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도가 ‘세계 차 없는 날(매년 9월 22일)’을 맞아 30일부터 10월6일까지 ‘승용차 없는 주간’으로 선정해 도내 각 지자체와 녹색 캠페인을 전개한다는 소식이다. 즉 일주일간 승용차 없는 주간으로 정하고 도내 공무원을 대상으로 캠페인을 전개하고 있다. 뭐, 내용은 언제나 어디서나 똑같다. ‘가까운 거리는 걷거나 자전거를 탑시다’ ‘자가용 승용차 대신 대중교통을 이용합시다’라는 것이다. 그런데 현실은 그렇지 않다. 도청 공무원조차 승용차를 끌고 와 관공서 근처에 주차시키고 출근한다는 것은 공공연한 비밀이다. 이 시점에서 생각나는 행사가 있다. 지난 9월30일 끝난 ‘생태교통 수원2013’ 행사다. ‘미친 짓’ ‘정신 나간 시장과 공무원’이란 극언까지 들어가며 시작한 이 행사는 기적과도 같았다. 세상에 하루도 아니고 한달씩이나 마을에서 자동차를 모두 빼내겠다는 발상을 한 사람이나, 그런 제안을 받아들인 주민들. 물론 처음엔 극심한 반발이 있었지만 결국 대부분이 취지를 이해해 동참했다. 이 시대의 상식으로는 이해가 안 가는 사람들이다. 많은 국가와 지자체에서 이 행사를 벤치마킹해 갔다. 그러나 실천은 쉽지 않을 것이다. 그래서 행궁동 사람들이 위대하다. 지난
최근 부산지역 정치권은 분주하다. 지난 대통령선거가 끝나기 무섭게 ‘동남권 신공항 조기건설’을 중심화두로 내세웠다. 새 정부 구성을 앞둔 상황에서는 부활한 해양수산부가 부산에 입지해야 한다고 역설했다. 중앙정부와 정치권이 나서서 신공항 관련 용역 조기발주, 해수부 입지 절충안 제시 등으로 잠잠해지는가 싶더니 이제는 ‘해양경제특별구역’을 부산으로 가져갈 법안을 만들어야겠다고 한다. 게다가 새누리당은 미래과학창조부와 해수부의 세종시 배치를 합의했다고 발표했다가 곧바로 번복하는 해프닝도 있었다. 부산지역에서 반발했기 때문이란다. 한국에서 가장 큰 항만도시가 부산이란 것을 모르는 시민은 없을 것이다. 하나 항만도시가 부산밖에 없는 게 아니란 것도 시민들은 잘 알고 있다. 최근 서용교(부산 남을·환경노동위·새누리당) 국회의원이 ‘해양경제특별구역의 지정 및 운영에 관한 법률 제정안(이하 해양경제특구법)’의 국회 처리에 혼신의 힘을 쏟고 있다. 그는 해당지역의 언론에서 부산의 미래를 짊어진 젊은 일꾼으로 소개된다. 든든한 지역선배인 새누리당 김무성 의원은 물론 지역정치권이 힘을 실어
‘조삼모사(朝三暮四)’는 ‘아침에는 4를 주고 저녁에 3을 주면 좋아하지만, 아침에 3을 주고 저녁에 4를 주면 부족함을 느끼게 된다’는 사자성어다. 즉 어느새 익숙해져버린 오늘날의 사회에서 이미 보급되어 사용하고 있는 이 물질문명을 줄이기에는 조금 멀리 왔나 싶기도 하다. 줄일 수 없는 것이라면, 앞으로도 계속해서 증가할 전자제품에 대하여 좀 더 숙지하고, 그 위험요인을 미리 제거할 필요성이 있다. 소방관 입장에서 보았을 때, 인간이 의도적으로 저지르는 방화(放火)를 제외한다면, 가장 많은 화재 요인은 ‘전기’를 주요 원인으로 생각할 수 있다. 다시 말해 물질문명은 급속도로 발전했지만 국민의 안전의식은 그 발전 속도에 발맞추어 따라가고 있지는 못한 것이 아닌가 싶다. 우리는 어떠한 계기를 통하여 배우고, 익숙해지는 경향이 많다. 그 예로, 지난 여름 전력공급단계가 주의·경계 단계를 발령한 적이 있는데, 그제야 우리가 사용하고 있는 전기가 얼마나 우리에게 중요한지에 대하여 깨닫고, 경각심을 갖게 되었다. 그렇다면 이러한 위험요소를 줄일 수 있는 가장 효과적인 요소는 무엇일까? 바로…
