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도교육청이 올해 초 식중독 사고를 예방한다는 취지로 ‘저녁 급식을 제공하면 위생관리 취약 학교로 분류하겠다’는 지침을 내려보냈다. 사실상 하지 말라는 것이다. 이 같은 방침으로 인해 저녁 급식을 하는 공립고등학교가 대폭 줄었다. 지난해 경기 지역 고등학교 중 406개교(86%)에서 실시하던 저녁 급식은 현재 174개교(36%)에서만 이뤄지고 있다. 그런데 사실은 식중독 예방문제 때문이 아니라고 한다. 경기도교육청은 지난해 야간자율학습 전면 폐지를 추진한바 있다. 하지만 경기도의회의 반발에 부딪쳐 시행이 어렵게 되자 ‘저녁 급식 중단’이라는 방법을 쓰고 있다는 것이다. 손학규 전 경기지사가 ‘저녁이 있는 삶’이라는 민생경제론 저서를 낸바 있다. 우리 모두는 학교나 직장이 끝나면 집으로 돌아와 가족들과 함께 하거나 취미를 즐기는 ‘저녁이 있는 삶’을 원한다. 누구라도 밤늦게까지 직장이나 학교에 남아 있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다. 그러나 대학입시를 앞둔 고등학생들은 정규 학과 시간이 끝나도 밤 10시까지 학교에 남아 강제적 자율학습을 하고 있다. 물론 이게 옳은 것은 아니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다. 교육부의 대학입시 제도가 바뀌지 않는 한 고교생들은 강제적 자율학
빌 게이츠는 로봇세(稅)를 재취업교육에 써야 한다고 말했는데, 그의 주장은 한국에 잘 먹히지 않는다. 원인은 4차 산업혁명의 선도국인 미국에서는 새로운 일자리가 많이 생기는 편이지만 한국의 사정은 다르기 때문이다. 한국은 구글, 페이스북, 아마존 등과 같은 거대 플랫폼이 없어서 우선 4차 산업혁명 플랫폼 전략에 더욱 매진해야 한다. 우리는 재교육을 해도 취직할 곳이 많지 않다. 한국은 창업국가를 넘어서 벤처국가가 되어야 하는 절박한 상황에 처해 있다. 그래서 지난번 칼럼에서 4차 산업혁명은 막을 수 없으니 4차 산업혁명기 대안의 적확성을 강조했다. 이에 대해 문재인·안철수 양강 후보는 정부 주도가 좋은지 아님 민간주도를 지원하는 것이 좋은지에 대한 의견이 갈렸다. 지금 한국에서 섣부른 민간주도는 ‘알묘조장(?苗助長)’이라는 고사처럼 뜨거운 태양 아래 우리 기업의 싹을 고사시킬 수 있다. 매년 한국의 전체 예산보다 더 큰 돈을 쓰는 외국 기업들은 엄청난 자금을 인공지능과 ICBM(Internet Cloud & Bigdata Mobile·사물인터넷과 빅데이터)에 쓰고 있기 때문이다. 현시점에서 민간이 4차 산
빨간색 긴 옷과 마법사 모자를 쓰고 한 사내가 피리를 불고 있고, 수많은 아이들이 행복하고 즐거운 모습으로 사내를 따라가고 있다. 발그레한 뺨에 고불고불한 머리, 하늘하늘 주름진 색색의 드레스와 프릴이 달린 모들이 눈에 띤다. 사랑스럽고 귀여운 아이들은 즐거워 춤을 추기도 하고 박수를 치며 미소를 짓고 있다. 1988년 영국의 일러스트레이터 케이트 그린어웨이의 ‘하멜른의 피리 부는 사나이’의 한 장면이다. 책에 실렸던 시는 일찍이 1955년 영국의 낭만주의 시인 로버트 브라우닝에 의해 쓰였다. 어린 시절 이 작품을 감명 깊게 읽은 그는 시인이 죽기 전 이 책을 출간해도 좋다는 허락을 받았다고 한다. ‘하멜른의 피리 부는 사나이’는 독일의 작은 도시 하멜른에서 실제 일어난 일을 토대로 쓰인 것으로 잘 알려져 있다. 책의 내용을 이러하다. 어느 날 하멜른에 출몰한 쥐떼 때문에 사람들이 골머리를 앓게 되는데 기이한 복장을 하고 창백한 인상을 띤 한 남자가 나타나 쥐떼를 몰아내주는 대가로 천 길더를 받기로 한다. 쥐떼들은 그의 아름다운 피리소리를 듣고 그를 따라가더니 결국 베저강에 빠져 모조리 죽는다. 그러나 천 길더를 치
