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다 보면 유난히 어려운 사람이 있다. 좋게 생각하려고 애쓰고, 이해하려고 할수록 더 멀게 느껴지는 사람. 왜 나는 저 사람을 이해하지 못하는 걸까. 생각해 보면 그 또한 나처럼 자신만의 시간을 살아온 사람이다. 내가 알지 못하는 사정과 기억과 상처가 있을 것이다. 살면서 숱한 사람들을 만나 여러 가지 일을 겪었다. 물론 성격이나 하는 일에 따라 만나고 헤어지는 횟수는 다르겠지만 살아가며 만나는 인연의 기본값은 있을 것이다. 그 가운데 애쓰지 않아도 나를 깊이 이해해 주는 사람도 있었고, 마음을 다해도 상처를 주는 사람도 있었다. 함께 한 시간이 많다고 해서 이해가 깊어지는 것도 아니었다. 나이가 들면 사람을 이해하는 일이 쉬워질 줄 알았다. 다양한 사람을 만나고 다양한 일을 겪었으니 웬만한 일은 다 이해하게 될 줄 알았다. 그런데 사람을 이해하는 일은 나이를 먹는다고 저절로 얻어지는 능력이 아니었다. 어떤 사람을 만나고 돌아오면 한동안 마음이 가라앉지 않을 때가 있다. 더는 애쓰고 싶지 않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물론 나와 결이 맞지 않는 사람일 수도 있고, 서로의 욕망이 다름에서 오는 문제도 있을 것이다. 그렇게 이유를 찾아보아도 마음이 풀리지 않을 때
밀린 일을 하느라 정신없이 바쁜 오후였다. 휴대폰이 울렸다. 전화 통화를 할 마음의 여유조차 없는 시간에 걸려 온 전화였다. 하지만 전화를 받지 않기에는 너무도 친밀한 사람이었다. 지난해부터 이곳 해남 땅끝순례문학관의 상주 작가로 일하면서 인연을 맺은 그녀는 내가 운영하는 글쓰기 프로그램에 참여하면서 가까워졌다. 그녀를 통해 나는 세상의 모든 다정함을 배우는 중이었다. 아니나 다를까, 전화를 받자마자 내게 툭 던진 그녀의 첫 마디는 “선생님, 오늘 저녁에 돈가스 사줄까요?”였다. 갑자기 무슨 돈가스냐고 묻자, 그녀는 “아니, 그냥이요.”라며 얼버무렸다. 그러다가 “오늘이 어버이날이잖아요.”라고 말했다. 어버이날인데 왜 내게 돈가스를 사주냐고 했더니, “자식들이 어버이날이라고 서울에서 내려왔는데, 선생님 생각이 났어요.”라고 하는 것이었다. 그녀의 말은 어버이날이라고 챙겨줄 자식이 없는 내가 쓸쓸하지 않을까 싶은 마음이 든 것이었다. 그러고는 덧붙이는 말이, 자식 없음을 들먹인 자기 말에 상처받지 말라는 당부도 잊지 않았다. 잠시 일의 흐름은 끊기고, 마음은 끝없이 증식하는 세포처럼 내 안의 빈 곳을 찾아 여기저기 틈을 메꾸는 것 같았다. 나는 아이를 낳지 않
전화벨이 울린다. 연락처에 저장되지 않은 번호다. 하루에도 몇 번씩 모르는 번호들이 휴대폰 화면에 뜬다. 나는 망설임 없이 수신 거부를 누른다. 언제부턴가 받고 싶지 않은 전화가 더 많이 온다. 한가한 시간에 걸려 오는 전화는 그나마 괜찮은데 바쁘고 복잡한 상황에 걸려 오는 전화는 불편하다. 특히 운전 중이거나 통화 중에 걸려 오는 전화는 더 그렇다. 놓치면 안 되는 중요한 전화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서둘러 받아보면 역시나, 괜히 받았다는 생각이 드는 경우가 많았다. 