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이 언론답지 못하다는 평가는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건강한 비판을 하지 못해왔던 점도 이런 비판을 받게 한 요인이다. 언론이 민주주의의 보루가 되려면, 정치가 국민 상식을 일탈할 때 개처럼 짖어대야한다. 그래서 감시견이다. 다만 감정 섞인 비판은 극도로 경계해야 한다. 감정의 개입은 언론이 짖는 소리를 의례 그런 집단 정도로 전락시킨다. 새 정부 인사청문회는 언론이 언론다움을 회복할 좋은 기회다. 윤석열 대통령 당선자는 지난 4월 3일 한덕수 전 총리를 국무총리로 지명했다. 10일 경제부총리를 포함해 8개 부처 장관 후보자를, 13일에는 나머지 8개 부처 장관 후보자를 지명했다. 정호영 보건복지부 장관 후보자가 언론의 집중 검증을 받았다. 지명 다음 날인 11일(월), 언론은 그가 윤 대통령 당선자와 ‘40년 지기’라고 보도했다. 서울대 법대 출신인 윤 당선자가 경북대 의대 출신의 정 후보자와 어떻게 40년 지기가 됐을까? 궁금증은 쉽게 풀렸다. 정 후보자의 고교 친구와 윤 당선인이 서울대 법대 동기여서 친분을 맺게 됐다는 한 줄 보도 덕이었다. 조선일보는 “윤 당선인은 40년 한결같은 친구”라며 “식사할 때면 먼저 계산하려 했다. 공무원 봉급을 받아 가
올레길을 걸을 땐 스마트폰을 내려놓는다. 길에서는 조랑말 모양 표지인 간세가, 나뭇가지에 묶인 파란색과 빨간색 리본이, 전봇대와 돌담에 붙은 화살표가 방향을 알려준다. 때때로 부슬비가 내리거나 자욱한 안개가 시야를 흐리지만 한적한 숲길이나 바다 옆길을 걸을 때면 절로 콧노래가 나온다. 어느 골목 어귀에선 집 앞에 앉아 지나다니는 이들을 무심히 바라보는 어르신에게 조심스레 인사를 건네고, 한가롭게 풀을 뜯는 소와 말을 지날 땐 반가움에 살짝 손을 든다. 잠시 생각에 잠기거나 으레 가던 방향으로 가다 보면 표지를 놓칠 때도 있다. 그럴 때면 당황하지 말고 마지막으로 표지를 봤던 곳까지 되돌아가 다시 길에 오른다. 자동차를 타고 대중교통을 이용하며 사람들은 가장 빠른 길과 시간을 검색한다. 걸을 때도 마찬가지다. 특히 초행길을 걸을 때면 모르는 길에서 마주하는 것들을 경계하면서 스마트폰을 꼭 붙들고 긴장을 놓지 않는다. 길을 잃었을 땐 자신이 어디에 있는지 파악하는 게 먼저지만 위치 파악은 위성이 해주니 화면만 들여다보며 내비게이션이 지시하는 대로 가면 된다. 자연스레 길을 보는 시간보다 화면 속 지도를 보는 시간이 더 길어지고, 초록 나무와 파란 바다를 마주할…
‘윤석열 정부’의 국정 청사진을 만들고 있는 대통령직인수위원회가 대통령 취임 보름을 남겨놓고 새 정부의 국정운영 원칙으로 ‘공정, 상식, 실용’을 잠정 확정했다. 안철수 인수위원장은 다음 달 3일 110개의 국정과제를 공개할 계획이다. 10년 만에 부활한 인수위가 높은 국민의 기대에 제대로 부응했는지에 대한 평가는 일단 그리 후하지 않다. 특히 ‘대통령 관저’를 어디로 할 것인지를 결정하는 과정에서 보여준 ‘갈팡질팡’ 이미지는 자못 실망스럽다. 신용현 인수위 대변인은 윤석열 정부의 국정과제가 최상위 ‘국가 비전’ 아래 6대 국정 목표, ‘국민께 드리는 약속’ 20개, 이를 구체화한 국정과제 110개의 4단 구조로 구성된다고 밝혔다. 6대 국정 목표는 ‘상식이 회복된 반듯한 나라’, ‘민간이 끌고 정부가 미는 역동적 경제’, ‘따뜻한 동행, 모두가 행복한 나라’, ‘자율과 창의로 만드는 담대한 미래’, ‘자유·평화·번영에 기여하는 글로벌 중추 국가’, ‘대한민국 어디서나 살기 좋은 지방 시대’ 등이다. 윤석열 당선인은 지난달 18일 인수위 출범식에서 “새 정부는 일 잘하는 정부, 능력과 실력을 겸비한 정부가 돼야 한다”며 “국정과제는 개별 부처와 분과를 넘어…
