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리 올림픽. 지난 금요일 드디어 막이 올랐다. 흩날리는 빗속에서 센 강의 다리 위를 수놓은 프랑스 삼색기와 축구선수 지단이 아이에게 건넨 올림픽 성화, 셀린 디옹이 부른 ‘사랑의 찬가’는 감동 그 자체였다. 레이디 가가의 파리 ‘리도쇼’와 아야 나카무라의 ‘자자’와 ‘푸키’ 메들리는 첨단쇼를 연상케 했다. 전 세계에서 10억 명이 지켜본 이번 올림픽 개막식에서 가장 이색적인 장면은 아마도 배를 타고 등장한 각국 선수단 이었을 것이다. 이 선수단은 남녀가 비슷한 비율로 섞여 있어 올림픽의 민주화가 진전되고 있음을 감지케 했다. 1900년 제2회 파리 올림픽이 열렸을 때 출전한 여자 선수는 2%에 불과했다. 총 997명의 선수 중 22명의 여성은 테니스, 요트, 크로켓, 승마, 골프, 5개 종목에 출전했다. 이 중 골프와 테니스만 여성 전용 종목이었다. 올림픽 헌장에는 “IOC(국제올림픽위원회)의 역할은 남녀평등의 원칙을 구현하기 위해 모든 수준에서 여성의 진흥을 장려하고 지원하는 것”이라고 명시돼 있다. 그런데 이 실천은 아직도 요원하다. 올림픽에서 여자 선수 비율이 30%를 넘는 데는 약 100년이 걸렸다. IOC는 지난 20여 년 동안 국제연맹 및 올림픽
오는 7월 26일, 드디어 세계올림픽이 시작된다. 서른세 번째 열리는 이 올림픽의 개최지는 파리다. 이 도시는 이미 두 차례나 올림픽을 치른 전적이 있다. 1900년과 1924년이 바로 그것이다. 한 도시에서 올림픽이 세 번이나 열리는 일은 그리 흔치 않다. 그래서일까? 프랑스는 이번 대회를 이색적으로 끌어가려고 분주하다. 개막식도 경기장이 아닌 센 강가에서 실시한다. 저 멀리 에펠탑이 우뚝 서 있고 찬란한 물빛 위에는 만국기를 실은 유람선이 둥둥 떠다니는 센 강의 야경무대. 꿈과 낭만의 축제, 마법의 축제가 아닐 수 없다. 이 행사가 끝나면 바로 다음날부터 단거리 달리기, 멀리뛰기, 원반던지기, 스노보드, 피겨 스케이팅 등 각종 경기가 펼쳐진다. 전 세계 수많은 나라에서 온 수천 명의 선수가 자국의 국기를 가슴에 달고 금, 은, 동메달을 놓고 치열한 쟁탈전을 벌일 것이다. 그렇다면 올림픽은 어떤 과정을 거쳐 오늘에 이르렀을까? 올림픽 경기가 최초로 실시된 건 기원전 776년 여름이다. 고대 그리스인들은 신들의 왕인 제우스를 기리기 위해 남부의 올림피아에서 경기를 치렀다. 선수들은 4년 마다 제우스신께 승리를 기원하고 그들의 성공에 감사하는 제물을 바쳤다.