제품 홍보나 설문 조사를 위한 것들이 대부분이었고, 모르는 사람에게서 내 이름을 듣는 일은 묘한 불쾌감이 들었다. 그래서 휴대폰 화면에 저장되지 않은 연락처가 뜨면 무조건 거르게 된다. 모르는 전화를 받을 수 없게 된 데에는 그럴 만한 이유가 또 있다. 어느 순간부터 낯선 번호는 경계의 대상이 되었고, 그 안에는 실제로 피해야 할 위험한 요소들이 있었다. 그런 것들을 구별하기 어려워지면서 쉽게 피하는 쪽을 선택하게 되었다. 그러다 보니 전화벨이 달갑지 않은 소리가 되어 버렸다. 예전에는 목소리를 듣는 것만으로도 반가웠던 사람들이 있었다. 서로의 안부를 묻고 사소한 이야기로도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잔디 구장에는 서로 잇대어 설치한 천막들이 빼곡하게 늘어서 있었다. 한눈에 봐도 잔칫날의 풍경이었다. 운동장을 가로질러 가는데 스피커에서는 흥겨운 노래가 흘러나왔다. 조금 늦게 도착한 바람에 점심 식사가 끝나가고 있었다. 사람보다 막걸리 냄새가 먼저 다가와 코를 비틀어 놓았다. 김치와 여러 가지 음식들이 뒤섞인 냄새에 허기가 밀려왔다. 나를 초대한 지인은 음식이 가득 담긴 접시를 내게 내밀었다. 삼십여 개가 넘는 마을이 모여 면민의 날 행사를 하는 날이었다. 남자들은 막걸리 몇 잔으로 벌써 얼굴이 붉어지고 목소리에는 흥이 넘쳤다. 바람에 현수막이 펄럭이고 하늘에는 만국기가 펄럭였다. 옛날의 가을 운동회가 생각났다. 내 앞에 앉은 할머니는 안부를 묻는 이장님을 향해 갑자기 옷을 들치더니 허리에 두른 복대를 보여 주었다. 아마도 허리 수술을 하신 모양이었다. 얼떨결에 드러난 복대는 할머니의 허리를 단단히 감싸고 있었지만, 내 마음 한 곳을 조이고 있던 무언가는 잠시 헐거워지는 느낌이었다. 그렇게 서로의 안부를 묻고 답하는 방식이 살가웠다. 천막 앞에서 여자들의 승부차기가 시작되었다. 마을 주민 중에서도 젊은 축에 드는 사람들이 경기에 참여했는데, 아무리 힘껏 차
볕이 드는 창가에 앉아 발을 가지런히 모으고 밖을 본다. 봄이다. 자꾸만 발밑을 보게 되는 계절, 겨우내 잠들어 있던 것들이 깨어나는 시간이다. 철근 같았던 나뭇가지에 잎이 돋아나고 있다. 그 모습이 연둣빛 이파리를 가득 물고 있는 어린 새들 같다. 가까이에서 새가 지저귄다. 먼지와 구름을 걷어내는 색과 소리가 날마다 조금씩 번지고 있다. 어디선가 매화가 피었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작년에 피었던 꽃이 잊지 않고 찾아왔다. 봄이니까, 올 게 왔다고 당연하게 여겨왔던 일이 이제는 그저 고맙다. 얼었다가 녹았다 추위 속에서 얼마나 떨었을까, 사라지지 않고 살아내는 생명들이 애틋하고 그래서 더 절절한 봄이다. 이제 곧 개나리, 진달래가 줄지어 피어날 것이다. 그리고 산벚꽃이 뒤를 쫓아 산은 꽃으로 출렁일 것이다. 꽃의 공습이다. 창밖의 나무를 바라보고 꽃소식에 귀를 기울이다 보면, 문득 걱정이 앞선다. 올해는 제발 산불이 나지 않았으면 좋겠다. 꽃과 나무에 색이 드는 봄이면, 어김없이 여기저기서 산불이 났다는 뉴스가 쏟아진다. 타들어 가는 나무와 둥지를 떠나지 못한 작은 새들, 숲에 기대어 살아가는 생명들이 스러지는 소리가 더 이상 들리지 않기를. 어리고 여린 것들