z는 매일 죽고 싶었다. 엄마는 십년 넘게 정신병원에 입원 중이다. 아버지는 몸이 심하게 상하여 일을 못한다. 학교에서는 늘 난폭한 놈들의 학대를 받았다. 교사들은 결코 좋은 사람들이 아니었다. 선생님은 보통의 어른들과 다른 존재 아닌가. z는 그들을 믿지 않았다. 고교를 간신히 졸업한 z는 어두컴컴한 방안에 틀어박혀 밖으로 나오지 않았다. 하루 종일 죽음만 생각했다. 조금이라도 나은 미래를 위하여 작은 의지도 힘도 없었다. 죽음이 곧 해방이었다. 그래서 소멸의 날을 기다리며, 최선을 다해 절망적인 인생을 마무리 하려했다. 마침내 D-day가 다가왔다. 지옥에서 마지막으로 어떤 어른들을 만났다. 나이 스물 넘도록 단 한번도 만난 적 없는 '외계인' 커플이었다. 부모나 친척, 교사나 또래들이 일상적으로 쓰는 말과 표정, 눈빛이 달랐다. 충격이었다. 따뜻했다. 다정했다. 희망적이었다. 부드러웠다. 도움을 기대해도 될 것 같았다. 긴 시간 대화를 나누고 집으로 돌아가면서 또 만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태어나서 처음이었다. z는 이제 스물 여섯살이다. 마주 앉은 이가 그 누구든, 제대로 눈을 마주치지 못하던, 필요를 위한 최소한의 의사표시조차 못하던, 그래서 잠
금발의 어여쁜 두 소녀가 피아노 앞에 있다. 한 소녀는 악보를 응시하고 다른 소녀는 건반을 두드리고 있다. '피아노 치는 소녀들(Jeune filles au piano)'. 화가 오귀스트 르누아르(Auguste Renoir)의 대표작이다. 파리에서 모델 살 돈이 없어 시골로 거처를 옮겨야 했던 르누아르. 마흔아홉에 행운을 잡았다. 프랑스정부가 룩셈부르크 뮤지엄에 전시하기 위해 '피아노 치는 소녀들'을 산 것이다. 큰돈을 번 르누아르. 난생처음 파리에 집을 사고 에소이(Essoyes)에 아틀리에도 열었다. 늦게 인생이 활짝 피었다. 하지만 젊었을 때는 무지하게 고생한 흙수저였다. 재봉사인 아버지와 삯바느질을 하는 어머니의 아들로 태어난 그. 부모님은 가난을 탈출하고자 세 살배기 르누아르를 업고 파리로 이사했다. 하지만 도회지의 삶은 만만치 않았다. 열세 살의 어린 르누아르는 결국 생활전선에 뛰어들어야 했다. 도자기공장에 취직해 문양을 넣고 부채를 그리고 장롱에 문장을 넣었다. 이때 8년간 야간학교에 다니며 장식예술과 데생을 공부했다. 그 덕일까. 르누아르는 스물한 살 때 프랑스 최고의 미술학교, 파리 에꼴 데 보자르에 합격했다. 여기서 모네를 만나 친구가 됐다