대한민국의 주인은 과연 누구일까? 바로 대통령선거 투표를 하는 유권자 국민들이 주인이라고 나는 감히 말하고 싶다. 대통령 선거는 대한민국의 미래와 국가의 발전과 가정 생활에 미치는 영향이 상당하여 대통령 후보등록을 누가하느냐에 국민들 모두는 지대한 관심을 보이고 있다. 대통령의 자질이 안되는 사람들이 후보등록을 하면 유권자들은 싫든 좋든 등록된 후보자들중에서만 선택할 수 밖에 없으며, 반대로 아무리 훌륭한 사람이라도 후보등록을 안하면 대통령으로 선출 할 수가 없다. 그러하기에 정당공천을 받아 등록을 하든 무소속으로 등록을 하든 훌륭한 사람들만이 후보등록을 해야 될 것이니 후보들 자신부터 자격을 갖추었는지 스스로 검증해 보는 것이 바람직하다. 훌륭한 후보들이란 학식과 경륜을 가지고 있고 대통령 직분에 충실할 수 있는 분들이어야 하고 도덕성도 갖춘 분들이라야 한다. 또한 객관적으로 인정할만한 능력과 자질을 갖춘 분들이어야 하고 국제적 감각과 역량도 상당한 분들이어야 한다. 이러한 훌륭한 분들이 후보등록을 해야만 국민들에 의해 직접 선출되는 자격이 있을 것이다. 대통령은 국사를 고민하고 대안을 만드는 분이니 대통령 후보들은 국가를 위한 비전 제시를 할 수 있을 정
TV토론은 미디어선거의 백미로 꼽힌다. 시청자의 표심을 살 수 있는 최대의 기회여서다. 따라서 후보는 판세를 굳히거나 뒤집을 수 있는 분수령으로 여기고 전력을 다해 대비한다. 이 같은 TV토론은 미국을 빼놓고 얘기할 수 없다. 선거사상 최초로 1960년 대선후보 간 첫 TV토론이 열린 것도 그렇지만, 토론 이후 후보 간 승패가 뒤바뀌는 반전의 역사가 가장 많아서다. 그중 1980년 카터와 로널드 레이건 후보의 TV토론은 현대 정치사에 한 획을 그었다는 평가를 받는다. 당시 레이건은 여론조사에서 카터보다 한참 뒤져 있었다. 그러나 TV토론이 시작되자 반전극이 펼쳐졌다. 영화배우 출신답게 카리스마를 유감없이 뿜어냈고 정책과 비전도 함께 제시, 그 결과 당선으로까지 이어졌다. TV토론 덕을 본 대표적 정치인으로는 존 F 케네디 대통령을 첫 손가락에 꼽는다. 4차례의 토론 결과 난공불락이라 여겼던 닉슨 후보를 쓰러트렸기 때문이다. 그리고 국정운영 철학이나 정치력보다는 멋진 외모나 단호한 태도 등 이미지 메이킹에서 완승했다는 평가를 받기도 했다. 프랑스는 미국보다 16년 늦은 1976년 TV토론을 도입했다. 반면 독일은 이보다 훨씬 더 늦은 2002년 8월 여야총리…
물방울 기억 /최도선 인감印鑑證을 떼는데 나를 나로 인정받기까지는 내 지문指紋만이 증표래요 그런데 어쩌죠 첨단기계도 내 지문을 인식해주기 못하네요 물 티슈로 손가락 끝마디에 촉촉이 물을 먹였어요 그제야 겨우 흐릿하게 건져 올린 나의 바코드 나를 주장할 수 있는 것이 나 아닌 저 물방울이라니 물에서 나온 나, 아니 우리 이제 뭍의 흙이 아닌 물로 돌아가야 할까 봐요 물방울이 우리를 기억하는 동안 -시집 ‘서른 아홉 나연씨’ 지구생성 이후 수십 억 년을 지나 고생대에 이르러서야 바다에 사는 생물이 출현했다고 한다. 단세포생물에서 다세포생물로의 진화를 거쳐 육상으로 진출한 생물의 기원으로 볼 때 물은 생명의 원형이다. 시적 화자는 자신의 존재증명이 한낱 지문에 의해서 드러날 수밖에 없는 상황에서 물의 최초 생명과학적 인식을 이끌어낸다. 우리에게는 태내의 양수 속을 떠다닌 300여 일의 심층기억이 유식학(唯識學)에서 말하는 아뢰야식에 함장돼 있다. 그러므로 화자는 나의 존재증명을 저 원초적 물의 이미지로 치환함으로써 단숨에 나로부터 우주로 확장되는 시상의 도약을 이루어낸다. 동시에 흙과 물이 둘이 아닌 不二를 말함으로서 존재의 무화를 은연중 암