설 명절을 맞아 친정집에 갔다. 북적이는 가족들로 소란스러운 틈을 잠시 벗어나 오랜만에 엄마의 방을 둘러보았다. 입었던 옷가지와 매일 쓰는 물건들이 흩어져 있었다. 작은 책상에는 펼쳐둔 성경책과 마시다 만 물컵이 놓여 있었다. 혼자 잠들고 일어나는 침대에는 엄마가 누웠던 흔적이 고스란히 남아 있었다. 부피가 묵직한 겨울 이불이 정리되지 않은 채 한곳으로 밀려나 있었다. 나는 가만히 서서 한 사람이 머문 공간을 바라보았다. 엄마는 이 방에서 어떤 시간을 보내고 있을까. 밤이면 무슨 생각을 할까. 문득, 엄마의 시간이 궁금해졌다. 때로는 짐이었고 때로는 힘이 되었을 자식들을 키워내고, 물러난 자리는 홀로 남은 방이었다. 그 방을 보며 알았다. 독거(獨居)는 공간이 아니라 고요히 흐르는 시간이라는 것을. 엄마의 방을 보고 있자니 돌아가신 아버지 생각이 났다. 아버지는 치매가 심해지면서 요양병원에 모셨다. 병원에 처음 가셨을 때부터 아버지는 우리를 볼 때마다 집에 가겠다고 했다. 기억은 흐릿해졌어도, 돌아가야 할 방향만은 몸 어딘가에 남아 있었던 것일까. 낯선 곳에서 혼자서 잠들고 깨어나 가족들을 하염없이 기다렸을 아버지 생각이 났다. 아버지가 계시는 요양병원에 면
보일러가 고장 났습니다. 하필이면 기온이 영하로 뚝 떨어져 버린 날이었어요. 그것도 저녁 무렵이었지요. 대리점에 전화했지만, 일과가 끝난 시간이라 보일러 기사는 다음날에야 방문할 수 있다고 했습니다. 예상한 일이었지만 난감했습니다. 날이 어두워질수록 집안은 점점 더 싸늘해졌어요. 추운 겨울이라지만 실내에서조차 몸을 움츠린 채 서성이는데, 순간 짜증이 치밀어 올라왔습니다. 그러고는 이토록 사소한 일에 반응하는 나를 보며 마음이 또 가라앉아버렸지요. 잠깐의 불편도 참을 수 없는 사람이라는 게 아찔했습니다. 저녁을 먹고, 설거지를 쌓아두었습니다. 씻는 일이 가장 큰 문제로 다가왔어요. 차가운 물로 이를 닦고, 고양이 세수를 했어요. 전기포트에라도 물을 끓이면 될 것을, 그건 미처 생각하지 못했습니다. 따뜻한 물이 그리웠습니다. 이미 경험한 것, 오래 누려서 익숙한 것이 끊겨버리자, 그리움은 더 선명해졌습니다. 그 틈으로 묻혀 있던 어린 시절의 기억이 떠올랐습니다. 몸 하나가 다 들어가는 빨간 고무통. 우리는 속옷만 입고 엄마의 호명을 기다리며 오돌오돌 떨고 있었어요. 차례를 기다리며 먼저 들어가기 싫다고 뻗대다가 다 씻고 나온 사람을 부러워하기도 했지요. 뜨거운
책 한 권 크기의 탁상 달력을 받았다. 1월부터 12월까지 새겨진 달력을 한 장씩 넘겨 본다. 공휴일과 기념일을 표기한 붉은 숫자들을 세어 보고, 작은 글씨로 적힌 음력과 절기들을 눈으로 더듬는다. 한 해가 시작되었다. 이 빼곡한 숫자들 속에 숨겨진 날들은 어떤 사건을 데리고 나에게 올 것인가, 잠시 생각에 잠긴다. 그러고 보니 크리스마스를 기념해 나오는 어드벤트(Advent) 캘린더가 떠올랐다. 크리스마스를 기다리며 매일 작은 상자를 하나씩 여는 어드벤트 캘린더는 기념일을 기다리는 마음을 잘 활용한 물건이다. 