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이는 우리나라 남쪽 해안가 끝 마을 어디쯤에서 20세기 끝 무렵 태어났다. 중학교를 졸업하고 서울로 올라와 가리봉동 염색공장에 다녔다. 순이는 하루 16시간을 일했다. 염색약 냄새가 코를 헐게 했다. 걸핏하면 코피가 터졌고 졸음을 쫓기 위해 타이밍 약을 먹었다. 그래도 순이는 행복했다. 월급날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월급의 반은 고향에 부치고, 방세내고 나면 남는 돈은 쥐꼬리만 했다. 그 돈으로 영화도 한번보고 푼돈이라도 야금야금 모으기 시작했다. 설날이 다가왔다. 순이는 가리봉시장에 가서 엄마의 외투를 사고, 남동생이 좋아할 운동화와 운동복도 사고, 어린 여동생을 위해 카세트도 샀다. 아버지에게 드릴 용돈은 천 원짜리 새 돈으로 바꿔 놓았다. 설날 하루 전 순이는 공장 정문 앞에서 봉고차를 타고 귀향길에 올랐다. 귀향 차표를 구할 수 없어 봉고차를 타고 가기로 한 것이었다. 고향으로 가는 고속도로는 너무나 막혔다. 순이는 화장실이 급해졌다. 어느 덧 봉고차가 천안을 지나고 있었다. 휴게소에 차가 멈췄고 순이는 급히 차에서 내렸다. 다른 사람들도 어지간히 화장실이 급했던 모양이다. 모두 후다닥 차에서 내렸다. 잠시 후 화장실에서 돌아와 보니 봉고차가 보이지…
현행 정치자금법제 아래서 경제활동에 종사하지 않는 18세 이상 유권자는 아예 세제지원혜택에서 배제된다. 청소년, 대학생, 전업주부, 노인, 실업자 등 1500만 명이 넘는 사람들이 이 범주에 속한다. 저소득층 유권자의 경우 10만원까지는 전액세액공제를 받아 정치후원을 할 수 있지만 실제로는 정치후원을 하는 사람이 거의 없다. 2018년 자료에 따르면 소득하위 50%는 정치후원금의 2%를 냈을 뿐이다. 거의 1000만 명이 이 범주에 해당한다. 4400만 유권자 중 2500만 이상을 정치후원의 세계에서 배제해온 작금의 상황을 그대로 방치하는 건 심각한 차별행위이자 중대한 위헌사태다. 1인1표 유권자들이 국고지원 정치후원법제를 통해서도 동일한 영향력을 발휘할 수 있도록 제도를 재설계해야 한다. 요체는 다음과 같다. 첫째, 4400만 유권자 모두에게 국고지원을 받아 정치후원을 할 수 있는 권리를 줘야 한다. 이래야만 지금까지 원천 배제됐던 저소득층, 전업주부, 청소년, 노인, 실업자 등이 제몫의 목소리와 영향력을 찾을 수 있다. 둘째, 유권자 1인당 정치후원액수는 대폭 줄여야 한다. 지금의 연간 10만원을 연간 1만원(선거가 있는 해에는 2만원)으로 줄이면 된다.