오랜 역사를 통해 일일이 열거하지 않더라도 수많은 이들이 권문세도를 누려오면서 절개와 지조를 지킨 이들이 있으나 반대로 변절하거나 후대에 부끄러운 일면을 남겨놓은 이들이 훨씬 많은 것 같다. 여러 외침으로 軍亂(군란)과 政變(정변)들이 있을 때 나라를 지켜야할 교목세신들이 썩은 고기 냄새에 개미떼 달라붙듯 자기 이익에만 혈안이 되어 날뛰는 일들은 그리 오래지 않은 우리의 가슴 아픈 역사이다. 아주 가까웠던 일제강점기에서만 보아도 헤아릴 수 없을 만큼 많았다. 정조대왕의 시에 喬木白江宅 文衡家宰孫 出爲關西伯 休忘二字言(교목백강댁 문형가재손 출위관서백 휴망이자언)가 있다. ‘교목세신 백강의 집이 대제학 이조판서의 손자로다. 평안도 관찰사 되어 나가니 두 글자의 말을 잊지 말게나’ 하였다. 교목세신에게 내린 흔치 않은 임금의 시다. 정조는 李徽之(이휘지)란 신하에게 이 시를 내렸는데 向陽之地 向陽花木(향양지지 향양화목)으로 가장 신임이 두터웠다. 그것은 여러 대를 거쳐 중요한 벼슬을 지내면서 나라와 운명을 같이한 집안이었다. 시 내용 가운데 두 글자란 정조가 가장 사랑한 백성들의 평안이었으니 우리에겐 이러한 임금의 품에 안기고 싶은 마음뿐이다. /근당 梁澤東(한국
척, 하며 가는 길 /천선자 너에게로 가는 길은 막다른 도로이다. 사방이 벽으로 쌓인 도로이다. 꺽꺽 차오르는 목구멍에서 오리소리가 난다. 이십사 시간 산소 없이 살아간다. 어떻게 살 수 있느냐고 한다. 그건, 그냥 사는 거다. 살아주는 거다. 삶의 깊이가 꼭 발목까지만 닿는 얇고 딱딱한, 그 자리에 서서 한 길 어둠만 퍼 올린다. 금이 간 마음의 동공이 도로가에 실핏줄을 남긴다. 메마른 두 눈에서 돌알이 커 가는데 눈물이 난다. 눈물은 안개로 남아 막다른 도로 위에 눕는다. 사는 척, 하는 거다, 이젠 척, 척, 하며 습관적으로 산다. 꽉 막힌 좁은 도로에서도 척, 하면 길이 열리더라. -출처-『도시의 원숭이』 / 리토피아 2013년 밥 먹고 잠자고 숨 쉬고, 그냥 살았는데 벌써 가을이다. 일상에 떠밀려 바쁘게 살았는데 손 안에 아무것도 없다. 바쁜 척, 사는 척 했는데 어쩌면 죽어가고 있었을까? 죽은 척 누워있는 몸 위로 총알이 비껴가고 죽은 듯 누워있는 새를 건드렸더니 푸드득 날아오른다. 한 무더기 토사물을 뱉어놓고 젊은 연인들은 자리에 앉아 자는 척, 취한 척, 하더니 내려야할 정류장에 황급히 내린다. 그때 그들은 뭘 할 수 있었을까? 막다른 골목이다
아, 가을이다. 파란 하늘에서는 시원한 가을바람이 불어온다. 한낮의 따사로운 햇살은 한없이 부드럽다. 자비로움이 온 누리에 퍼져 생명의 기운찬 파장이 흐른다. 초록에서 결실의 색깔인 갈색으로 온 생명들이 자신을 갈무리하는 시절이다. 태양은 공평하게, 가을바람은 공평무사하게, 우리의 텅 빈 가슴을 한없이 채운다. 결실의 생각들이 내 마음의 한 모퉁이에 의(義)롭게 다가선다. 누구나 내 것 귀한 줄은 안다. 나의 생각, 나의 친구, 나의 사람, 나의 재산, 나의 신앙의 귀한 줄을 알아야 이웃의 입장도 생각해본다. 내가 귀한 존재라면 이웃도 역시 귀한 존재다. 입장 바꿔 생각해보는 역지사지(易地思之)적 관점이 생성된다. 내 것 귀한 줄을 모르면 남의 것 귀한 줄을 몰라 함부로 상대하기 십상이다. 그렇다고 내 것만을 생각하는 것은 아주 어리석다. 천상천하 유아독존(唯我獨尊)식 사고방식은 지혜롭지 않다. 이 넓은 하늘 아래서 ‘너’와 ‘내’가 함께 공존하는 방식이야말로 이 세상을 보다 밝게, 보다 소망을 가지고 살아갈 수 있게 한다. 그만큼 세상은 살만한 가치가 있다. 이 결실의 가을에 물질은 그리 넉넉지는 않을지라도 어려운