상자 안에는 대개 초콜릿이나 미니어처 같은 것들이 들어 있다. 대단하지는 않지만, 하루의 시작을 설렘으로 채워 주기에는 충분한 것들이다. 새날이 시작되었다. 삼백예순다섯 개의 상자가 도착한 셈이다. 상자에서 나올 물건의 크기나 내용은 대개 짐작할 수 있다. 그럼에도 우리는 무엇이 들어 있을지 기대하게 된다. 그 안에 있을 작은 기쁨을 떠올리며 상자를 여는 일은 가슴을 조금 뛰게 한다. 그렇다고 특별한 것을 기대하지는 않는다. 별다른 게 없을 걸 알면서도 상자를 열고, 그래서 실망하지 않는다. 오히려 그 안에 든 것이 크지 않다는 사실이 마음을 가볍게
진도에 있는 국립남도국악원에 다녀왔다. 다섯 개의 전통춤으로 이루어진 기획 공연을 보기 위해서였다. 공연이 시작되자 금방이라도 날아오를 듯한 춤사위에 무대까지 함께 너울거리는 것 같았다. 춤을 추는 무용수의 손끝과 발끝을 따라가느라 한눈을 팔 수가 없었다. 한 발 한 발 갈 듯 말 듯 걸음을 밀고 당기다가, 순간 박차고 나아갔다. 부족한 수면으로 몹시 지치고 피곤했던 나의 몸이 그 리듬을 따라 점점 깨어나고 있었다. 우리의 것이니 잘 안다고 여겨왔지만, 돌이켜보면 제대로 본 것도, 알고 있었던 것도 아니었다. 하얀 천을 들고 추는 ‘살풀이’는 다른 춤에 비해 비교적 익숙한 편이었다. 캄캄한 무대 위에서 슬픔이 하얗게 빛나고 있었다. 어두운 살을 풀어내고 있었다. 말 한마디 눈물 한 방울 없이, 몸으로 표현되는 생의 비애가 처연하게 다가왔다. 몸이 통곡하는구나, 라는 느낌에 소름이 돋았다. 내 안의 어디쯤, 오래 막혀 있던 곳이 터져 나오려는 것 같았다. 꾹 참았는데도 눈물이 자꾸 흘렀다. 그런데 인생이 어디 슬픔뿐이던가, 잠시 무대가 어두워진 뒤 다른 무용수가 커다란 북을 메고 나왔다. ‘진도 북춤’이었다. 우리 가락에 맞춰 펄럭이는 몸짓을 보고 있자니, 나
방 안의 공기가 답답해 밖으로 나갔다. 언제부터 거기 있었는지, 길고양이 한 마리가 마루 끝에 앉아 울고 있었다. 인기척 소리가 나면 도망가 버리던 녀석인지라 모습을 제대로 본 적이 없었다. 자세히 보니, 얼굴과 배는 하얗고 등은 까만 고양이었다. 두 발을 가지런히 모으고 내 방을 향해 앉아 있었다. 나를 보자 더 큰 소리로 울어댔다. 배고파? 아무것도 못 먹었어? 라는 내 물음에 말귀를 알아듣는 듯, 녀석은 더 큰 소리로 야옹, 야옹, 쉴 새 없이 대꾸했다. 그 모습이 꼭 배고파 보채는 아이 같았다. 사람 먹는 것밖에 줄 것이 없어 한참을 우왕좌왕하다 주방을 뒤져 참치캔 한 개를 들고나왔다. 참치캔을 따는 동안, 기다리는 녀석의 눈빛은 집요하고 진지했다. 어찌나 뚫어지게 쳐다보는지 덩달아 내 마음도 조급해졌다. 드디어 빼곡히 들어 찬 참치 살이 드러났다. 녀석에게 내밀자, 고개를 박고 정신없이 먹기 시작했다. 단 한 번도 고개를 들지 않았다. 얼마나 배가 고팠을까, 얼마나 굶었던 걸까? 참치캔 한가운데를 핥는 소리가 사락사락 눈 내리는 소리 같았다. 갑자기 추워진 날씨에 캄캄한 마당은 더 스산하고 이따금 바람에 흔들리는 마른 나뭇잎이 바스락거렸다. 사방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