대한민국의 헌법은 만인의 평등을 원칙으로 하고 있고, 누구도 특권을 누리지 못하게 규정하고 있다. 그러함에도 불구하고 예외적으로 인정하는 특권이 있다. 헌법이 명시한 평등의 원칙과 모순된 특권을 인정하는 이유는 그 특권이 한 개인의 이익이 아니라 국민의 이익과 국제적 이익을 위해 필요하다고 인정하기 때문이다. 민주국가에서 주어진 법률적 특권은 특정 개인이나 집단의 이익을 위해서 사용되어서 안 된다. 하물며 개인의 이익을 위해서 법률에 주어지지도 않은 특권을 누리는 것은 용인될 수 없다. 하지만 우리 사회에는 법률에 명시되지 않은 특권을 누리는 여러 ‘특권층’이 있다. 법조계는 법률에 명시된 특권과 명시되지 않은 특권을 모두 누리는 대표적인 특권층의 하나다. 변호사는 변호사법에 의해 법률적 대리행위를 할 수 있는 배타적 특권을 누리고, 검사는 죄를 물을지 말지를 판단하는 독점적 기소권리를 지니며, 판사는 죄의 유무와 경중에 대한 결정권을 가진다. 사회적 존경과 경제적 보상을 누리고 정년이 없는 자격증도 주어진다. 이런 이중의 특권은 그들이 진실과 정의라는 공익을 위해서 공평무사하게 일한다는 것을 전제로 한다. 하지만 과연 그럴까. 최근 들어 우리 국민은 검찰과
“우리 삶을 구성하고 단연코 나를 반짝이게 만드는, 영원히 반짝일 모래알들, 시간이 흘러도 우리는 사람들과 살아가고 또 사랑을 할 것이다. 언제 힘들었냐는 듯이.” 10년 전에 타계한 박완서 작가가 남긴 글이다. 코로나 팬데믹 이후 1년 내내 뭔가 모를 상실감과 불안감에 시달리며 살았다. 집에 있는 시간이 많아져 생활패턴이 바꿨다. 변화된 일상에 어떻게 극복하느냐가 중요해졌다. 바깥 외출을 자유롭게 하지 못하는 답답함, 몸에 미세한 변화에도 혹시나 코로나가 아닐까하는 마음이 날 무기력하게 만든다. 누굴 만나는 것도 서로가 꺼린다. 이런 감정을 ‘코로나 블루’라고 하는가 보다. 코로나 우울이다. 친구들도 스트레스가 쌓이면서 우울증이 오는 듯 걱정한다. 생존에 대한 위험신호다. 그렇다고 한 번도 가보지 않은 세상에 미아(迷兒)가 될 수는 없지 않은가. 나의 존재를 잃을순 없어 “언제 힘들었냐.”고 털털 털고 일어서는 날이 빨리 오길 기다린다. 백신을 기다리는 이유다. 이스라엘은 60대 이상 노인층 80%가 백신접종을 이미 마쳤다는 외신이다. 부럽다. 감정을 많은 이들은 색(色)이나 소리, 언어로 표현한다. 그래서인지 코로나로 인한 정신적 증세를 우울감을 뜻하는…
우리 집 냉장고 문짝에 그런 문구가 붙어 있다. ‘탁월해 질 때까지 끝없이 연습하세요.’ 이 문구를 가져다 붙인 사람은 지금 중학교 2학년이 되는 아들이다. 아들이 초등학교 5학년 가을 무렵이었다. 학교 과제 표어로 여러 장을 만든 것인데 다른 표어들은 소리없이 사라졌고 이 표어만 살아남아 냉장고에 붙어 있다. 이 고리타분한 말이 우리 집 냉장고에 붙은 뒤로 변화가 생겼다. 아들의 꿈은 축구선수가 되는 것이었다. 초등학교 저학년 때에도 막연하게 축구선수 되겠다고 해서 축구클럽에 다녔다. 일주일에 두 번이나 세 번 정도. 그랬는데 저 탁월한 격문이 우리 집 냉장고에 붙은 뒤로 아들의 행동이 달라졌다. 일주일에 두 차례나 세 차례 가던 훈련을 매일 가는 걸로 바꾸었다. 나나 아내가 강요한 것도 아닌데 그리하겠다 해서 그리 하라고 했다. 다른 학원을 일체 다니지 않는 데다가 몸 쓰는 일이라 오히려 아들에게 좋은 영향을 미칠 거라 생각했다. 돌이켜보면 나는 초등학교 시절 동네 아이들과 뭘 하고 놀지, 맛있는 걸 뭘 먹을 지에만 신경이 곤두서있었다. 딱히 정한 꿈도 없었다. 중학교를 졸업할 때까지 산과 들, 강으로 놀러 다녔고 주머니에 용돈이 생기면 만화방에 가는 정