사람마다 특징이 있듯이 작가에게도 특징이 있다. 작품을 쓸 때마다 서문을 쓰는 작가가 있는 반면 서문을 전혀 쓰지 않는 작가도 있다. 서문을 쓰지 않는 작가로는 최인호를 들 수 있다. 작가는 작품으로 말하기 때문이란다. 그런 그도 딱 한 번 서문을 쓴 적이 있다. 5권의 대하 『잃어버린 왕국』에서다. 서문도 간단한 소감 정도가 아니다. 1984년 여름 작가는 KBS의 역사기행에 리포터로 참여했다. 일본에 있는 고대 한국의 유적을 철저히 추적하는 프로그램이다. 아스카(飛鳥), 나라(奈良), 교토(京都) 등지를 취재하면서 번뜩이는 영감을 얻었다. 작가로서의 숙명이랄까, 아무튼 고대의 백제가 일본을 가르치고 영향을 끼친 것에 그친 것을 넘어서서 일본이라는 나라 자체를 세운 것이 아닌가 하는 영감이었다. 직감력하면 남에게 뒤지지 않는 작가는 돌아온 뒤 『삼국사기』 『삼국유사』와 일본의 『고사기』 『일본서기』등을 이 잡듯 뒤지기 시작했다. 작가의 말대로 고대사는 신비의 신천지였다. 그 결과로 한국의 학자들은 일본의 것이라 하여 숫제 연구할 가치조차 외면하였으며, 일본의 학자들이 편견과 교묘한 사실 은폐로 이를 감추고 조작했다는 사실을 알았다. 작가는 참을 수가 없었다
최근 가정폭력이 사회적 이슈가 되고 있다. 정부는 올해 초 성폭력, 학교폭력, 불량식품과 더불어 가정폭력을 4대 사회악으로 지정하고 이를 근절하기 위해 많은 관심과 노력을 쏟아 붓고 있다. 지난 7월 검찰은 가정폭력 근절의 일환으로 3년 이내 2회 이상 가정폭력범죄를 저지른 사람이 다시 가정폭력범죄를 저지른 경우 원칙적으로 구속 수사하는 이른바 ‘가정폭력 3진 아웃제’를 시행했고, 7월28일에는 전남 함평에서 제도 시행 후 처음으로 상습 가정폭력 사범이 구속됐다. 이렇듯 가정폭력은 더 이상 개인 또는 한 가정만의 문제가 아닌 사회 문제로 대두됐고, 경찰 역시 가정폭력처리에 대한 매뉴얼을 재정비하고 사건 처리 시 좀 더 신중하고 철저히 처리할 것을 강조하는 등 가정폭력 근절에 발 빠르게 대처하고 있는 중이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이러한 제도적 장치만으로는 가정폭력을 근절할 수 없다는 것이다. 처벌조항이 강화되고 제도적 장치가 완벽히 갖춰졌다 하더라도 사회적 관심과 피해자 스스로의 적극적인 대응이 없다면 결국에는 내실없는 정책에 불과한 것이다. 가정폭력 피해자는 대부분 힘이 약한 여성이다. 피해여성들은 가정폭력피해 직후 불안과 공포를 느끼는
바다의 아코디언 /김명인 노래라면 내가 부를 차례라도 너조차 순서를 기다리지 않는다 다리 절며 혼자 부안 격포로 돌 때 갈매기 울음으로 친다면 수수억 톤 파도 소릴 긁어대던 아코디언 갯벌 위에 떨어져 있다 파도는 몇 겁쯤 건반에 얹히더라도 지치거나 병들거나 늙는 법이 없어서 소리로 파이는 시간의 헛된 주름만 수시로 저의 생멸(生滅)을 거듭할 뿐 접혔다 펼쳐지는 한순간이라면 이미 한 생애의 내력일 것이니 추억과 고집 중 어느 것으로 저 영원을 다 켜댈 수 있겠느냐 채석에 스몄다 빠져나가는 썰물이 오늘도 석양에 반짝거린다 고요해지거라 고요해지거라 쓰려고 작정하면 어느새 바닥 드러내는 삶과 같아서 뻘밭 위 무수한 겹주름들 저물더라도 나머지의 음자리까지 천천히, 천천히 파도 소리가 씻어내리니, 지워진 자취가 비로서 아득해지는 어스름 속으로 누군가 끝없이 아코디언을 펼치고 있다 -김명인, 『바다의 아코디언』문학과 지성 2002 오래전, 격포에서 날아온 사진 한 장의 빛깔이 지금도 생생하다. 채석강 주상절리에 부딪혀 튀어나올 듯 주황빛으로 빛나던 햇살의 기운. 주상절리와 지는 저녁 햇살 사이로 검은 실루엣으로 찍힌 친구모습. 사진 속에서도 인상적인 아름다움을 자랑하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