인간은 자기 자신을 육체적 존재 혹은 영적 존재로 인식할 수 있다. 육체적 존재로 인식하면 인간은 자유로울 수 없다. ‘신에 대한 사랑’이란 자기 존재에 최고의 창조력을 불어넣기 위한 정진과 노력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신의 창조력은 모든 생명체에 잠재하고 있다. 그러나 세상에서 그것이 가장 많이 나타나는 생명체는 인간이다. 그 힘이 작용하려면 인간이 먼저 그것을 인식해야 한다. 자신이 최선의 것을 창조할 수 있다는 것을 인식하지 못하면, 인간은 반드시 최악의 것을 창조하게 될 것이다. “무슨 일에서든 그것이 신의 뜻임을 알았을 때, 나는 내 의지를 버리고 신이 원하는 것만 행하리라”라고 진심으로 네가 말할 때, 비로소 너는 완전히 자유로운 존재가 된다. (에픽테토스) ‘실컷’ 못 먹어본 것 먹어야겠다느니, ‘실컷’ 못해본 것 해보겠다는 ‘실컷’ 따위의 말은 땅에 내버려야 합니다. 대신 깨끗하게 깨끗이 한 얼 줄(經)을 잡아야 합니다. 사람들은 땅 위의 보고 듣고 만지는 것은 땅덩어리와 같이 딴딴하게 확실히 있다고 합니다. 반면 하늘은 하늘하늘하기 때문에 믿기 어렵습니다. 똑똑한 곳에서 살아야지 하늘하늘한 하늘에서 어떻게 사느냐고 합니다. 딴딴한 것이 훌륭하
20대 대통령 선거가 민주진영의 패배로 끝났다. 근소한 차이로 졌다고 하지만 그 영향이 너무도 엄청난 것이기에 패배 원인이라도 제대로 살펴봐야 한다. 필자는 그 원인을 민주정부의 치밀하지 못했던 국정 운영과 민생 정책의 총체적 실패에서 찾고자 한다. 우선 국정의 이니시어티브를 잡지 못한 탓이 크다. 해방 후 한반도는 애초 미국의 냉전 전략에 따라 민주주의와 평화를 실현하기 어렵도록 설계돼 있었다. 미국이 주도한 냉전 속에서 일본과 한반도에는 소련의 남진을 막을 전초기지로서의 역할이 주어졌다. 민족의 이익이나 민주주의에 앞선 이 핵심적 국익 때문에 미국은 줄곧 독재세력의 집권을 도와왔다. 친일 부패 엘리트들이 지배 세력으로 재등장하게 된 배경이다. 그러나 승리를 쟁취한 민중을 대신해 집권한 민주 정부들은 하나같이 빈약한 정치적 비전으로 국정 난맥상을 보이다가 자멸하고 말았다. 4월 혁명 이후 민주당 정부의 좌절, 1980년대 서울의 봄과 6월항쟁의 상황에서조차 독재를 끝장내지 못한 것 등은 그 생생한 사례이다. 민주 정당들의 분열과 일부 지도자들의 과욕이 빚은 결과였다. 촛불혁명으로 탄생한 문재인 정부 역시 거악 세력들의 발목잡기로 휘청거리다가 정권을 내주고…
윤석열 새정부 조각을 위한 국회 인사청문회가 이번주 한덕수 국무총리를 시작으로 본격화된다. 하지만 한 총리 후보자의 인사청문회는 25일 첫날 자료 제출 문제로 더불어민주당과 정의당이 청문회장에서 퇴장하는 등 초반부터 팽팽한 대립구도가 형성되고 있다. 여야간에 입장 차이가 있을 수 있지만 무엇보다 지금까지 드러난 공직 후보자들에 대한 자격 시비는 역대 청문회의 판막이라는 점이 문제다. 부모찬스를 비롯해 위장전입, 탈세, 농지법 위반 의혹 등 단골메뉴가 망라돼 있다. 정호영 보건복지부 장관 후보자의 이른바 ‘아빠 찬스’ 의혹은 본인의 해명에도 불구하고 논란이 수그러들지 않고 있다. 김인철 교육부 장관 겸 사회부총리 후보 역시 딸의 ‘아빠찬스 장학금’ 논란이 일었다. 윤 당선인의 파격 인사로 주목받고 있는 한동훈 법무부 장관 후보자는 ‘아파트 편법 증여’ 등의 의심을 받고 있다. 이밖에도 많은 후보자들이 이상한 ‘전세쪼개기’ 계약, 공직과 사기업을 오가며 ‘이해충돌’ 의혹을 사는 등 연일 새로운 쟁점들이 제기되고 있다. 청문회가 진행되면서 사안에 따라서는 의혹이나 논란이 해소되고 후보자에 따라서는 억울한 측면이 있을 수 있다. 그러나 법적 잣대를 말하기에 앞서 현