축제가 하나의 놀이라고 한다면 그것이 유래된 것은 일상에서 벗어나는 행위라는 점이다. 그래서 ‘놀이’의 최고의 형식은 축제라고 할 수 있다. 이러한 것을 네덜란드 문화사학자 호이징거는 ‘놀이하는 인간’이라는 뜻인 ‘호모 루덴스’라고 했다. 인간에서는 본능적으로 ‘놀이충동’이 있다는 것이고 이에 가장 적합한 것이 축제라고 보는 견해다. 놀이의 최고의 형식으로 간주되는 축제를 비롯하여 영화, 뮤지컬, 테마파크는 이 ‘놀이충동’이 가장 핵심적이라고 할 수 있다. 하나의 놀이는 지역의 문화 원형에서 비롯된다. 전혀 지역과 연관성이 없는 것은 고유의 놀이로서 발전하지 못한다. 그래서 축제 콘텐츠에서 가장 중요한 것으로 인식되고 있는 지역문화 코드는 그 연관성으로 정착이 되는 것이다. 그것은 흔히 글로칼라이제이션(Glocalization) 축제 콘텐츠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지역성과 현지화의 통해 그 지역의 축제 원형은 스토리텔링을 갖춘 놀이문화로 정착되어지는 것이다. 그래서 ‘놀이문화’는 축제의 원형을 이야기하면서 세계화를 지나치게 강조
거리엔 벌써 확성기 소리가 요란하다. 모두가 “국민을 위한다.”고 한다. 모두가 “위대한 대한민국을 만든다.”고 한다. 거리마다 대선과 관련된 현수막들도 어지러울 정도로 그득하다. 언론은 지난 몇 달간 비선 실세, 탄핵, 촛불과 태극기, 세월호, 사드, 대선 이야기 등 비슷한 내용으로 화면과 지면을 채워댔다. 대다수 국민들은 세상 돌아가는 것에 심각한 불안을 느끼고 있는데도 정치인과 언론은 국민은 안중에도 없는 듯 국민 모두를 한 곳만 바라보게 하고 있었던 것 같다. 그런 와중에 미국은 강력한 국수주의(?) 정권이 들어서고, 일본은 그 틈을 이용하여 안하무인격의 우경화에 열을 올리고 있다. 중국은 더 가관이다. 자기네들 가진 것은 털끝 만치도 밝히거나 줄이지 않으면서 조그만 나라 대한민국만 만만히 보며 참으로 무례한 조공의 예를 강요하고 있다. 게다가 북한은 천방지축 럭비공같이 튀면서 한반도를 더욱 어려운 형국으로 몰아가고 있다. 최근 정부는 지난해 국민 1인당 순소득(GNI)이 잠정적으로 2만7천561 달러라고 발표했다. 2만 달러가 넘은지 11년째 제자리걸음이란다. 국민들은 3만 달러가 곧 달성되어 선진국에 진입
대선을 앞두고 대통령 후보들의 사드배치와 관련된 입장이 발표되고 있는 순간에도 중국의 사드 관련 보복이 이어지고 있다. 가장 눈에 띄는 것은 ‘방한 금지령’이다. 서울 명동과 제주도 등에서는 중국인 관광객들을 찾아보기 힘들다. 중국인 대신 동남아시아 등 다른 나라 관광객들이 발걸음을 해 다행이긴 하다. 또 사드부지를 제공한 롯데그룹에도 보복성 제재를 가하고 있다. 이로 인해 우리 국민들 사이에도 혐중 감정이 고조되고 있다. 실제로 중국 여행을 자제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확산되고 계획됐던 중국여행 대신 동남아나 일본으로 바꾸는 사람들이 많다. 여행상품을 파는 홈쇼핑업체들도 중국 관련 상품 판매를 중단했다. 이런 와중에 혐중감정에 기름을 붓는 일이 또 일어났다. 지난 6~7일 미·중 정상회담이 열렸는데 이 자리에서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에게 “중국과 한국 간 수천년 역사와 많은 전쟁을 했다” “한국은 사실 중국의 일부”라고 말했다는 것이다. 물론 우리가 직접 들은 이야기는 아니라서 확실치는 않다. 하지만 이게 사실이라면 중국의 왜곡된 중화주의를 바탕으로 한 질 낮은 인식으로써 비난받아 마땅하다. 우리 외교부도 “수천년 한·중 관계 역사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