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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인하의 다정한 편지] 저토록 가벼운 몸이라니

 

진도에 있는 국립남도국악원에 다녀왔다. 다섯 개의 전통춤으로 이루어진 기획 공연을 보기 위해서였다. 공연이 시작되자 금방이라도 날아오를 듯한 춤사위에 무대까지 함께 너울거리는 것 같았다. 춤을 추는 무용수의 손끝과 발끝을 따라가느라 한눈을 팔 수가 없었다. 한 발 한 발 갈 듯 말 듯 걸음을 밀고 당기다가, 순간 박차고 나아갔다. 부족한 수면으로 몹시 지치고 피곤했던 나의 몸이 그 리듬을 따라 점점 깨어나고 있었다. 우리의 것이니 잘 안다고 여겨왔지만, 돌이켜보면 제대로 본 것도, 알고 있었던 것도 아니었다. 하얀 천을 들고 추는 ‘살풀이’는 다른 춤에 비해 비교적 익숙한 편이었다. 캄캄한 무대 위에서 슬픔이 하얗게 빛나고 있었다. 어두운 살을 풀어내고 있었다.

 

말 한마디 눈물 한 방울 없이, 몸으로 표현되는 생의 비애가 처연하게 다가왔다. 몸이 통곡하는구나, 라는 느낌에 소름이 돋았다. 내 안의 어디쯤, 오래 막혀 있던 곳이 터져 나오려는 것 같았다. 꾹 참았는데도 눈물이 자꾸 흘렀다. 그런데 인생이 어디 슬픔뿐이던가, 잠시 무대가 어두워진 뒤 다른 무용수가 커다란 북을 메고 나왔다. ‘진도 북춤’이었다. 우리 가락에 맞춰 펄럭이는 몸짓을 보고 있자니, 나도 모르게 몸이 꿈틀거렸고 어깨가 들썩였다. 흥이 많은 편도 아니고 극심한 몸치인 나의 몸에 반응하게 만든 우리 춤과 가락은 마치 염력을 지닌 것처럼 느껴졌다. 그것은 슬픔과는 다른 결이었고, 몸을 다시 살아나게 만드는 힘이었다.

 

이어 무대에 오른 것은 ‘복개춤’이었다. 이 춤은 무녀들이 행하던 제석굿에서 비롯되었다고 한다. 사람들의 복을 기원하는 뜻이 담긴 춤이었다. 살풀이가 살을 풀어내고 슬픔을 씻어내는 것이었다면, 진도 북춤은 생의 힘을 북돋우는 리듬이었고, 복개춤은 사람들이 잘 살기를 바라는 마음이 고스란히 드러난 춤이었다. 이 춤들은 오래전부터 고된 삶을 건너는 데 필요했던 흥에 가까워 보였다. 공연을 보는 동안, 좋은 것을 알아보는 눈은 저절로 생기지 않는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것은 경험하지 않고는 알 수 없는 것이었다. 처음에는 공연을 보러 가자는 지인의 제안이 그다지 특별하게 다가오지 않았다. 인기 있는 뮤지컬이나 콘서트도 아니었고 밀린 일들이 남아, 마음에 걸렸기 때문이다.

 

최근 해외에서 큰 반향을 일으킨 영화 ‘케이팝 데몬 헌터스’가 떠올랐다. 전혀 다른 문화권의 관객들이 그 작품 속 노래와 춤, 서사에 강하게 반응한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그것은 불안과 위협 앞에서 질서를 되찾으려는 오래된 제의와 닿아 있기 때문은 아니었을까. 노래하고 춤추는 일이 단순한 퍼포먼스가 아니라 세계에 개입하는 행위로 그려지고, 악을 처단하기보다는 달래며, 끝내 모두가 무사하기를 바라는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기 때문은 아닐까. 그들이 알아본 한국적인 것을, 우리는 얼마나 깊이 들여다보고 있었을까. 우리는 관심을 두지 않으면서, 정작 남이 좋아해 주기만을 바라는 것은 앞뒤가 맞지 않는 일처럼 느껴졌다.

 

공연이 끝나고 밖으로 나왔을 때 겨울비가 내리고 있었다. 비는 거리와 사람들을 고르게 적셨다. 떨어지는 빗방울도 그 비를 맞는 나무의 흔들림도, 공연을 보고 나니 세상에 춤 아닌 게 없는 듯 보였다. 예술은 삶을 바꾸겠다고 말하지 않지만, 내리는 비처럼 어느새 우리 안의 메마른 곳을 촉촉이 적시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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