“하인은 괭이를 집어들고 머리에서 발끝까지의 치수대로 정확하게 팠다. 바흠의 묘혈(墓穴)을 위해. 그리고 그를 그곳에 묻었다.” 잘 알려진 톨스토이의 민담 “사람에게는 땅이 얼마나 필요한가”의 마무리다. 해가 저물기 전 출발선에 다시 돌아오는 만큼의 땅은 모두 자신의 소유가 될 수 있다는 계약에 따라 바흠은 진종일 다니다가 노을이 보이려 하자 냅다 뛰기 시작했다. 그런 계약 조건에 혹하도록 만든 것은 사실 악마의 계략이었던 걸 몰랐던 거다. 이 모습을 지켜보던 악마는 배를 움켜쥐고 떼굴떼굴 구르며 웃고 있었다. 하지만 그는 너무 멀리 왔다. 조끼도 장화도 물통도 모자도 모두 내팽개치고 괭이자루 하나만 붙잡고 지팡이 삼아 달렸으나 결국 돌아온 출발선에서 숨이 찬 나머지 세상과 하직했다. 빈손으로 왔으니 빈손으로 갔다. 소유란 어느 정도 필요하다 해도 마침내 껍데기다. 과도하게 많고 두꺼우면 도리어 삶이 질식한다. 인생의 시간은 얼마나 허락되어 있는지 몰라도 무한한 시간을 지니고 있는 사람은 없다. 자신이 어디에서 시작했는지 깨우치지 못하면 욕심에 짓눌려서 사는 것처럼 살지 못하고 허망하게 떠날 것이다. 멀리 온 것을 자랑하느라 미처 알지 못할 미래다. 시간을…
수년전 한의사 선후배들과 함께 지역아동센터 봉사를 가서 건강검진과 함께 아이들에게 강의도 하고 퀴즈와 선물을 준비해 신나는 시간을 보냈다. 아이들에게 한의사가 치료하는데 쓰는 이것 이름은 무엇일까요? 하며 침과 뜸, 부항, 한약의 그림을 보여주고 각각의 이름을 맞추는 문제도 있었는데 다른 세가지와 달리 뜸은 좀처럼 맞추지 못해 놀라워하며 답을 알려줬던 기억이 난다. 학생들 뿐만 아니라 20대의 환자들도 잘 모르는 경우가 많다. 그럴 만도 한 것이 접할 수 있는 기회가 별로 없기도 하거니와 설령 몸의 불편함으로 한의원을 찾게 된다고 하더라도 그들은 뜸의 적응증이 아닐 경우가 대부분이다. 한의학에서 침과 한약과 더불어서 대표적인 세가지 방법 중 하나로 꼽는 뜸은 대체로 쑥이 원료인 뜸뭉치를 직접적으로 해당 경혈(침이나 뜸을 놓는 한의학에서의 치료점) 피부위에 올려놓고 불을 붙이거나 간접적으로 연기를 쐬어 치료효과를 내는 치료도구이다. 뜸으로 쓰는 쑥은 따뜻하고 건조한 성질이 있어 쑥뭉치를 태우면 발생하는 열기에 쑥이 따뜻하게 경락을 통하게 하는 약성이 더해져서 효과를 나타낸다. 쑥뜸을 어떤 경혈에 어떤 형식으로 적용하느냐에 따라서 치료의 효과가 달라지지만 큰 틀
