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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인하의 다정한 편지] 혼자만의 방

 

설 명절을 맞아 친정집에 갔다. 북적이는 가족들로 소란스러운 틈을 잠시 벗어나 오랜만에 엄마의 방을 둘러보았다. 입었던 옷가지와 매일 쓰는 물건들이 흩어져 있었다. 작은 책상에는 펼쳐둔 성경책과 마시다 만 물컵이 놓여 있었다. 혼자 잠들고 일어나는 침대에는 엄마가 누웠던 흔적이 고스란히 남아 있었다. 부피가 묵직한 겨울 이불이 정리되지 않은 채 한곳으로 밀려나 있었다. 나는 가만히 서서 한 사람이 머문 공간을 바라보았다. 엄마는 이 방에서 어떤 시간을 보내고 있을까. 밤이면 무슨 생각을 할까. 문득, 엄마의 시간이 궁금해졌다. 때로는 짐이었고 때로는 힘이 되었을 자식들을 키워내고, 물러난 자리는 홀로 남은 방이었다. 그 방을 보며 알았다. 독거(獨居)는 공간이 아니라 고요히 흐르는 시간이라는 것을.

 

엄마의 방을 보고 있자니 돌아가신 아버지 생각이 났다. 아버지는 치매가 심해지면서 요양병원에 모셨다. 병원에 처음 가셨을 때부터 아버지는 우리를 볼 때마다 집에 가겠다고 했다. 기억은 흐릿해졌어도, 돌아가야 할 방향만은 몸 어딘가에 남아 있었던 것일까. 낯선 곳에서 혼자서 잠들고 깨어나 가족들을 하염없이 기다렸을 아버지 생각이 났다. 아버지가 계시는 요양병원에 면회를 다녀오던 날들의 무거웠던 기억이 지금까지 생생하게 남아 있다. 아니 에르노의 『세월』 마지막 페이지에, 요양원 현관에서 잠옷과 슬리퍼 차림으로, 더러운 종이를 내밀며 아들에게 전화를 걸어달라고 울던 남자가 나온다. 아버지가 돌아가신 지 얼마 지나지 않아 읽었던 터라 그 장면은 오래 마음에 남았다. 나는 그 책의 마지막 페이지에서 다시 아버지를 만났다.

 

엄마가 드셔야 할 영양제 복용법을 설명하는데, 갑자기 엄마가 그랬다. 나는 이다음에 요양원에는 가지 않을 테니 절대 보내지 말라고. 형제들은 잠시 말을 잃고 엄마를 쳐다보았다. 나는 농담처럼 “아버지는 보내놓고?”라고 물었다. 엄마는 단호하게 말했다. “네 아버지와 나는 다르다.” 우리는 웃으며 뭐가 다르냐고 되물었고, 곧바로 그러니 영양제 잘 챙겨 드시라는 말을 협박하듯 건넸다. 그러나 웃음이 잦아든 뒤에도 엄마의 말은 쉽게 가라앉지 않았다. 그 말 속에는 두려움과 고집, 그리고 끝까지 스스로를 지키고 싶다는 마음이 함께 들어 있었는지도 모른다. 우리는 타인의 상황은 쉽게 받아들이면서도, 자신만큼은 끝내 예외이기를 바라는지도 모른다. 엄마는 오늘도 그 방에서 잠들 것이다. 그리고 나 역시 언젠가 그런 밤을 맞이할 것이다.

 

소란스러웠던 시간도 잠시, 명절을 보내고 나면 자식들은 각자의 자리로 돌아간다. 식탁은 다시 조용해지고, 거실의 불은 일찍 꺼진다. 늙은 부모는 둘이거나 홀로 남는다. 하루는 길어지고, 말은 줄어든다. 그러나 노년의 삶만이 사람을 홀로이게 하는 것은 아닐 것이다. 무리 속에 섞여 있다가도 결국은 각자의 시간으로 돌아온다. 우리는 관계 속에 기대어 살아가지만, 저마다의 방으로 돌아가 하루를 마무리한다. 그것은 더 이상 공간의 문제가 아니라 인간의 보편적 존재 방식이 된다. 당신의 방은, 그 안에 깃든 시간은 어떤 모습일까. 혼자 남는 순간에 우리는 무엇을 떠올리게 될까. 누구의 이름을 부르고, 어떤 기억을 붙들고 있을까. 인간은 처음부터 아름다운 독신(獨身)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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