옷더미에 병들어 가는 지구. 그럼에도 대부분의 패션업계들은 유행을 선도해 돈벌이에 혈안이 돼 있다. 이에 반기를 든 업체가 있다. 스페인의 에코알프(Ecoalf)다. 지속 가능성을 구현하기 위해 노력하는 이 회사는 다른 브랜드와 차별화를 시도한다. 2009년 창립한 이 회사는 재활용에 전념하며 이 분야의 선구적 역할을 주도한다. 경제적 이익을 우선으로 하는 많은 브랜드와 달리 에코알프는 생태적 가치를 최우선으로 한다. 이 브랜드의 여정은 세 명의 어부가 한국산 트롤선(저인망어선)을 이용해 바다에서 플라스틱 쓰레기를 수거하면서 시작됐다. 현재는 스페인, 프랑스, 이탈리아, 그리스, 태국 등 60개 이상의 항구에서 약 3,500명의 자원봉사 어부들이 활동하고 있다. 이들의 도움을 받아 해저에서 쓰레기를 건져 올려 분류하고 재활용함으로써 최고 품질의 원사를 생산해 낸다. 이들은 ‘지구에 B는 없다.’는 슬로건을 외친다. 하나 뿐인 지구를 지키기 위해 에코알프는 더 높은 수익을 희생하더라도 지속 가능한 개발을 추구한다. 수익성이 환경 문제보다 우선시되는 경우가 대부분인 업계에서 생태적 가치에 집중하는 이 업체의 노력은 가히 칭찬해 줄 만하다. ‘에코알프’라는 회사명
바다 한가운데 떠있는 고딕 양식의 경이로운 수도원 몽생미셸! 이곳은 프랑스에서 파리 다음으로 인기가 높다. 지난 5월 19일 이곳을 찾은 관광객은 3만 3000명으로 정점을 찍었다. 4㎢도 채 되지 않는 작은 섬에 왜 이리 많은 사람이 모여 든 걸까? 신비롭고 경이로운 몽생미셸의 매력 때문이다. 이곳은 708년 세워졌다. 전설에 따르면 생 미셸 대천사가 오베르(Aubert) 주교에게 나타나 자신의 이름으로 성소를 지어달라고 부탁했다. 그러나 주교는 이를 믿지 않았다. 그러자 대천사가 다시 나타나 자신의 존재를 보여주기 위해 빛의 손가락으로 주교의 머리를 만졌고 두개골에는 곧 구멍이 뚫렸다. 주교는 대천사의 존재를 확신하고 건물을 짓기로 결심했다. 그 후 966년 베네딕토회 수도사들이 이곳을 점령했다. 이들은 로마네스크 양식의 수도원 공사를 60년간 지속했고, 수세기에 걸쳐 이 섬의 화강암 위에 여러 건물을 지었다. 그 결과 몽생미셸은 ‘중세 고딕식 건물의 백과사전’이 됐다. 이곳은 무엇보다 갈리시아로 가는 북유럽 순례자들의 산티아고 순례길 중간 기착지다. 따라서 일찍부터 유명세를 탔다. 1965년, 한 기자는 이렇게 묘사했다. “오늘날 몽생미셸은 전 세계의
‘에루샤(에르메스·루이비통·샤넬).’ 이 이름을 들으면 여러분은 어떤 이미지가 떠오르는가? 이 럭셔리 브랜드는 뛰어난 장인정신,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우아함, 엄청난 풍요로움으로 프랑스 패션의 아우라를 뽐내고 있다. 그래서일까? 불황 속에서도 이들은 호황의 기염을 토한다. 이 명품을 사기 위해 몰려드는 사람들이 끊이지 않기 때문이다. 이 회사들이 벌어들이는 연간 수입은 상상을 초월한다. 이 중 에르메스와 샤넬 가방은 특히 고가다. 가방 하나에 천만 원이 훌쩍 넘는다. 아무리 명품이라지만 왜 이렇게 비싼 걸까? 거기에는 비밀이 있는 듯하다. 매거진 챌린지에 따르면, 에르메스는 책정된 고가의 가격을 유지하기 위해 재고 상품을 모두 소각한다. 이 작업은 극비리에 진행된다. 이른 아침, 파리 근교 센 생드니의 생투앙(Saint-Ouen) 소각장 앞. 이곳엔 1만 명의 에르메스 직원 중 무작위로 선발된 열 명의 직원이 모여 있다. 이들은 에르메스의 환상적인 제품들이 재로 변하는 소각장의 대형 굴뚝 앞으로 출근한 것이다. 곧이어 집행 사무실의 대표가 와 합류한다. 에르메스 상품들은 트럭에 실려 도착하고, 일부는 아직 주황색 상자에 담겨 있다. 현장의 한 직원이 “우리의
