이슈에 관한 법적 분쟁 역시 단순히 개인 간의 개별적 분쟁 같이 보이고 그렇게 취급되지만 그 비하인드에는 다수의 이익과 또 다른 다수의 이익의 충돌이 있다.
문제는 법조의 사실인정 역량의 한계다. 법원이 단순히 사인의 분쟁을 해결해 주고 끝이 아니라 모두가 알기 원하는 진실을 정해 줄 것을 요구받을 때 이 한계가 더욱 부각된다. ("사실을 말하면 법을 주리라"라고 하는 유명한 법언이 있다. 그러나 여기서 법원은 사실을 말하면 그것이 진실인지 아닌 지도 알려주어야 한다.)
이러한 한계를 만드는 원인 중 하나는 법조의 다수가 "문과"고 문과는 과학을 잘 몰라 과학 전문가에게 의존해야 하고 자연환경을 잘 몰라 환경 전문가에게 의존해야 한다는 점이다. 그러나 더 큰 원인은 이런 유형의 분쟁들이 공익에 대한 영향력과 파급에도 불구하고 사인의 권리 문제로만 처리되고 작은 사건으로 취급되어 관계자들이 공을 들이기 어렵게 된다는 데 있다.
단순한 사실이 아니라 과학적 사실, 자연환경에 관한 과학적 사실의 진위가 쟁점이 되는 분쟁의 경우, 그 진위의 판단이 갖는 공익적 영향력과 파급을 고려하여, 법률가들에게 더 큰 동기부여를 줄 방법은 없을까? 어느 연예인이 다른 연예인과 미성년자 시절 연애를 했는지 아니면 성년이 되고 나서 연애를 했는지 같은 가십성 사실에 관한 진위 판단에는 수 천 만 원에서 수 억 원도 오고 갈 수 있는 반면, 시민들이 섭취하는 식재료나 식수의 유해와 직결될 수 있는 자연환경에 관한 과학적 사실에 관한 진위판단은 수 백 수 천 만 원 짜리 이슈가 되어 당사자들도 대리인들도 돈과 시간이 아까워 의욕을 잃고 드러눕게 되는 상황에는 개선이 필요해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