엘리베이터 문이 열리자 현관 앞에 소국이 어우러진 푸짐한 꽃바구니가 환하게 웃고 있다. ‘뭐지?’ 어리둥절해하던 나는 그 때서야 생각이 났다. 아침에 한동안 연락이 없던 친구가 뜬금없이 우리 집 주소를 알려달라고 했던 것이. 친구를 반기듯 꽃바구니를 집안으로 들여 차근차근 들여다보았다. 내가 제일 좋아하는 짙은 향이 나는 잘디잔 소국들이 옹기종기 앉아있다. 군데군데 이름을 알 수 없는 하얀 눈송이 같은 꽃봉오리가 여리디여린 미소를 띠고. 날개처럼 울타리를 치고 있는 초록의 잎사귀들. 알록달록한 소국의 꽃망울은 빨갛고 작은 장미를 품은 채 잔잔한 위로를 보내오듯 끊임없이 재잘재잘 향기를 뿜어내고 있다. 마치 소국 좋아하는 나를 여전히 잊지 않고 기억해주는 친구의 마음처럼, 촉촉한 그 친구와의 지난 추억들처럼 말이다. 좋은 친구를 갖는다는 건 어쩌면 아주 특별한 일인지도 모른다. 우여곡절을 겪으며 서서히 익어가는 인생처럼 아웅다웅 다투기도 하고 또 다시 잘 이어가다가도 각자의 풍파에 조난을 당하기도 하니 말이다. 옛말에 ‘사이좋은 벗끼리 마음을 합치면 단단한 쇠도 자를 수 있고, 우정의 아름다움은 난의 향기와 같다’라고 했는데 그 사이좋은 친구란 참으로 갖기 어
새해를 며칠 앞둔 2020년 연말 교육청에서 공문이 하나 왔다. 올해 다문화 교육 관련 연수를 들었는지 여부를 확인하는 공문이었다. 내가 근무하는 고양시가 아닌 다른 지역에서는 다문화 교육 연수가 필수이니 얼마 남지 않은 12월 31일까지 꼭 15시간 이상 연수를 이수하라고 해서 한바탕 소동이 있었다. 소동은 21년 내에 연수를 학습하라는 수정 안내로 마무리 되었다. 다문화 교육이 필수 연수가 된 건 교실에 다문화 학생들이 늘어나는 것과 관련이 있다. 다문화와 크게 상관없을 것처럼 보이는 고양시 일산구 어느 조용한 동네에 위치한 우리 학교에도 한 학년에 몇 명 정도 학생이 다양한 국적을 가졌거나 부모님 중에 한분 혹은 두분 모두 외국인이신 친구들이 있다. 정확하진 않지만 비율을 따지면 대략 5% 남짓이다. 적다면 적고 많다면 많은 비율인데 조금씩 비율이 늘어나는 추세에 있다. 몇 년 전에 2시간 정도의 짧은 다문화 연수를 들었다. 강사님은 경기도에서 가장 다문화 학생이 비율이 높은 안산시 원곡동의 한 초등학교에 근무하셨다. 그곳은 다문화 학생 비율이 90% 이상인 학교였다. 한국어를 유창하게 사용하는 학생은 10%가 채 안된다고 했다. 그러다보니 입학식 때…
삼수갑산은 량강도 혜산의 서쪽과 동쪽에 각각 위치한다. 압록강, 장진강, 허천강의 세 갈래 물줄기 사이에 있다고 해서 삼수(三水)이고 혜산에서 140리(55km) 들어가면 갑옷 같은 산이 많다고 하여 갑산(甲山)이다. 고려말기 갑주만호부(甲州蔓戶府)가 설치되었는데 1413년 갑산군으로 개편하면서 처음으로 개척한다는 의미의 ‘甲’를 썼다고도 한다. 유배지로 유명한 이곳에 허난설헌은 오빠 허봉에게 ‘갑산으로 귀양 가는 오라버니께’라는 시를 남겼고 김소월은 ‘삼수갑산 왜 왔노 삼수갑산이 어디메뇨 오고나니 기험(寄險)하다 아하 물도 설고 산 첩첩이라’는 시를 썼다. 또한 시대의 한 획을 그었다는 시인 백석은 량강도 삼수군 관평리에서 살았다지 않는가. 산간오지 삼수갑산에서 백석은 ‘갓 나물’이라는 시를 썼다. 그렇게 멀고 먼 길을 동갑내기 친구의 고향이라고 가본 적 있다. 함흥에서 길주, 길주에서 혜산까지 왔으나 아직도 백 여리길이 아득한데 다행이도 그곳으로 가는 자동차가 있어 얻어 타고 그러고도 목적지 도착하지 못해 생전 처음 보는 나귀를 타고 갔다. 친구가 말이라고 하는데 영화에 나오는 말보다는 허리가 낮고 덩치도 작다. 그때 함흥에서 사과를 무겁게 지고 갔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