“선생님, 일본인은 죽음에 대해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나요? 언젠가 이 주제에 대해 책을 쓰려고 여쭤 봅니다. 한국인은 사후에도 영원히 산다는 생각을 하는 거 같아요. 죽어서도 살아생전에 가진 것들을 못 내려놓아요. 한 예로 대통령들이 죽으면 너도 나도 국립현충원으로 가려고 해요. 그런데 프랑스 대통령들은 죽으면 자연인으로 돌아가 고향에 묻혀요. 두 나라의 문화가 참 다릅니다. 일본인은 어떤가요?” 10여 년 전 동경대에서 연구를 마치고 내게 일본어를 가르쳐 주신 사토 선생님과 송별 점심을 먹으며 드린 질문이다. 그는 왜 하필 죽음이냐며 핀잔을 주시더니 자기 이야기로 서두를 시작했다. “최상(チョイさん)! 내 나이 이제 예순 셋, 요즘 이상하게 죽음을 생각하게 되네. 며칠 전에도 그랬지. 그래서 다음 날 장롱을 정리했네. 여섯 장의 티셔츠만 남기고 나머지 옷은 처리했지. 나는 독신이라 장례를 조카딸에게 부탁하고 있네. 그 애에게 너무 큰 폐를 끼치지 않으려면 짐을 최소한으로 정리해야 한다네. (...)” 그날 우리는 여러 이야기를 나눴다. 하지만 사토 선생님이 장롱에 여섯 장의 티셔츠만 가지고 계시다는 말이 가장 뇌리에 남았다. “나도 저렇게 심플하게 살아야
어제 유럽시간 오전 12시, 서울시간 오후 7시. 제33회 파리올림픽 성화가 불을 붙였다. 마티유 르아뇌르(Mathieu Lehanneur)가 디자인하고 아르셀로미탈(ArcelorMittal) 사(社)가 제작한 은빛의 성화는 무척 단아하고 세련됐다. 고대 올림픽에 대한 경의를 표하기 위해 이 성화는 그리스 올림피아 성소에서 채화식을 했다. “성화 봉송은 올림픽 축제의 시작을 알리고 새로운 대회의 웅장한 시작을 알리는 중요한 순간이다”라고 파리 올림픽 조직위원장 토니 에스탕게(Tony Estanguet)는 설명했다. 이 성화는 당분간 그리스 여기저기를 봉송 여행하고 장미의 계절 5월에는 프랑스에 도착하게 된다. 그리스 일정은 4월 17일 펠로폰네소스 반도 서쪽의 아말리아다, 일리다, 가스투니, 피르고스, 자카로, 필리아트라를 거쳐 필로스까지 봉송이 이어지고, 18일 수도 아테네의 주요 항구인 피레우스로 향한다. 19일에는 남동부 도데카니즈 군도와 크레타 섬 헤라클리온 마을과 키클라데스 섬으로 이동한 뒤 아테네 아크로폴리스에 도착하게 된다. 20일은 고대 유적지 델포이와 볼로스 마을을 지나 중부 테살리아에서, 그 다음날은 마케도니아의 수도이자 그리스의 두 번째
오늘은 22대 국회의원 선거가 있는 날. 유권자들은 과연 어떤 선택을 할 것인가? 제발 정직하고 부끄러움을 아는 후보를 뽑아 국회를 상식의 장으로 만들어 주길 소망해 본다. 이번 총선을 통해 유권자들은 정치인들의 민낯을 낱낱이 봤을 것이다. 자질이 있는 사람도 있었지만 그렇지 못한 사람도 많았다. 정치를 해서는 안 될 사람도 있었다. 국민의 힘 비상대책위원회 위원장 한동훈이 그 한 예일 것이다. 정치를 속성으로 배워서 그런 것인가? 70년대 생이라고 보기에는 믿기지 않을 정도로 그의 레토릭은 구태의연했다. 운동권 청산과 종북몰이로 총선판을 흔들려 했고 “벚꽃이 피면 김포는 서울이 된다” “국회를 세종시로 옮긴다”, “내일 사전투표하면 구리가 서울 된다” 등 실현 불가능한 공약을 눈 하나 깜짝 않고 마구 던졌다.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 정치를 개 같이 하는 사람이 문제다”, “쓰레기 같은 말”, “개폼 잡는다” 등 금도를 넘는 언사를 쏟아냈다. 검정뿔테안경에 폴라티를 입고 세련된 정치인인양 연단에 올라 왜 이런 행동을 하는 것일까? 고개를 갸웃거리는 동안 프랑스 정치인 니콜라 사르코지(Nicolas Sarkozy)가 떠올랐다. 사르코지는 내무부장관
오늘부터 여론조사 공표가 금지된다. 따라서 모든 선거여론조사의 게시, 배포 및 논평이 금지된다. 깜깜이 선거가 시작된 것이다. 이처럼 공표를 금지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여론조사가 유권자의 자유로운 결정에 영향을 미치거나 방해된다고 보기 때문이다. 그러나 정반대의 해석을 하며 이를 반대하는 사람들도 있다. 선거여론조사 결과는 유권자가 투표를 결정하는데 중요한 참고 자료가 된다고 보는 입장이다. 그렇다면 다른 나라의 사정은 어떠할까? 지난 2012년 홍콩대학교의 로버트 정(Robert Chung) 교수는 80여 개국을 상대로 여론조사 공표 금지 여부를 묻는 조사를 실시했다. 그 결과 38개국이 여론조사 공표를 금지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노르웨이와 포르투갈은 하루, 세르비아와 브라질은 이틀, 러시아와 스페인은 5일, 대만은 10일, 아르헨티나, 그리스, 이탈리아, 우크라이나는 15일 이었다. 반면에 앵글로색슨 국가는 여론조사 공표 금지 조항이 없었다. 미국에서는 여론조사가 표현의 자유의 일부로 간주된다. 따라서 여론조사를 금지할 수 없으며, 투표 당일에 여론조사를 실시해 발표한다. 한편, 프랑스는 1977년부터 선거직전 일주일 간 여론조사 공표를 금지해 왔다. 그
지난 2019년 선거법이 개정됐다. 주요 골자는 유권자 연령의 하향 조정이었다. 기존 19세에서 18세로 선거권 확대. 한국 정치인들은 “서구 선진국에서는 16, 17세부터 선거권이 있는데 한국은 그렇지 않다.”라며 하향조정을 적극 추진했다. 그러나 정치권에 묻고 싶다. 진정 무엇을 위한 하향 조정인가? 그냥 선진국 따라 하긴가? 아니면 대의제 민주주의를 확대하기 위한 수단인가? 만약 후자였다면 젊은 유권자를 위한 상품 출시에 힘써야 한다. 젊은이들을 선거판에 불러놓기만 하고 그들이 고를 상품이 없다면 이는 상도덕에 크게 어긋난다. 오는 4.10 총선의 메뉴를 보면 알 수 있다. 후보들은 도시화, 경제개발만 하겠다고 야단들이다. 너도나도 철도 지하화, 공항이전, 서울편입, GTX 연장 및 건설, 녹지대 개발, 아파트(재)건축 등을 약속한다. 70년대 개발도상국 시절의 공약과 별반 다를 게 없다. 이런 종류의 공약은 기성세대에게는 먹힐지 모르지만 젊은 세대에게는 통하기 어렵다. 청년들에게 더 이상 투표는 의무가 아니다. 그들은 살 상품이 없으면 투표장에 나갈 필요성을 못 느끼게 된다. 이런 논리를 고려하지 않은 채 노년층은 투표장에 나가는 데 왜 젊은 층 너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